한국 사회 경계에 선..케냐 여성 '난민'의 설 소원

입력 2015. 2. 21. 08:33 수정 2015. 2. 21.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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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윤철원 기자]

한국 사회의 안과 바깥, 그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 '난민'이다. 그들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한국의 문을 두드리지만, 우리는 그들이 한 울타리 안에 들어오는 것을 쉽사리 허용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온 여성 모니카(39) 씨와 한국땅에서 태어난 지 열두달이 된 그녀의 딸에게도 그랬다.

설 연휴를 이틀 앞둔 지난 16일 서울 오류동의 이주여성지원센터에서 만난 두 모녀는 한국 정부가 난민신청을 받아들여주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 홀로 아이를 키워야하는 '난민 엄마들'

모니카가 한국정부에 난민신청을 한 건 지난 2013년 11월. 그 후로 1년이 지났지만 바뀐 건 '난민신청자' 신분이 '인도적 체류자'로 전환된 것이 전부다.

인도적 체류자란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도록 정부가 허가해준 이들을 말한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난민신청자들이 일정한 심사를 거쳐 받을 수 있었던 생계비와 주거시설 등의 지원이 끊긴 것이다.

그리고 그때 모니카에게는 보살펴야 할 딸 시에나가 곁에 있었다.

모니카는 "너무나 서럽고 힘들었다"며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아이를 위해서라도 극단적인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모니카의 '극단적인 선택'이란 시에나를 택시에 버린 것이었다. 결국 경찰에 붙잡혀 처벌을 받은 모니카. 내전을 피해 뱃속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이억만리를 날아온 그녀가 왜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센터 사람들의 설명을 듣고서야 이해가 됐다.

이주여성지원센터 김은숙 이사장은 "난민신청자들은 한국국적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로부터 아무런 지원이나 보장도 받지 못한다"며 "한국인 아기들이라면 받을 수 있는 정부의 보육, 의료 복지도 모녀는 전혀 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모니카는 다행이도 그 이후 이곳 이주여성지원센터를 소개받아 그나마 시에나와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보금자리를 얻었다.

"우리 아이 한국국적 주세요. 저도 영어선생님 하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시에나와 함께 한국 국적을 얻어, 영어강사를 하며 생활비를 버는 것이 모니카의 마지막 바람이다.

◇ 난민 신청자 중 5%도 인정 못받아

인도적 체류자에 대한 난민법 조항은 단 한 줄 '취업을 허가할 수 있다'는 내용뿐이다. 하지만 신분이 불확실한 이들을 선뜻 고용하는 곳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인도적 체류자의 의료보호와 사회보장을 위한 대책을 수립하고, 특히 내전 등으로 기약 없이 타국에 체류해야 하는 난민의 기본적 생활권을 보장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정부가 2013년 난민법을 제정한 이후 우리나라에 난민 자격을 신청하는 외국인은 급속히 늘고 있다. 2010년 423명에 그친 난민 신청자는 2011년 1,011명으로 처음 1천명을 돌파했으며, 2012년 1,143명, 2013년 1,574명, 2014년 2,896명을 기록했다.

하지만 정부가 인정한 난민은 2010년 47명, 2011년 42명, 2012년 60명, 2013년 57명, 지난해 94명으로 5%가 채 되지 않는다.

한국인으로 인정받길 바라는 난민들. '한국인'의 범위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명절이다.

CBS노컷뉴스 윤철원 기자 psygod@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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