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실로 한땀 한땀 이웃 사랑..제기동 '양복 천사'

2015. 2. 19.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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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구서 30년째 양복점 운영 김형지 씨

서울 동대문구서 30년째 양복점 운영 김형지 씨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설을 맞아 귀성이 시작된 지난 17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보스톤 양복점'. 이곳을 운영하는 김형지(54)씨는 손님 A(63)씨를 맞느라 여념이 없었다.

김씨가 A씨의 허리, 팔, 다리 등을 줄자로 재는 모습은 여느 맞춤 양복점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A씨가 "설을 맞아 좋은 '선물'을 받고 간다"며 연방 즐거워하는 모습에서는 뭔가 다른 느낌이 묻어났다.

실은 A씨는 손님이라기보다는 인근에 거주하는 소외계층 주민으로, 김씨가 와이셔츠와 바지를 설빔으로 만들어 주려고 부른 것이었다.

19일 지역 주민들에 따르면 길을 사이에 두고 점포를 한 번 옮긴 것을 빼고는 1986년 이래 30년째 이곳을 지킨 김씨는 재능을 살려 틈틈이 어려운 이웃에게 옷을 지어주는 '양복 천사'로 통한다.

10여년 전 무료 의상 제작 봉사를 시작해 홀로 사는 노인과 다문화 가정 등을 대상으로 한 달에 한 번꼴로 양복을 지어주는 것은 물론, 때때로 와이셔츠와 바지 도 만들어 준다.

지금껏 그의 도움을 받은 이만 A씨를 포함해 어림잡아 150명은 넘는다고 한다.

A씨는 "그냥 하염없이 고마울 뿐"이라며 "나처럼 없는 사람에게 공짜로 좋은 맞춤 옷을 주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김씨는 "원단은 색깔이나 재질에 따라 1∼2년 주기로 유행이 바뀌어 재고가 많다"며 "이를 이용해 지역 주민센터나 사회복지사에게 어려운 이웃을 추천받아 양복, 와이셔츠, 바지, 코트 등을 만들어 준다"고 말했다.

"원단이야 늘 있으니까 명절에 시골도 내려가지 못하는 어려운 분들에게 옷을 만들어 주면 얼마나 좋습니까? 제가 술 한 잔 덜 먹는다고 생각하면 아깝지도 않아요."

그가 바늘과 실을 손에 쥐게 된 것은 중학교 졸업 후인 지난 1977년 고향인 충남 공주를 떠나 상경하면서부터다. 당시 서울 명동과 소공동 일대에 있던 양복점에서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일을 배운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김씨는 학창 시절 어머니가 손수 교복을 지어 주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나중에 꼭 재단사가 돼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특히 10여년 전 지역 단체 일을 시작하면서 소외된 이웃이 눈에 밟혀 무료로 옷을 지어주기 시작했다.

가장 기억에 나는 사례를 묻자 수년 전 자신을 찾았던 한 아버지의 사연을 들려줬다.

"4년 전 한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들이 결혼하는데 옷이 없다며 저를 찾아왔어요. 결혼식 날짜가 촉박해서 새로 만들지는 못해 다른 사람이 주문하고 찾아가지 않은 옷의 크기를 줄여서 드렸죠. 결혼식이 끝나고 '덕분에 생각지도 않게 옷을 잘 입었다'고 하시더군요."

김씨는 "도움을 받은 분들이 고맙다는 말 한마디 전할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낀다"며 "내가 그래도 기술을 헛배우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그는 "앞으로도 힘이 닿는 데까지 일과 봉사를 열심히 하려 한다"며 "지금 50대이니 최소한 15년은 더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하고서 환하게 웃었다.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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