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아들이 남기고 간 선물 나누며 살죠"

권다희 기자 2015. 2. 17.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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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김미영 국민은행 청운동 지점 차장

[머니투데이 권다희 기자] [[피플]김미영 국민은행 청운동 지점 차장 ]

해비타트 사랑의 집짓기, 연탄은행, 노을공원 나무심기, 시각장애인 타이핑 봉사, 치매 노인 시설 식사 보조, 서울시청 기록문화관 자원봉사…'화려한' 봉사 이력을 자랑하는 김미영 국민은행 차장(청운동 지점).

13일 청운동 지점에서 만난 김미영 차장에게 누군가를 돕는 건 일상이자 에너지다. 시간 여유 내기 만만찮은 직장인이지만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주말을 그는 오롯이 '누군가'를 위해 쓴다.

연유를 묻자 김 차장은 "지금까지 너무 많이 받아서"라고 답한다. 더 깊숙한 사연은 서른둘이 되던 1995년 사내커플로 만났던 남편이 폐암 선고를 받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갔다.

수술과 항암치료를 하는 10개월간 병원에서의 출퇴근은 일상이 됐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고됐던 그 시간을 김미영씨는 다른 환자 보호자들로 부터 받았던 물심양면의 보살핌으로 견딜 수 있었다고 말한다.

결국 남편은 먼저 떠났다. 하지만 김미영씨는 그 때를 '피붙이 아닌 사람들로부터도 이렇게 도움을 받을 수 있구나'를 알게 된,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향해 눈 돌릴 수 있었던 때로 회고했다.

'받은 거 주고 살자'는 결심이 든 후 처음엔 김미영씨도 매일 늦은 퇴근을 밥먹듯 하는 은행원으로 살면서 시간을 내 누군가를 돕는 게 쉽지 않아, 꽃동네 정기후원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2008년 우연히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 해비타트에 참여하는 걸 방송을 통해 본 뒤 '그냥 한번' 평일에 휴가를 내 직장 동료와 참여했다. 근데 그 하루 종일 화단정리 하고 쓰레기 줍는 일이 정말 재밌고 '적성에 맞았다'.

그게 시작이 돼 김미영 차장은 시간까지 누군가를 위해 쓰는 삶을 시작했다. 김미영씨는 사내에 KB해비타트 모임을 만들고 한달에 한번씩 직장 동료들을 데리고 집짓기 봉사에 나섰다.

김미영씨가 본격적으로 봉사에 뛰어 들게 된 계기는 또 다시 덮친 큰 시련이었다. 2010년 2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들이 먼저 하늘나라로 떠났다. 특별한 지병이 없던 아들이 잠자리에서 갑자기 숨을 거뒀다. 극복하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우울증이 깊게 찾아왔고, 우울증 약을 먹으면서 무기력이 심해졌다.

그 때가, 김미영씨에겐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로 더 눈을 돌리는 반전의 시간이 됐다.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는 다시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찾아 가기로 했다.

"너무 힘들었던 그 무렵 어느순간 마음가짐이 바뀌었어요. 내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주자.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해주는 게 고마운거니까. 그때부터 토요일은 '풀타임'으로 봉사에 할애하게 됐구요."

우울증 약을 끊기로 결심한 그 무렵부터 토요일 오전엔 이전부터 하던 상계동 연탄봉사를 계속 했고 오후엔 치매 노인 보호센터에 가서 주방 보조를했다. 김미영씨는 치매 할머니들 거동을 도우며 오히려 스스로가 회복되는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또 아들을 보낸 뒤, 월드비전을 통해 라오스에 있는 아이에게 후원을 시작했다. 작년 5월엔 세월호 사고가 났던 진도 팽목항으로도 한달음에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또래 아이를 잃었던 아픔이 어떤 건지 알았기 때문에 도저히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애들한테 밥 숟가락 떠서 먹고 살수만 있으면 누구든 도와주라고 해왔거든요. 그러다가 생각이 바뀐 게, 네가 어떻게 살았으면 하는 걸 직접 내가 먼저 살아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은 매주 토요일마다 서울시 도서관에서 봉사를 갈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도서관 유리를 청소하고, 방문객 질문에 답변하는 일들이다. 그 중에서도 봉사자들과 삶을 나누는 시간이 가장 좋다.

마지막 꿈도 미국에 유학 중인 딸과 함께 해외에서 집짓기 봉사 하기다. "제가 해비타트 하면서 보일러랑 단열재 다는 것도 다 해봤는데 아직 지붕 얹는 걸 못했거든요. 이건 며칠 휴가 내고 가야하는 거라, 퇴직하면 딸이랑 같이 해외 집짓기 한 번 가보고 싶어요(웃음)."

권다희 기자 dawn2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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