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회사 '부당 해고' 갑질에 브레이크 걸다

김민정 입력 2015. 2. 15. 20:04 수정 2015. 2. 16.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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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위법" 판결받은 김경문씨

요금 카드결제 많다고 불이익 받아, 입바른 소리하자 두 달 만에 퇴직 종용

지노위·중노위에 구제 신청했지만 제대로 검토되지도 못하고 기각돼

가정불화·화병 겪었지만 포기 안 해 "5만 택시 기사들에 힘 됐으면"

1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앞에서 부당해고 소송에서 승소한 김경문씨가 잠시 운전대를 놓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애초부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습니다."

우리사회 '갑질' 논란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각 영역에서 갑의 횡포를 폭로하는 을의 반란이 봇물을 이뤘다. 택시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하루하루 사납금을 맞추기 위해 과속운전과 승차거부를 일삼는 택시기사가 5만 명이다. 하지만 택시기사 김경문(48)씨의 경우는 예외다. 대전지법은 김씨에 대한 회사의 해고통보가 위법하며, 김씨의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기각한 중앙노동위원회 결정도 잘못됐다고 5일 판결했다.

작지만 의미 있는 을의 반란이었다. 김씨는 2013년 3월 서울 양천구 소재 한 택시회사에 취직해 법인 택시기사 생활을 시작했다. 김씨는 13년 경력의 베테랑 운전사였다. 시내버스와 개인택시를 몰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회사택시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회사는 3개월 뒤 돌연 김씨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인사담당 직원은 "우리 회사와 맞지 않는다"는 막연한 이유로 퇴직을 종용했다. 부당하다는 항변에도 당장 그날 오후부터 김씨에게는 차가 배당되지 않았다.

김씨는 그제야 두 달 전 회사를 상대로 세게 항의했던 사실을 떠올렸다. 같은 해 4월쯤 회사는 김씨가 벌어들인 요금 가운데 카드결제 액수가 현금결제 액수보다 훨씬 많다는 이유로 월급 일부의 지급 시기를 늦췄다. 당시 김씨는 "승객이 카드결제를 원하는데 어떻게 거부하느냐"며 회사와 노조측에 몇 차례 문제를 제기했다. 사실 이런 택시회사의 힐난은 당시 업계에서 관행처럼 이뤄지던 일이었다. 그러나 '입바른' 소리의 대가는 혹독했다.

김씨는 즉각 그 해 7ㆍ11월 각각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 잇따라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냈다.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사측의 갑질이었다. 하지만 지방노동위에선 "국선노무사가 개인 사정이 생겨 재판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변론 기회조차 얻지 못했고, 중앙노동위에서도 김씨가 제출한 녹취록, 계좌 내역 등 증거자료들은 제대로 검토되지 못한 채 기각 판정을 받았다.

소송 과정은 지난했다. 김씨는 '25년 모범 운전사'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생업도 거의 포기하고 행정소송을 시작했다. 중앙노동위가 세종시로 이전하는 바람에 관할지가 된 대전지법을 수시로 들락거려야 했던 탓에 다시 취직한 택시회사는 뒷전이었다. 생계는 아내가 구립복지관에서 어르신을 돌보며 번 월 60만원이 전부였다. 생전 없던 우울증과 화병이 생겼고, 부인과도 각방을 쓰는 지옥 같은 삶이 이어졌다.

김씨의 승소는 꼼꼼함이 거둔 승리였다. 회사는 김씨가 이력서를 허위로 기재했고 과속이 잦았으며, 동료와 불화가 있었다는 점에서 해고가 정당하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이에 맞서 김씨는 15년 무사고 경력, 5월 경찰청장으로부터 받은 무사고운전자 증 등을 근거로 회사 측의 억지를 호소했다. 동료와의 불화도 야유회 때 한 차례 시비를 붙었다가 화해했다고 항변했다.

법원은 김씨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1년 8개월 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사측과 싸움을 시작할 때 입대했던 아들은 어느덧 제대를 앞두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여전히 "카드 결제가 많다는 점을 문제 삼아 해고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며 항소 의지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김씨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전국 택시 기사들에게 본보기가 됐다는 점에 만족한다"며 택시 업계의 악습이 개선되기를 소망했다.

김민정기자 fac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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