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in 조선닷컴] 왼손과 팔꿈치 하나로.. 건반 위 기적의 연주

이옥진 기자 2015. 2. 1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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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150㎝ 자그마한 소녀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 왼쪽으로 약간 틀어 앉은 소녀는 지그시 눈을 감더니 건반을 두드린다. 연주하던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 소녀의 오른 어깨가 크게 들썩인다. 소녀의 왼손과 오른 팔꿈치가 여섯 개의 손가락이 돼 선율을 만들어 낸다.

9일 서울 삼성동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15층 갤럭시홀. 올해 특별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된 최혜연(19)양이 외래교수인 정은현(35) 선생님과 연습 중이다. 혜연양은 다음 달 하순 입학식에서 기념 연주를 할 예정이다.

경북 영덕이 고향인 그는 '팔꿈치 피아니스트'이다. 세 살 때, 부모님이 일하는 정육점에서 놀다 고기 자르는 기계에 오른쪽 팔 아랫부분을 잃었다. 눈 깜짝할 새였다.

"저는 잘 기억도 안 나는데, 엄마 말이 일곱 살 때까지 '엄마, 나는 팔이 언제 나와?'라며 물었대요. 그때쯤 스스로 안 것 같아요. 제가 특별하다는 걸…."

피아노와 가까워진 건 피아노학원을 운영하던 이모 덕이었다. 한 살 터울 언니가 피아노를 배우는 게 부러웠다. 하지만 꿈일 뿐이었다. 다섯 손가락으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던 2011년, 갓 예고에 진학한 언니에게 레슨해주던 정은현 선생님을 만나면서 삶이 바뀌었다.

시각과 청각을 잃은 헬렌 켈러를 작가로 키워낸 설리번 선생님의 심정이었을까. 정 선생님은 혜연양을 처음 만난 2011년 1월 1일을 생생히 기억했다.

"혜연이가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치는데, 울컥했어요. 잘 가르칠 자신이 없어 거절하려다가 마음이 흔들렸지요. 혜연이에게 '꿈이 뭐니'라고 물었더니 '희망을 주는 피아니스트'라고 해요. 그 순간 '아, 이 아이는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지옥훈련이 시작됐다. 혜연양은 매주 영덕에서 대전까지 버스를 타고 달려가 피아노를 배웠다. 정 선생님은 혜연양을 위한 왼손 연주곡을 찾고, 오른손 멜로디가 비교적 쉬운 곡을 맞춤용으로 편집했다. 가르칠 때는 혜연양이 쉽게 따라 하도록 자신도 오른손은 주먹으로 피아노를 쳤다.

대전예고에 진학한 혜연양은 하루 3~6시간씩 연습했다.

혜연양은 고1 때 딱 한 번 눈물을 보였다. 다른 친구들이 화려한 곡을 치는 것을 보고 속이 상했고, 멀리 떨어져 있는 부모님도 그리웠다고 한다. 며칠간 피아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피아노 앞에 앉는 순간이 가장 행복할 때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짜증 났고, 불쾌했어요. 근데 피아노 앞에 앉으면 내가 특이한 게 아니라 특별해진다는 걸 알게 됐어요. 사람들이 '대단하다' '감동하였다'고 말해주는 게 행복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혜연양은 2013년, 2014년 두 번 독주회를 열었다. 그는 "같은 곡이라도 내가 팔꿈치로 연주할 때가 더 감동적일 수 있다. 지금은 다르다는 게 피아니스트로서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 선생님은 혜연양을 '무대 체질'이라고 했다. 그는 "베테랑 피아니스트들도 떨리는데, 혜연이는 무대에 올라가면 더 잘한다"고 했다. 혜연양은 "공연을 하나부터 열까지 선생님이 다 준비해주신다. 쑥스러워 표현은 못 했지만, 늘 감사한 마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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