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펜 대신 전자펜 2년 만에 '그림'이 됐다.. 인기리에 '몽홀' 연재 장태산 화백

임지훈 기자 입력 2015. 2. 11. 02:48 수정 2015. 2. 11.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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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아날로그 원로 만화가의 웹툰 도전

생전 다뤄보지 않았던 컴퓨터로 그림을 그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예 컴퓨터 마우스를 없앴다. 2년간 컴퓨터에 연결된 전자펜만 가지고 인터넷 서핑도 하고 그림도 그렸다. 데뷔 후 33년간 사용해 온 연필과 마침내 결별할 수 있게 됐을 때 장태산(62·사진) 화백은 비로소 웹툰 시장에 '데뷔'했다. 1980∼90년대 '야수라 불리운 사나이' '나간다 용호취' '풍운의 거지왕' 등 작품으로 한국 출판 만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장 화백이 지난달 네이버에 웹툰 '몽홀' 연재를 시작했다. 칭기즈칸의 일대기를 그린 이 작품은 네티즌 평점 10점 만점에 9.97점을 기록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은퇴요? 저는 계속 현역입니다." 지난 4일 경기도 부천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작업실에서 장 화백을 만났다. 30년 동안 종이만화 외길을 걸었던 그가 웹툰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선택하는 것은 의외였다. 아날로그 시대의 거장은 디지털 시대에 어떻게 도전하고 있을까.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일 자체가 낯설었다고 한다. 그는 "별 수 없었다. 2년 전부터 연필을 쥐지 않고 오로지 컴퓨터로만 작업 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마우스 휠 버튼 대신 전자펜으로 화면 오른쪽 스크롤바를 일일이 눌러가며 인터넷 서핑을 했다. 힘들었지만 새로운 '펜'에 익숙해지는 데는 '무식한 방법'이 가장 빠른 길이었다. 장 화백은 "얼마 전 팬들이 사인을 요청해서 볼펜을 잡았는데 너무 어색하더라"며 웃었다.

"네가 잘해야 교두보가 된다." 많은 동료들이 이렇게 응원했다. 50대에 접어든 중견 작가들은 웹툰 시대를 맞아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장 화백은 "여기서 내가 잘 해야 그 친구들에게도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조력자는 '새까만' 후배들이었다. 같은 건물에 작업실을 둔 후배들은 그가 도움을 요청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왔다. 그는 "지난여름에 갈색 계통의 색을 표현해야 하는데 어떤 그림 도구를 사용해야 할지 몰라 막막할 때가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후배에게 전화하니 내 작업실까지 와서 일일이 알려줬다. 그때가 새벽 2시였다"고 했다. 환갑을 넘긴 선배가 자존심을 접고 'SOS'를 치자 후배들은 기꺼이 나섰다.

웹툰은 책과 다르다. 페이지를 넘기지 않는 대신 아래로 화면을 내리는 '세로 스크롤' 방식이다. 책은 대형 전투장면을 그릴 때 두 페이지를 하나의 페이지처럼 사용하면 웅장한 느낌을 준다. 반면 웹툰은 가로로 그림을 크게 그리면 '가로 스크롤'이 생겨 몰입을 방해했다. 장 화백은 각 장면 사이에 글을 넣는 방식으로 흐름이 '뚝' 끊어지는 것을 막았다. 그는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지금은 더 큰 가능성을 봤다"면서 "좀 더 배워 다양한 시도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일주일에 나흘은 작업실에서 숙식을 한다. 밤샘 작업도 밥 먹듯 한다. 이런 고생 끝에 나온 '몽홀'은 '거장답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는 "몽골이라고 하는 야만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면서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 삶의 자세를 보여주고 우리를 돌아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장 화백은 97년 '젊은 작가 모임' 회장을 맡으며 열악한 현실에 눈을 떴다. 그는 "80∼90년대 만화는 심의를 받아야 했다. 판잣집이나 구둣방 아이를 그리면 왜 치부를 드러내느냐고 혼나던 시대였다. 정부의 탄압만 없었어도 미국과 일본의 만화산업 성공이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웹툰의 미래를 묻자 그는 "웹툰은 절대 책의 대용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내 실수였다"고 고백했다. 장 화백에 이어 이현세(59) 화백을 비롯해 많은 기성작가들이 조만간 웹툰 작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거장들의 귀환에 힘입어 네이버 웹툰은 2004년 6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지난해 7월 기준 조회수 292억4305만건, 하루 평균 이용자수 620만여명을 기록하고 있다. 웹툰 작가가 되기 위해 도전하는 사람이 13만9789명에 이른다. 영화화된 것만 37편이고 게임(10편) 단행본(142편)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최고 수입을 기록한 작가는 한 달에 7800만원을 가져가기도 했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한국 웹툰 시장(영화, 캐릭터 상품 등 2차 시장 포함)이 올해 4200억원 규모로 성장한다고 내다봤다.

임지훈 기자 zeitgeis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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