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안부 묻고 빨래 봉사 .. 말벗 할머니 떴다

최종권 2015. 2. 10.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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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도 '9988 행복지키미' 사업건강한 노인이 병든 노인 돌봐지난해 2000개 마을서 첫 시행 반응 좋자 대상 늘리고 전국 확대

지난달 29일 충북 청주시 옥산면 오산리의 한 마을. 70대 할머니가 좁은 골목길을 돌아 허름한 집에 도착하더니 '드르륵' 현관 문을 열었다. 행여 소리가 날까 까치발로 방으로 향한 뒤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르신 저 왔어요. 감기는 좀 어떠세요." 그러자 전기장판을 켜고 이불 속에 누워 있던 김혜숙(89) 할머니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이제 살 만햐~. 오늘은 자네 줄라고 도토리 묵 좀 쒔는디 꼭 먹고 가."

 남편과 사별 후 10년째 혼자 살고 있는 김 할머니는 매일 오전 10시가 되면 자신보다 열다섯 살 어린 정춘자(74) 할머니를 기다린다. 정 할머니는 이 마을에서 52년을 살았다. 그래서 마을 어르신들이 앓고 있는 질환에 소소한 가족 사정까지 훤히 안다. 매일 전화로 안부를 묻고 1주일에 2~3번씩은 꼭 들러 밀린 빨래며 청소와 설거지를 대신 해준다. 때론 사탕·땅콩 같은 주전부리를 함께 먹으며 마을 돌아가는 얘기도 들려준다. 김 할머니는 "6남매를 뒀지만 자주 볼 수 없어 외로웠는데 지금은 매일 찾아오는 친구가 생겨 너무 좋아"라고 말했다.

 치매나 중풍에 걸린 노인 집에 들러 안부를 묻고 말벗도 하며 집안일도 챙겨주는 노인 도우미가 있다. 충북도가 지난해부터 시행 중인 '9988 행복지키미' 사업에 참여하는 노인들이다. 마을마다 상대적으로 건강한 노인을 '행복지키미'로 선정해 동네 노인들을 돌보게 하는 제도다. 9988은 '99세까지 팔팔하게 살자'는 뜻이다.

 정 할머니는 2년째 도우미로 활동 중이다. 정작 본인도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다리가 굽혀지지 않는 장애인이지만 아침 일찍부터 동네 마실을 다니며 11명의 돌봄 대상 어르신들을 챙긴다. 그는 "처음엔 어색해 하기만 하던 분들이 이젠 호박죽을 내놓거나 몰래 숨겨뒀던 음료수를 주시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충주시 엄정면 직동마을에 사는 박찬화(73) 할아버지도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노인 8명을 돌보고 있다. 지난해 4월엔 위암 수술 후유증으로 끙끙 앓고 있던 노인을 병원에 데려다 줬다. 그는 "음식을 못 드실 정도로 아픈데도 예약 날짜가 2주나 남았다며 꾸역꾸역 참고 계셨다"며 "곧바로 병원으로 모셔 큰 일을 막았다"고 했다. 집 전화기 코드가 빠진 것도 모르고 자식 전화를 애타게 기다리거나 허리가 아파 전등 하나 갈아끼우지 못하는 노인들에게 박 할아버지는 '맥가이버'로 불린다.

 옥천군 금구리에 사는 정영숙(73) 할머니는 17년간 마을회관에 한 번도 나오지 않던 80대 할머니와 '절친'이 됐다. 동네 이장조차도 그 집에 누가 사는지 모를 정도로 은둔 생활을 하던 할머니였다. 정 할머니는 "워낙 낯을 가리는 성격에 주민들과 전혀 교류가 없던 분이셨는데 이젠 경로당에도 잘 나오고 웃음도 많아 지셨다"며 반겼다.

  지난해 2000여 개 마을에서 '행복지키미' 활동을 지원했던 충북도는 올해 5700여 개 마을로 대상을 늘렸다. 호응이 좋자 정부도 올해부터 이 사업을 전국 광역자치단체로 확대 시행하기로 했다.

청주=최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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