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구멍 국제기구도 가까이 가보니 틈이 보이더군요"

2015. 1. 27. 19:2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짬] 유니세프 콩고 구호전문대원 지현구씨

지난 2013년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을 방문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킨샤사의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 사무실을 방문했다. 반 총장이 현지 직원들을 격려하고 떠나려는 순간 갑자기 한국말로 "사무총장님, 반갑습니다"라고 씩씩한 목소리로 크게 외치는 젊은이가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 난민들을 위한 구호활동을 하는 대원들을 헤치고 나와, 반 총장과 뜨거운 악수를 한 이는 콩고 현지 사무소에서 긴급구호물류를 담당하는 프로페셔널 포스트 지현구(35·사진)씨였다. 3년째 콩고에서 근무 중인 그는 유일한 한국인으로, 난민들에게 생필품이 원활하게 전달되게 관리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다.

현지 공통언어는 프랑스어.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해 5년간 직업군인으로 복무하고 전역한 지씨가 혈혈단신 아프리카에 뛰어든 이유는 한 가지, 넓은 세계에서 구호활동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후 5년이 지난 2008년 프랑스어를 한마디로 못했던 그는 편도 비행기표를 끊어 파리로 날아갔다.

해군사관학교 나와 5년 직업군인 복무낙도·오지 아이들 보며 '구호' 관심유니세프한국사무소 경쟁 치열 '낙심'군 시절 모은 월급 들고 프랑스 유학3년 뒤 콩고 유니세프 자원봉사 지원현장 경험 덕분 정식직원 채용 통과

그때 그의 주머니에는 군 생활 5년 동안 아껴 모은 돈이 있었다. 주로 섬이나 바다에서 생활했기에 저축이 가능했다, 제대 뒤 국내에서 유니세프 같은 국제구호단체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길이 보이지 않았다. 젊은 후배들이 많이 지원해 경쟁이 치열했다. 지난해 말에도 서울 유니세프 사무소에서 인턴사원 둘을 뽑는데, 2000여명이 지원해 경쟁률이 무려 '1000 대 1'을 웃돌았다. 바늘구멍인 셈이다. 그래서 그는 그 좁은 바늘구멍을 좀 더 가까이서 보기로 했다. "바늘구멍을 멀리서 보면 정말 작은 구멍에 불과해요. 하지만 눈앞 가까이 다가놓고 보면, 그 좁은 구멍을 통해서도 세상이 보여요."

지난 19일 휴가차 한국에 온 지씨는 취업난에 고생하는 후배들에게 "바늘구멍도 가까이서 보면 길이 생긴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파리에 도착해서야 학원을 다니며 프랑스말을 익혔다. 1년간 어학 연수를 마치고 쥘 베른 대학원에 입학해서 물류관리를 전공했다. 해군 시절 군수 관련 일을 했던 경험을 살려 선택한 전공이었다. 2년 만에 대학원을 휴학한 그는 민주콩고 킨샤사의 유니세프 사무소에 자원봉사를 지원했다. 내전에 시달리는 콩고는 아이들 구호활동 수요가 많았다. 처음엔 소아마비 퇴치운동을 위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설득을 했다. 종교나 개인적인 이유로 자녀에 대한 백신 투여를 반대하는 부모들도 많았다. 수백명이 집단학살당한 지역을 돌아다니며 생필품을 직접 나눠주기도 했다.

그러다 마침 유니세프 본부에서 정식 직원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고 현지에서 지원했다. 운 좋게도 서류 심사와 필기시험, 그리고 면접을 단번에 통과했다. 자원봉사자로서의 현지 경험과 전문지식, 그리고 유창한 프랑스어 구사 능력이 좋은 점수를 얻은 덕분이었다.

현재 유니세프 글로벌본부 1만5천여명의 직원 가운데 국가 프로그램 수행을 위한 현지 직원은 2800여명으로, 이 가운데 한국인은 모두 25명으로 1%도 못 된다. 일본은 80여명으로 한국의 3배를 넘는다.

지씨는 콩고의 고마 지역에서 전세계로부터 수집한 구호물품을 종류별로 가려 난민들에게 골고루 배분한다. 한번에 1천여가구가 쓸 물품을 다룬다. 구호품은 취사도구를 비롯해 말라리아 감염을 막기 위한 모기장, 의료약품, 의류 등으로 대부분 덴마크 코펜하겐의 물류창고를 통해 들어온다.

그는 애초 해군 시절 서해안 낙도를 돌며 어린이 구호에 뜻을 두기 시작했다. "불우한 청소년들을 위해 봉사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특히 아프리카 어린이들은 지금도 굶어 죽거나 각종 질병에 시달리며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어요. 다양한 국가에서 온 봉사대원과 손발을 맞춰 일하면서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앞으로 지씨는 경험을 쌓아 아프리카보다 더 험한 중동 지역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한다. "위험하면 할수록 보람은 크기 마련입니다. 전쟁이 벌어지는 지역에서 어린이와 여성들은 더욱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어요."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창립된 유니세프는 인종, 종교, 국적, 성별과 관계없이 전세계 개발도상국에서 노역, 난민, 부랑아 등 어려운 처지에 놓인 어린이를 위해 다양한 보호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한국에서 유니세프를 통해 거둔 기부금은 약 900억원. 한국위원회가 직접 돕는 나라는 북한, 수단, 캄보디아, 몽골 등 20여곳에 이른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박태환, 남성호르몬 수치 낮아 주사제 맞았다"박 대통령 지지율, 날개 없는 추락…또 '최저치'그 많던 '세월호 사진' 다 어디로 갔나?[포토] 정말 재밌었는데~ 그때 그 드라마[화보] 외국 관광객의 눈에 비친 북한의 모습

공식 SNS [통하니][트위터][미투데이]| 구독신청 [한겨레신문][한겨레21]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