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수제구두 80년 가업 이어가는 송림제화 임명형 사장

정유미 기자 입력 2015. 1. 25. 21:57 수정 2015. 1. 25.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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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하나뿐인 신발 만들기, 100년 이어가겠다"
YS·조순·허영호씨 등 단골.. 기술개발이 대를 잇게 한 비결

서울 을지로3가에는 명맥이 거의 끊긴 맞춤구두 제작을 80년간 가업으로 잇고 있는 수제화 전문점 '송림제화'가 있다. 송림제화가 있는 건물 계단은 비좁고 가파르다. 옛 방식대로 구두를 만들고 있는 작업공간도 넓지 않다. 25년이 넘는 경력을 가진 7명의 수제구두 장인들은 맨손으로 가죽을 재단한 뒤 밑창을 붙이고, 구멍을 뚫고, 망치로 두드려 하루 10~15켤레의 구두를 만들고 있다.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임명형 사장(52)은 25일 "고객의 발모양을 일일이 석고로 본을 뜬다. 발바닥부터 발가락 모양, 발등 높이까지 정확하게 재야 편한 맞춤구두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을지로에서 대를 이어 수제화를 만들고 있는 송림제화 임명형 사장(왼쪽)과 큰아들 승용씨가 산악인 허영호씨의 에베레스트 등정 수제 등산화를 선보이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송림제화는 1936년 '하코방(판잣집)'에서 문을 열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때도 버텼고, 기성화의 공세가 거셌던 1970~1980년대에도 송림제화를 찾는 고객은 크게 줄지 않았다. 2000년 이후엔 국내 유명 브랜드 기성화와 수입 명품구두가 쏟아지고 있지만 큰 흔들림이 없다.

'서울 구두 할아버지'로 알려진 송림제화 2대 사장 임효성씨의 부단한 '기술 개발' 덕이 컸다. 그는 1950년대 영국 군화로 한국 최초의 등산화를 개발한 데 이어 1970년대에는 사격이나 산악스키를 할 때 신는 특수화를 제작했다. 최근에는 천으로 된 수제 등산화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외삼촌인 창업자 고 이귀석 사장에 이어 53년간 송림제화를 지켜온 임효성씨의 단골손님 중엔 김영삼 전 대통령, 조순 전 서울시장, 명진 스님 등 유명인사가 많았다. 산악인 허영호씨는 에베레스트에 오르거나 남북극과 베링해협을 횡단할 때마다 송림제화에 들렀다. "세상에 하나뿐인 신발을 만든다"는 신조로 구두를 지어왔던 임효성씨는 두 달 전 세상을 떴다. 임명형 사장은 "아버지가 즐겨 앉으시던 낡은 의자를 치우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올해부터는 임 사장의 아들 임승용씨(22)도 송림제화로 출근하고 있다. 임씨는 "평생 수제구두 만드는 일에 자부심이 컸던 할아버지께서는 정직하게 살아야 실패를 경험하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며 "4대째 가업을 잇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오산대에서 제화패션학을 전공한 임씨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수제화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그는 송림제화의 인터넷 홈페이지 관리와 고객 주문도 맡고 있다.

임 사장의 바람은 송림제화의 간판을 100년 넘게 유지하는 것이다. 그는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80년간 가업을 이어왔으니 가능할 것 같다"며 "둘째 아들도 내년에 대학을 졸업하면 송림제화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고 말했다. 매달 서울지역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발이 불편한 장애인들의 구두를 만들어 주고 있는 임 사장은 "큰아들도 함께 봉사에 나서고 있어 더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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