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없지만 실력 있다" 교향악단에 먼저 편지했죠

김기철 기자 2015. 1. 22. 03: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는 3월 유럽 명문 오케스트라인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내한 공연 때는 십중팔구 안경을 낀 동양인이 가장 먼저 무대로 달려나올 것이다. 이 교향악단 최연소 수석주자인 유성권(27·바순)이다. "공연 때마다 관악주자들이 가장 먼저 입장하는데요. 문이 열리면 누구보다 앞서 무대로 뛰어나갑니다. 한국인 주자가 있다는 걸 알리고 싶기도 하고, 관객들의 주목을 받는 게 즐거워요."

이 야심만만한 청년은 스물둘이던 2010년 2월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에 수석주자로 입단했다. 서구 명문 악단 중 바이올린이나 비올라 같은 현악 분야에서 한국 출신 수석주자들은 심심찮게 있지만, 관악에서는 매우 이례적이다.

"입단 후 첫 연주가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이었어요. 바순 '빅 솔로'로 시작하는 곡이거든요. 관객에겐 안 들리지만 연주 끝나고 동료들이 발로 마룻바닥을 비비며 '잘했다'고 칭찬해줄 때 마음이 놓였습니다. 무엇보다 동료들의 인정이 가장 중요하거든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바순을 시작한 유성권은 서울예고 1학년을 마치고 2005년 열일곱에 베를린 국립음대로 유학 갔다. 2009년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바순 수석을 뽑는다는 공고가 났다. "경력은 없지만 바순은 자신 있다. 오디션을 보게 해달라." 스물 갓 넘긴 유성권은 교향악단에 편지를 썼다. 곧이어 교향악단 산하 아카데미 단원을 뽑는 오디션이 있었다. 아카데미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지만, 대학 선생님도 일단 응시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응시했다. 그런데 떨어졌다. "오디션 마지막에 콘트라바순을 부는 순서가 있었어요. 전 처음부터 수석이 꿈이었기 때문에 콘트라바순을 배우지도 않았거든요."

오디션을 보던 단원들은 "네가 우리에게 편지 보낸 그 친구냐"며 물었고, "수석 오디션에 응할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2009년 말 10차례에 걸쳐 벌어진 오디션에서 유성권은 수석을 따냈고, 석 달 만에 종신 단원이 됐다.

2002년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폴란드 출신 지휘자 마렉 야노프스키(76)는 이 교향악단의 상징. 베토벤, 브람스, 브루크너 등 정통 독일 레퍼토리에 강하다. "워낙 무섭다고 소문이 났지만, 많이 도와줬어요. '자기가 원하는 소리를 가졌다'면서 격려해주고요. 저도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했고요. 연주자는 기죽으면 끝이거든요."

나이는 어리지만, 수석은 다른 단원들과 함께 연주가 들어가는 시작과 끝을 맞춰야 한다. 바순 파트를 책임지는 것은 물론, 후임 단원들을 뽑을 때 절대적 권한을 갖는다.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은 월 2~3회 연주를 갖는다. 나머지는 베를린 국립음대 최고 연주자 과정을 다니면서 1주일에 6시간씩 학생들에게 1대1 레슨을 하고 있다.

유성권은 2010년 베를린 필하모닉의 클라리넷 수석 안드레아스 오텐자머(26)와 도이체 심포니 오보에, 호른 수석, 코미셰오퍼 플루트 수석과 목관 5중주단을 만들어 활동 중이다. 원래 뮌헨 ARD 콩쿠르에 나가보려고 꾸민 일인데, 다들 오케스트라 일로 바빠지면서 틈날 때마다 모여 연주를 한다고 했다.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은 내한 공연에서 마렉 야노프스키 지휘로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프랑크 페터 짐머만)과 브람스 교향곡 2번을 연주한다. 바순 소리를 유심히 들어보시길.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내한공연, 3월13일 예술의전당, (02)599-5743

[떠오르는 한국 출신 관악주자들]

한국 출신 관악주자들이 최근 급부상하고 있다. 서울시향 호른 부수석을 지낸 김홍박(34)이 지난달 북유럽의 대표적 오케스트라인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 수석으로 임명됐다. 김홍박은 2012년부터 스웨덴 왕립 오페라 오케스트라 제2수석으로 일해왔다. 베를린 필 아카데미에서 활동한 플루트 연주자 조성현(25)은 최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수석으로 들어갔다. 플루트 연주자 손유빈(30)은 2011년부터 뉴욕 필하모닉 종신 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바순 연주자 최영진은 노르웨이 트론트하임 심포니 수석을 거쳐 도쿄 필하모니 수석으로 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