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귀 숭실대 명예교수 "60세에 다닌 성악과, 배움에 늦은건 없죠"

이해성 2015. 1. 13.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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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교수 31년, 성악가·화가로 '제2인생' 4년간 성악과 학사과정 이수 자신있는 과목은 화성학..지난해 생애 첫 개인 미술전

[ 이해성 기자 ] 숭실대에서 31년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고재귀 물리학과 명예교수(69·사진)는 아마추어 성악가이며 화가이다. 지난달 학교 내 갤러리에서 생애 첫 개인 미술전을 열었다. 만찬 등 연이 닿는 여러 행사에서는 바리톤 가수로 곡을 선사한다.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그리고, 노래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면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고려대 물리학과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숭실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땄다. 고려대 등에서 강사로 일하고 국책연구기관에서 근무하다 1984년 숭실대에 부임해 2011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재직했다. 현재는 교양과목을 강의 중이다.

그는 "50세 전엔 밤 12시 전에 들어가 본 적이 없고 늘 학생들과 함께 연구했다. 참 열심히 했다"고 회상했다. 세부전공은 자성물리학으로 물리학 가운데 상대적으로 취직이 쉬워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했다. 많은 제자를 길러내 삼성, LG, 삼화콘덴서그룹 등에 취직할 수 있게 도왔다.

경기 성남시 정자동에 사는 그는 탄천 등 집 주변, 교내 등 일상생활을 유화로 그리고 있다. 그림을 처음 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다. 경남 남해가 고향인 그는 우연히 나간 '군(郡) 주최' 그림그리기 대회에서 입상한 걸 계기로 엉겁결에 '반 미술대표'가 됐다. "이후 여러 대회에 불려나갔는데, 힘들어서 어떤 대회를 일부러 안 나갔어요. 그래서 선생님한테 야구방망이로 엉덩이를 사정없이 맞았는데 잊혀지지가 않네요."

딸이 서양화를 전공하게 된 것도 그림을 다시 그리게 된 이유다. 성남 등 지역 시청이 여는 단체전에 가끔 참가했다.

지난달 개인전을 연 것은 한때 악화된 건강이 계기가 됐다. 지난해 원인불상의 심장이상으로 약을 먹으며 기력이 크게 떨어졌고 여러 검사를 받았다. "만약에 죽으면 모든 걸 두고 가는 건데….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학생들에게 성적은 주고 죽어야지, 미술품 개인전도 못 했는데…."

2006년 3월부터 2010년 2월까지는 숭실대 내 평생교육과정 성악과를 다녔다. 국악, 오페라, 독일 이탈리아 등 각국 음악, 합창, 지휘 등 과목이 개설돼 있고 실기에 중점을 두는 4년제 학사학위 과정이다. 그가 가장 자신 있던 과목은 수학적 원리가 들어 있는 화성학이었다. '새로운 앎'에 대한 그의 욕심은 남달랐다. 그는 "3학점 과목인데 (강사가) 정해진 시간을 어쩌다 채우지 않으면 얼마나 화가 나던지…"라며 웃었다.

그는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운영하던 '과학앰배서더'로 초등학교 등에서 강의할 때 성악 실력을 요긴하게 활용했다. "재밌게 얘기해도 아이들이 지루해할 때가 있는데, 그때 노래를 불러주면 아이들이 참 좋아했다"고 말했다. 정년퇴임할 때는 학내에서 열린 기념 음악회에서 직접 여러 곡을 불러 찬사를 받았다.

고 교수는 "무대에 서기 전에는 많이 떨리지만 무대에 서면 편안해지는 걸 보니 무대 체질"이라며 "배움에 있어 늦은 건 없다"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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