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yle 4060 >"늘 나로부터 달아나 왔지만 기타 하나는 정말 잘 치고 싶어"

기자 입력 2015. 1. 2. 14:31 수정 2015. 1. 2.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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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의 새해 '버킷 리스트'

2014년의 해가 정수리만 남기고 수평선 너머로 뉘엿뉘엿 모습을 감춘 12월의 늦은 날 김창완과 마주 앉았다. 장소는 서울 목동 SBS 사옥 맞은편 카페. 지난 2000년 SBS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의 DJ를 맡은 후 벌써 15년째 이곳으로 출근 도장을 찍고 있는 그에게 목동은 참 편한 장소다. "새 드라마 출연과 관련된 미팅이 하나 있어서 이곳에서 만나자고 했다"는 김창완은 이미 2015년이라는 흰 화선지에 난을 치듯 스케줄을 채워 나가고 있었다.

인터뷰의 주제는 '김창완의 버킷 리스트(bucket list)'. 중세 시대 교수형을 집행하거나 자살을 할 때 뒤집어 놓은 양동이(bucket)에 올라간 다음 양동이를 걷어차는 행위를 뜻하는 '킥 더 버킷(kick the bucket)'이 어원인 버킷 리스트는 죽음의 순간에 오히려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적어 내려간다는 아이러니한 행위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셈이다. 인터뷰 취지를 설명하자 간단명료한 답이 돌아왔다. "올해 못한 일 마저 하는 것, 유업을 이어가는 거죠." 새해라고 새것을 담는 것이 아니라 아직 온전히 담지 못한 것을 마저 담겠다는 것이 그의 뜻이다. 김창완은 답을 빙빙 돌려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와의 대화는 두괄식이었다.

"난 이것저것 아무거나 주워담는 편이에요. 특별히 어떤 가치에 경도돼서 생활하지 않고 오히려 기존의 가치를 해체하는 쪽이죠. 그러다 보니 지금의 어떤 가치나 트렌드에 편승하지 않으려 노력해요. 그게 바로 나를 지켜내는 절대적 가치예요. 그런데… 과연 인생의 바구니(bucket)라는 게 있긴 한가요?"

1954년생인 김창완이 환갑을 맞은 2014년은 특별한 한 해였다. 인생의 수레바퀴를 한 바퀴 돌린 후 다시 시작하는 60년이기 때문이었다. 김창완에게 "지난 60년을 자평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인생을 담금질하듯 테이블에 놓인 찻잔 속 티백을 수차례 우리며 한참 동안 도수 높은 안경 너머로 깊은 눈을 끔벅거렸다.

"글쎄요. 막상 평가를 해보라니 60년이 그렇게 짧게 느껴질 수가 없네요. 삶이 호흡지간에 있다고 말을 하는데 내 60년도 그저 한 번의 들숨과 날숨 아닌가 싶네요, 너무 건방진 이야기 같아도.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사실 내 60년을 간단히 표현할 만큼 내가 지혜롭지 못해요."

지난해 김창완은 참 바빴다. 중국 내 한류의 시발점이 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출연했고, 2년 만에 새 앨범 'E메이져를 치면'을 발표했으며 최근에는 사극 '비밀의 문'을 마쳤다. 그 사이 꾸준히 라디오도 진행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까마득한 후배 가수인 아이유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해 화제를 모았고,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로 대한민국이 실의에 빠졌을 때는 추모곡 '노란 리본'을 발표했다. "정말 많은 일을 하셨다"는 말에 김창완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게 단데요, 뭐."

"크게 성공한 드라마도 있고 저조한 드라마도 있었죠. 하지만 배운다는 측면에서는 성공과 실패가 따로 없어요. 모든 것이 제게 일어난 일이고 그로 인해 깨닫는 게 있죠. 특히 지난 4월은 누구에게나 참혹한 달이었어요. 일상을 다시 돌아보게 됐어요. 엄청난 비극으로 인해 일상의 중요함이 더욱 선명히 부각됐죠. 정말 진폭의 낙차가 큰 한 해였어요."

가수이자 작곡가를 거쳐 배우, DJ 그리고 소설가와 시인 등 김창완을 설명하는 수식어는 무수하다. 하지만 김창완은 안주하지 않는다. 지금도 또 다른 영역에 도전하고 스스로를 시험대에 올린다. 60년이 호흡지간이었다는 그의 말은 이미 행동으로 증명됐다. "이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수식어는 무엇이냐"고 우문을 던졌다.

"난 늘 나로부터 달아났어요.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닐까' 싶으면 이내 다른 짓을 했죠. 그런데 요즘은 무엇으로부터 달아나려는 내 성향으로부터 또다시 벗어나고 싶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들이 무엇인지 너무 정확히 규정해 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하면서 또다시 달아나고 싶어졌어요."

이쯤되니 정형화된 수식어로부터 자꾸 달아나려는 김창완을 활자 속에 가둔다는 것 자체가 결국 그를 괴롭히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지도 않고, 2015년을 맞이하는 소감을 말해 달라 하지도 않고, 버킷 리스트에 넣을 새로운 무언가를 생각해 내라 다그치지도 않고 "예전부터 해온 것 중 계속하고 싶고, 더 잘하고 싶은 것"을 물었다. 그러자 의외로 쉽게 답이 나왔다.

"지금도 남모르게 집요하게 하고 있는 게 딱 하나 있어요. 기타를 잘 치는 거예요. 지금도 침대 머리맡에 기타를 두고 잠들 때까지 쳐요. 평생을 쳐왔으니 남들은 '뭐 칠 게 있나' 싶겠지만 저는 계속 쳐요. 잘 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어요. 어느 순간 안다 싶으면 또 막히죠. 책을 펴서 이론을 파고 누군가에게 물으면 가르쳐줄 텐데 그런 방법은 싫어요. 어찌 보면 지금 저는 모른다는 것 자체를 굉장히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죠."

김창완은 똑같이 살아간다. 갑오년에도, 을미년에도. 갑오년 12월 31일과 을미년 1월 1일은 김창완에게 단 1분의 차이일 뿐이다. '새해맞이'란 걸 해본 적이 없다는 그의 인생은 마침표 없이 계속되고 있다. 해가 바뀌는 것은 세상의 이치가 아니라 그저 인간이 만든 규칙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올해도 라디오를 진행하고 연기를 하고 기타를 친다. 그리고 해가 질 때면 지인들과 어울려 술과 인생에 취한다. 그러다 2월이 되면 새 앨범을 낼 계획이다. 지난해 이미 곡 작업을 마치고 영국 유명 엔지니어가 마스터링 작업 중이다. 1977년 산울림 데뷔 앨범을 내고 어느덧 38년, 천생 가수로 살아가는 그에게는 새로울 것 없는 바람이 하나 있다.

"노래를 가슴으로도 들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요즘 음악 생태계는 이런 믿음이 없는 곳이에요. 그래서 많은 뮤지션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죠. 음악이 점점 산업으로 치부되며 진정한 예술가가 다 사라지고 있어요. 대체 언제부터 음악이 이렇게 불신임을 받았던 걸까요. 어찌 보면 영화라는 괴물이 예술업계를 다 잡아먹고 있어요. 이렇게 말하면 영화 쪽에서 나무랄 수도 있지만 대중이 즐기는 예술이 영화로 치중돼 다른 분야가 설 자리가 없어요. 이건 영화의 발전이 아니라 예술 전반의 위기일 수도 있어요. 올해는 예술 전반이 활성화돼 팍팍한 삶에 조금이나마 활력을 주는 예술 중흥의 해가 되면 좋겠네요."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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