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형 조립? 뭐든 깊이 파면 넓은 세상 만나죠"

2014. 12. 29.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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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프라모델 월드컵 챔피언' 중학생 안지훈군

정상에 오르면 시야가 트이게 마련이다. 외골수의 '오타쿠' 취미라는 오해도 받지만 실력을 쌓다 보면 안목과 견문을 갖춰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다. 말 많고 탈 많은(?) '중2'가 만든 건담 프라모델(조립식 플라스틱 모형)도 그랬다. 안지훈 군(14·경기 고양시 백석중 2학년)은 여느 중학교 2학년생과 다를 바 없다. 해외 축구를 좋아하고, 이성친구 얘기에는 귀가 솔깃하고, 영어·수학학원을 마치고 밤 10시나 돼야 집에 온다. 평범해 보이기만 하는 안군은 사실 '세계 1등'이다.

안군은 지난 7월 '2014 건프라빌더즈월드컵(GBWC)' 한국 예선에서 1위에 등극해 세계 13개국의 경쟁자들과 나란히 본선에 올랐다. 그리고 지난 22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GBWC 일본 본선에 한국대표로 출전해 14세 미만 주니어코스 1위 챔피언이 됐다. '동심(童心)'이란 이름의 안군 작품은 전투 중 홀로 낙오된 로봇이 아이를 만나 함께 눈사람을 만든다는 내용을 담았다.

잘 모르는 어른들은 '그깟 조립식'이라고 무시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일단 가조립했다가 부위별로 다시 분해하고요. 퍼티라고 지점토 같은 소재가 있는데 그걸로 눈에 띄는 분할선이나 사출 자국을 메우고 사포로 다듬어요. 이 과정을 표면이 매끈해질 때까지 계속하죠. 그리고 도색으로 마무리해요. 그 다음엔 배경이 되는 무대를 만들고요." 끊임없는 인내와 반복의 과정, 얘기만 듣자면 중학생의 취미가 아니라 장인의 작업이다.

안군은 3년 전부터 프라모델의 매력에 푹 빠졌다. 2011년 11월부터 아버지 안상훈 씨(47)와 함께 도색 장비 등을 갖춘 백화점 문화센터를 다니기 시작했다. 3년이 넘도록 매주 토요일 3시부터 8시까지 5시간씩 프라모델에 투자한다. 아버지 안씨는 영화사 상상필름의 대표다. 주말에도 바쁠 수밖에 없는 직종이지만 아무리 바빠도 '아들과 함께하는 취미생활'에는 시간을 낸다고 했다.

"예전부터 토요일은 아들과 함께 운동을 하거나 야구를 보러 가거나 하면서 함께 보냈어요." 아버지 안씨의 교육관은 남달랐다. 그는 공부로 1등을 하고 대기업에 들어가도 행복한 삶을 보장받는 게 아니라고 했다. 세계대회서 1등을 한 아들에게 칭찬만 해도 부족할 법한데 안씨는 "1등은 올해가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묻자 "자꾸 앞으로도 잘할 것 같다고 하면, 등수에 신경 쓰느라 부담만 늘고 취미로 즐기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일부러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결과보다 과정, 경쟁보다 취미'인 점은 안군도 마찬가지다. 수상 소감을 묻자 그는 "세계 곳곳에서 같은 취미를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친구도 되고 서로 배울 수 있는 자리가 돼서 좋았다"고 답했다. 실제로 안군은 대회에서 만난 외국 친구들과 페이스북 친구를 맺고 소식을 주고받는다. 아버지 안씨는 "사람들이 프라모델을 두고 실내에서 혼자 즐기는 폐쇄적인 취미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사람을 만나고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군에게 취미를 직업으로 발전시킬 계획은 없는지 물었다. 어른의 속된 질문에 아이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은 그냥 즐기는 게 좋아요." [홍성윤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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