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트라우마, 외상'후'가 아닌 아직도 외상'중'

입력 2014. 5. 11. 11:30 수정 2014. 5. 1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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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명수의 충분한 사람|심리치유 전문가 정혜신 인터뷰

울며 이야기 나누고 겨우 정리한 정혜신과의 인터뷰"무책임한 정부·부도덕한 언론의 칼질 멈추게 해야"

치유자 정혜신과 세월호 트라우마에 관한 인터뷰를 한 뒤 2주가 지났다. 상황은 끝나지 않았고 더 나빠졌다. 배가 침몰한 1차 트라우마보다 대통령이 중심이 되어 전개된 그 뒤의 모든 일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결정적인 2차 트라우마였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휘청거리고 있다.

내 자식의 죽음에 대해 범인에게 설명 듣는 상황

정혜신도 정상적이지 않다. 전남 진도를 다녀오고 경기도 안산을 오고 가기 시작하면서 더 그렇다. 악몽 때문에 팔다리를 떨기도 하고 가만히 있다가 급브레이크처럼 흐느낀다. 멍하게 있거나 맥없이 잔다. 그녀는 약한 우울증 증세라고 자가 진단했다.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 10여 년간 현장에서 고문생존자, 해고노동자, 국가폭력 피해자를 누구보다 많이 만난 트라우마 심리치유 전문가라는 이조차 이런 정도다. 우리가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세월호 트라우마의 파괴력이 그 정도다.

정혜신은 세월호 트라우마가 외상'후'(Post Trauma) 스트레스가 아니라는 걸 여러 번 강조했다. 아직도 외상이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나도 동의했다. 전쟁으로 치면 폭격으로 폐허가 됐는데 공습이 계속되는 상황. 그래서 지금은 복구를 논의할 단계가 아니라 안전하게 피신하고 공습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급선무다.

알면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면 공감이 되고 공감이 되면 해결책이 스스로 걸어 나온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 이 전대미문의 트라우마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다. 그녀는 거의 필사적으로 그런 사실들을 전하고 싶어 했다. 관련 지식과 현장 경험을 가진 전문가로서 지금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믿어서다. 그녀의 흐느낌 같은 조언을 다시 들었다.

-세월호 침몰 이후 지옥도를 현실 세계에서 목도하는 느낌입니다. 외상이 끝나지 않았으니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에요.

=그렇죠. PTSD라는 것은 '재앙적 외상 이후(後)에 나타나는 심리적 반응'인데 유가족이나 실종자 가족들은 아직 외상이 끝나지도 않은 상태입니다.

-아직 주검조차 찾지 못한 가족들도 있으니까요.

=그것이 첫째 이유긴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닙니다. 지금껏 밝혀진 상황만 봐도 해경은 이번 사건의 범인 격인 집단인데, 피해 가족들이 해경을 범정부 사고대책위원회의 한 축으로 계속 접촉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들의 브리핑을 통해서 구조 상황을 알 수 있고, 그들에게 구조를 요청해야 해요. 무기력하고 분노스럽지요. 내 자식의 죽음에 대해 범인에게 설명을 듣는 상황, 분명한 트라우마죠. 그뿐 아니에요. 지금 일반 국민들은 너나없이 '어른이라 미안하다. 엎드려서 사죄한다' 그러잖아요. 그런데 대통령을 위시해서 책임을 져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폭탄돌리기만 해요. 그러니 하루하루 비수에 찔리는 상황인 거죠.

'트럭 기사' 아빠, 장례 끝나자마자 일 나갔다가 '사고'

-이런 칼질은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습니다. 지금 가족들은 범죄 현장에서 계속 칼 맞는 상황인 거잖아요.

=네. 무엇보다 칼질을 멈추게 해야 해요. 그리고 철저하게 책임을 따져 처벌을 위한 수순을 밟아야 해요. 그게 유가족, 실종자 가족들의 심리 치유를 위한 선결 조건이고 치유의 첫 단계입니다.

-사고 직후부터 진도체육관, 팽목항, 안산 합동분향소 앞에는 심리상담 부스가 몇 개씩이나 설치돼 있잖아요. 개설했는데 상담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런 얘기를 하면서요.

=답답해요. 정부에는 유가족의 자살을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미션이 있는 거 같아요. 그런데 상담 부스를 만들어 상담사들을 앉혀놓는다고 자살이 막아지나요. 지금도 하루하루 무책임한 정부와 부도덕한 언론이 계속 칼로 찌릅니다. 멈출 기미가 안 보여요. 찔리는 사람은, 막을 방법이 도저히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너무 힘들다, 다 놓아버리고 싶다'는 맘이 들 거예요. 삶을 마감할 수밖에요. 아니면 하루하루 분노와 절망으로 피가 바짝바짝 타들어가다가 돌연사를 하게 되거나요. 이건 지금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에게 확률이 매우 높은 죽음의 형태예요. 상담 부스에 앉아서 피를 쏟는 사람에게 지금 심정이 어떠냐고 묻는 게 치유는 아닌 거죠.

-지금 상황에서는 심리 치유 전문가들이 할 게 아무것도 없다는 뜻으로 읽힐 수도 있겠어요.

=상담이 아닌 다른 치유적 접근이 더 필요해요. 이미 깨져버린 일상을 더 이상 깨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일이 시급합니다. 유가족 엄마가 있어요. 초등학생인 둘째를 학교에 보내고 종일 혼자 집에서 울고 있어요. 아이가 돌아오면 밥을 해먹여야 하는데 시장 가기도 힘들지만 먹고 살겠다고 그러고 있으면 죽은 아이한테 죄스러운 맘이 드는 거죠. 그러다 또 남은 아이에게 미안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거예요. 거기 가서 누가 집이라도 치워주고 둘째가 돌아오면 밥이라도 챙겨줘야 하지 않겠어요. 지금의 심리 치유는 그런 방향이어야 해요. 어떤 유가족 아빠는 트럭 운전기사인데 생계 때문에 장례가 끝나자마자 일을 나갔다가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사고를 냈어요. 계약직이라 그분이 회사에 배상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요. 아이 잃은 것도 감당이 안 되는데 슬퍼할 겨를도 없고, 분노도 그대로인데 일상은 다시 이런 폭탄에 두드려 맞아요. '긴급 재난 지역'으로 선포했고 해당 예산이 있으면 이런 것부터 빨리 해결해줘야 하는데 그런 건 어렵대요. 안 된대요. 이렇게 되면 '이제 다 그만두자' 하게 돼요. 더 버틸 힘이 없으니까요. 상담보다 삶이, 일상이 더 이상 깨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게 시급해요.

그녀는 내내 흐느끼듯 울었다. 그들의 고통을 제대로 알려야 도울 수 있다는 안타까움과 간절함이 뒤섞인 울음처럼 느껴졌다. 모를 리 없다. 손수건 하나를 나눠 쓰며 함께 오래 울었다.

생존자들에게는 빠른 심리적 개입을

-생존 학생들의 치유 프로그램은 시작됐다고 들었어요.

=네. 피해 가족과 달리 세월호 생존자들에게는 빠른 심리적 개입이 필요합니다. 이들은 전형적인 PTSD 상태예요. 트라우마의 본질은 죽음을 목전에서 경험한 사람에게 화인(火印)처럼 새겨지는 '죽음 각인'입니다. 죽음에 대한 생생한 실감은 인간의 어떤 경험보다 강렬해서 그 기억은 일생 동안 집요하게 따라다닙니다. 그래서 치유되지 않으면 그 기억에서 도망치려고 사투를 벌이거나 죽은 이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일생이 다 소모될 수 있어요. 단원고 생존 학생뿐 아니라 모든 생존자의 치유는 바로 시작돼야 해요. 주검 수색에 참여한 잠수사들도요.

-상황이 끝나지 않아서 유족들의 심리 치유는 훨씬 어렵겠죠.

=어려워도 신뢰를 쌓는 것부터 해야 해요. 먼저 유가족들에게 '당신들은 지금 칼에 계속 찔리는 범죄 현장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이지 심리적 문제를 가진 환자가 아니다'라는 것을 분명히 알려줘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들과 최소한의 공감대가 생겨요. 지금 피해 가족들의 분노는 너무나 정당해요. 상담사들은 그 분노에 대해 공감을 넘어서 정서적 참전이 필요합니다. 이건 정치 투쟁이 아니라 치유자의 중요한 역할이에요. 그런 과정을 거쳐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분노가 어느 정도 수습돼야만 비로소 고요히 자식의 죽음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아이와의 이별을 준비할 수 있는 거죠. 이 엄청난 분노를 그대로 품고서는 정상적인 애도 과정을 거치기 어려워요. 그것이 세월호 트라우마 심리 치유의 첫 단계예요.

-세월호 침몰 사건은 지독합니다. 도대체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아요. 유가족들은 오죽할까 싶은 생각에 자기가 엄살을 떠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도 하고요.

=생존자나 유족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게 있어요. 세월호 참사가 앞으로 우리를 어떤 세상으로 데려가게 될 것인가 하는 거예요. 생존 학생과 살아남은 교사들 앞에는 어떤 문제가 기다리고 있고, 유족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까. 우리 마음은 어떻게 흘러갈까. 앞으로 닥칠 문제에 대한 조망권을 확보해야만 그 상황에서 자기통제력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어요. 알면 대비를 할 수 있고 그 일이 닥쳤을 때 덜 당황하고 조금 더 잘 대처하게 되니까요. 무력감에서도 더 잘 벗어날 수 있고요. 모르고 당하면 쉽게 무너져요.

-폭격처럼 계속되는 외상이 종결된 뒤 남겨진 가족들이 겪게 되는 가장 큰 심리적 고통은 뭘까요.

=잊혀지는 것에 대한 공포요. 그게 가장 무섭죠. 그거 때문에 죽음을 선택할 만큼요. 죽음에 대한 공포란 본질적으로 내가 먼지같이 사라지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거라는 관계에서의 완전한 단절이지요. 남겨진 부모들에겐 아이의 물리적 실체가 사라진 것도 죽음이지만 진짜로 완전한 죽음은 내 아이가 잊혀지는 거예요. 내 아이의 삶이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이 사라지는 거요. 이런 공포는 우리가 조금은 막을 수 있어요. 부모의 마음속에 이 아이를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는 방식으로요.

흐느낌으로 말소리가 바람에 흩날리는 것처럼 이어졌다 끊어졌다 했다. 잊혀진다 생각하면 정말 무섭겠구나. 살아도 산 게 아니겠구나.

상처 입은 치유자들이 최고의 치유자들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죽은 아이의 중학교 때 친구, 학원 친구나 교회 친구들이 있을 거잖아요. 그 친구들이 죽은 아이에 대한 기억과 함께했던 느낌을 편지에 써서 죽은 친구의 부모님에게 보내는 운동을 하는 거예요. 내 아이가 친구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구나, 우리 아이가 친구들에게 그런 존재였구나, 짧지만 가치 있는 경험을 주고받았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으면 부모에게 많은 위로가 될 거예요. 내 아이의 삶이 나름의 가치가 있었다는 확인을 받는 과정은 죽은 아이에게 생명이 부여되는 과정이에요. 살아 있는 사람들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과정이에요. 이런 편지가 부모들에게 최소 10년은 배달되면 좋겠어요. 편지를 쓰는 과정에서 아이 친구들도 치유를 경험하게 될 거고요.

-생존자들의 고통을 치유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필요하겠죠.

=그럼요. 유족들의 참담함 때문에 생존자들이 행운아처럼 보이기도 할 텐데요. 저는 생존자들이 앞으로 겪을 고통의 과정을 생각하면 전혀 그런 생각이 안 들어요. 천형과 같은 시간이 그들 앞에 있거든요.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면 평생 고통 속에 살기도 해요.

-지난번 인터뷰에서 안산 PTSD센터 설립을 제안하면서 최소 10년 이상 유지돼야 한다고 얘기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겠네요

=네, 그렇죠. 좀 있으면 보상금도 이슈가 될 텐데요, 얼마가 될진 모르지만 저는 보상금보다 중요한 게 생존자와 유가족들에 대한 장기적인 치료 보장이라고 생각해요. PTSD 후유증은 상상 이상이에요. 자식을 잃은 충격으로 가정이 깨지거나 암 등 온갖 질환의 발병, 알코올중독 같은 상황에 빠지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그런 게 PTSD의 진행 과정이거든요. 세월호의 생존자나 유족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살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진입하게 돼요. 이전 세상에서 기능하던 것들이 멈출 수 있어요. 치유되지 않으면 직장을 다니거나 일을 하는 것도, 학교를 다니는 일도 어려워요. 다니더라도 꿈속을 헤매듯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여서 일상에서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당하기도 해요. 5년, 10년이 지나서도 그런 문제가 나타나는데 그러면 주위 사람은 물론이고 자기조차 세월호 트라우마와 자신의 문제를 연결짓지 못해요. 내 삶이 왜 계속 황폐해지는지 알지도 못한 채 나락으로 떨어지는 거죠. 꼭 제안하고 싶어요. 최소 10년 동안은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들에게 어떤 질병이든 의료비 전액을 국가가 보상해주는 걸 명문화해야 해요. 그래야 그들을 살릴 수 있어요.

-일반 시민들에 비해 유가족이나 실종자 가족들은 단원고나 살아남은 선생님들에게 분노나 서운함이 많은 거 같더군요. 생존자 아이들이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게 섭섭하게 느껴지는 유가족 부모도 있다 하고요.

=당연히 그런 맘이 들 수 있어요. 유족의 눈으로 보면 지금 생존자들은 행운아처럼 느껴질 거예요, 우리 아이는 세상에 없으니까. 생존자들이 앞으로 짊어져야 할 천형 같은 삶을 지금 시점에선 알 수 없으니까요. PTSD가 집단적으로 발생할 때 동서양을 막론하고 항상 나타나는 현상은 피해자들끼리 주고받는 분열과 상처, 피해자 사이에서 상대적인 가해자를 찾는 심리 현상이에요. 외부의 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일 때는 그래도 힘을 낼 수 있지만 피해자 상호 간에 분열과 상처가 생기면 그땐 치명적이죠. 그런데 반대로 어느 누구보다 결정적인 치유적 도움을 피해자끼리 줄 수도 있어요. 그걸 '상처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라고 합니다. 아이 장례를 치른 부모들이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러 진도에 내려갔잖아요. 이분들이 상처 입은 치유자의 전형입니다. 최고의 치유자들이에요.

참사 책임자들 처벌 끝까지 집요하게

-그런 치유적 순환은 안산을 중심으로 전개돼야 하는 것이겠죠.

=물론입니다. 그래야 해요. 안산에 연립주택 단지가 있는데 이 지역에서 살던 아이들 150명이 사망했어요. 이 동네는 거의 다 초상집인 거예요. 이 동네에 사는 생존자 아이는 동네에 들어가는 거 자체가 무섭답니다. 동네 분위기도 그렇고 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도 죄스럽고 죽은 아이 엄마를 보면 면목도 없고. 벌써 이사를 가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상처만 받고 떠나버리면 이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기회는 없어진다고 봐야 해요. 다른 곳에 가서 이 기억을 잊으려고 필사적으로 외면하고 살 테지만 그럴수록 이 상처로부터 심리적으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해요. 그래서 이 공동체가 깨지지 않도록 돕는 게 치유의 중요한 바탕이어야 해요. 저는 안산 PTSD센터가 150명의 아이가 사라진 그 동네 한가운데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죽음의 동네처럼 된 그곳에 치유센터가 자리를 잡아야죠. 피해 가족들이 아무 때나 모일 수 있고, 밤에 잠이 안 오면 찾아갈 수도 있고, 살아남은 아이들이 무서워하지 않고 함께 지낼 수 있는 치유적인 사랑방 공간 같은 형태로요. 사람들이 힘을 모아 그 마을 전체를 노란 리본으로 뒤덮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늘 환할 수 있고 그런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심리적 구조를 만들어내야 하는 거죠. 안산을 치유적인 도시로 만든다 할 만큼 사회 치유적인 설계가 이뤄져야 납덩이처럼 가라앉은 공동체를 구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그 안에서 개인의 치유도 가능합니다. 이런 일에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으면 지금 같은 무력감에서도 빠져나올 수 있고요

-일반 시민들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치유적 해법이 있을까요.

=세월호 참사에 책임이 있는 모든 사람과 구조를 샅샅이 밝혀내는 일에 나서는 것입니다. 해경, 청와대, 안전행정부, 국회의원, 협회,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 언론사와 언론인들, 일베 등 이 참사에 결정적인 책임이 있거나 치명적인 상처를 준 사람들을 끝까지 찾아내서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요구해야 합니다. 나치를 척결하듯 집요하게 끝까지요. 꼭 광장에 나가지 않아도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진행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떼죽음으로 몬 이 끔찍하고 추악한 구조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집단살인에 가담한 사람들이 여전히 사회를 장악하는 세상에서 생존자와 유족들은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그런 독소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치유의 본질입니다. 정신과 의사가 1 대 1 심리상담을 1천 시간 하는 것보다 1만 배는 더 치유적인 일입니다. 그거 외면하고 심리치유 센터를 짓고 심리치유 사업비 1천억원을 들인들 아무 의미가 없어요.

-충분히 알아들었지만 과격한 정치적 주장처럼 듣는 사람도 있겠어요.

=그렇지 않은 거 잘 아시잖아요. 유가족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세요. 내 자식이 억울하게 죽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완전히 달라졌다면 '고맙다. 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네 동생이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 산다' 이런 맘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그래야만 아이를 편안하게 놓아줄 수 있어요. 마음의 이치이고 치유의 근본 법칙입니다. 정치적 주장이 아니에요.

학익진의 대형으로 갇힌 그들

꺼억꺼억 울음 속에 섞인 그녀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치유자는 근본적으로 무당과 비슷하다는 그녀의 지론이 새삼 와닿았다. 나치 척결하듯 독소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는 그녀의 치유적 해법이 근본적이라는 데 우리 둘이는 김 한 장 차이도 없이 합치했다. 필사적으로 얘기하고 싶었겠구나, 진심으로 이해했다. '이거라도 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한 정혜신은 인터뷰 다음날 다시 안산으로 갔다가 새벽에 돌아왔다. 인터뷰 원고를 마무리하는 새벽, 유족들은 아이들 영정 사진을 품에 안고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 길바닥에서 밤을 새웠고 경찰은 학익진의 대형으로 그들을 가뒀다. 글을 쓰다 소식을 듣다 통곡처럼 울다 했다. 그런 상황인데 무슨 치유를 말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나도 필사적으로 정혜신의 말을 정리했다. 이거라도 해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명수 심리기획자, 녹취 전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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