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별명이 '교문앞 스토커'예요"

2014. 1. 1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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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정연순의 말하자면] 학생들에게 러브레터 받는 용인 흥덕고 이범희 교장"둘 다 행복할 수 없다면 교사가 불행하고 아이들 행복한 학교가 차선"

우리 사회에서 교육만큼 풀기 어려운 숙제도 없을 겁니다. 모두들 공교육이 정상화되어야 한다고 외치지만, 정작 공교육이 표류하는 데는 국가·사회·부모·교육자 모두 '공범'입니다. 학벌 서열 구조를 탓하면서도 내 아이만큼은 그 경쟁에서 윗자리를 차지하기 원하는 게 부모의 솔직한 마음입니다. 경기도에서는 김상곤 교육감이 취임한 뒤 282개교가 '혁신학교'라는 이름으로 공교육 개혁의 실험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2014년 첫 인터뷰를 하러 용인 흥덕고등학교를 찾아갑니다. 비평준화 지역인 용인에서 2010년 개교한 흥덕고는 첫해 정원 미달이라는 아픔을 겪었지만, 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 끝에 지난해 첫 졸업생들의 대학 진학률이 85%를 웃돌았습니다. 이곳에서 이범희(52) 교장을 만납니다. 1989년부터 윤리 과목을 가르쳐온 이 교장은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참여소통 교육모임'의 회장으로 활동했습니다. 혁신학교 교장 공모에 평교사로 지원해 2010년 흥덕고 초대 교장으로 부임했습니다.

진로 선생님 따로 두고 정규 수업도

-첫 졸업생들의 대학 진학률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사실 외부에서는 대학 진학률보다는 이른바 '인서울', 지명도 있는 대학에 얼마나 들어가느냐로 평가해요. 어떤 대학에 얼마나 들어갔느냐는 성과를 우리는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갓 출범한 혁신학교에 대한 비판과 옹호의 논리도 그런 시각을 못 벗어나고 있어서요. 다행히 우리 아이들이 2013년에 거둔 대학 진학 성과가 외부에서 보기에 나쁘지 않아서 혁신학교를 살려내는 데 도움이 되긴 했죠. 하지만 교육의 본질은 그게 아닌데, 결국엔 수량화된 얘기가 나오는 게 안타깝고 고충이 큽니다.

-그래도 대학 진학을 많이 한다는 게 학교가 포괄적인 성공을 했다는 걸 보여주기도 하잖아요.

=비평준화 지역의 신설학교라 다른 학교에 지원했다가 밀린 아이들이나 아예 지원을 못할 수준의 아이들이 왔고, 그나마 480명 모집정원인데 110명밖에 못 채웠어요. 혁신학교라고는 하지만 진학을 포함한 진로 지도가 의미 있어야 학부모나 아이들을 설득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학교가 좋다 해도 학부모를 설득할 수 없어요. 결국 아이들이 삶의 진로와 직접 연결된 대학의 전공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흐뭇하고 다행스럽습니다.

-진로 지도는 어떻게 하나요.

=일반 교과과정에서 충족할 수 없는 분야를 여러 아카데미로 개설해요. 그중에 진로 아카데미가 있어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직접 보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요. 그 외에 진로 담당 선생님을 따로 두고 정규 수업 시간도 배정해요. 2학년에 올라가면 학생들이 직업 현장을 방문해 직접 체험도 하고, 3학년 때는 최종적으로 자신의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아이들이 잘 따라가나요.

=그게 안 되는 경우도 있죠. 부모님께도 어느 경우에도 진로 지도의 파라다이스는 없다, 부모가 직접 해결하기보다는 학생 본인이 적극적으로 따라오도록 도와주고 독려해달라고 해요.

얘기를 나누는 도중 수업이 끝났는지 한 남학생이 교장실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요리 시간에 만들었다며 접시에 한가득 떡볶이를 담아왔는데, 전혀 스스럼이 없어 보입니다. 청바지를 입은 교장 선생님은 냉큼 떡볶이를 한입 베어뭅니다.

-수업 종소리가 최신 가요네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스스로 선택해서 쓰게 해요. 그런 것까지 원치 않는 소리를 지겹게 들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학생들의 교장실 출입이 자유로운가봐요.

=학교는 공적 공간이기 때문에 전부 개방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외부인과 관련한 안전 문제를 빼고는요. 그래서 모든 유리창에 선팅을 안 했어요. 아이들이 복도에서도 교장 선생님이 뭐하는지 바로 볼 수 있고 저도 창문을 열어 아이들과 대화를 할 수 있죠. 낮에 졸릴 때가 있는데 그때는 좀 힘들어요. (웃음)

"학급 작으니까 무엇이든 할 수 있어"

-학생들이 교장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가 많이 붙어 있는 교장실은 처음 봐요, 연애편지 같기도 하고요.

=저에게만 아니고요, 아이들에게 우리 학교가 뭐가 제일 좋냐고 물어보면 선생님들이 좋다고 해요. 어느 학교건 특정 교사를 지목해서 좋다고 하는 일은 흔히 있지만 우리 학생들은 선생님들이 다 좋다는 거예요. 어떤 신입생이 아버지에게 "흥덕인의 자긍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대요. "입학한 지 몇 주나 됐다고 그런 말 하냐"고 아빠가 말했더니, "아빠는 흥덕인이 아니면 얘기도 하지 마" 그랬대요. 아침에 정문에 들어서면 교장 선생님이 "아무개야, 학교 생활 괜찮냐, 잘 다니고 있냐" 이렇게 물어보는 학교는 자기네 학교뿐이라고요.

-아이들 이름을 다 외우시나요.

=제 별명이 '교문 앞 스토커'예요. 페이스북을 하면서 아이들 글에 댓글도 달아주는데요. 글을 읽다보면 아이들 생활이 눈에 다 들어와요. 엄마가 일하시느라 새벽에 들어오는데 설거지 안 해놓고 잤다가 야단맞았다는 글을 읽고서는, 그 학생이 등교할 때 "네가 좀 해두지 그랬냐"고 말했더니 깜짝 놀라는 거죠. 이런 게 계속되니까 아이들이 "스토커 조으다(좋다)" 이렇게 쓰기도 하고요. 아이들이 만든 학교 소개 동영상에 "웬 덥수룩한 아저씨가 말 걸어오길래 웬 낯선 상황인가 당황했는데, 알고 보니 내 얘기를 들어주는 거야. 더 놀라운 건 그 사람이 교장이라지?" 이런 걸 담고 그랬어요. (웃음)

-학생과 교사의 유대감이 강한 비결이 있나요.

=1학년은 30명이 아니라 15명씩 작은 학급제를 운영해요. 행정상으로는 8학급이지만 반을 다시 쪼개요. 쉬는 교사 없이 담임을 맡게 되는 거죠. 입학 전인 2월에 학생·부모 상담을 다 마쳐요. 학급이 작으니까 아이들과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요. 조회 시간에 같이 산책을 한다든가 배드민턴을 치고요. 그러다보면 표정에서 고민을 읽을 수 있죠.

-그래도 이른바 문제아는 있을 텐데요.

=당연하죠. 그런데 교사나 학부모나 문제아를 바라보는 시각에 이중적인 게 있어요. "학교니까 좀 문제가 있어도 다 품어야 한다" 이러면서도 "내가 가르치는 반에는 그런 아이가 없으면 좋겠다"고 하죠. 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제 자식은 다 외국으로 보내잖아요. 교육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어떻게 함께 극복해나갈지를 계속 천착해야 해요.

흥덕고는 학교폭력 사실을 학생부에 기재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워 2012년 교육부의 감사를 받았습니다. 실제 학교폭력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왔는지 궁금해집니다.

-학교폭력 사실을 지금도 학생부에 기재하지 않나요.

=네, 별도의 장부를 두고 있지만 그 방침에는 변함이 없어요. 5개 학교가 함께하고 있는데, 그 때문에 경찰 조사도 받았지요. 학교폭력 문제는 학생·교사·학부모·지역사회가 함께 풀어야 하고, 여타 사회적 병리와는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거든요. 학교폭력의 근본적 원인을 살핀 뒤 적절한 조처를 해야 하는데 현상만 보고 즉각적인 대응을 하면 과연 학교폭력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을 미성숙한 존재로 보지 말자"

학교폭력의 학생부 기재 문제는 초기 교육부의 강경한 방침에서 조금씩 조정되고 있습니다. 기록 보관 기간이 10년에서 5년으로, 다시 2년으로 바뀔 예정입니다.

-학교폭력 문제가 없지는 않을 텐데요.

=자신 있게 문제없다고 말할 순 없는데, 우리 학교는 거의 없는 편이에요. 다행이지요.

-성공 요인이 특별히 있나요.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을 설치한다든지 경찰을 상주시킨다든지 이런 걸로 해결할 일이 아니죠. 평소에 교사가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교사가 아이들로부터 어떤 걸 배우고 성장하는지를 보여주는가에 달렸다고 생각해요. 굳이 말씀드린다면, 또래 중재 프로그램을 경기도에서 처음으로 도입했어요. 학교폭력이든 어떤 문제든 우리 공동체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 아이들 스스로 해결 역량을 키우는 게 중요해요.

-교사도 아이들이 무섭다는 말을 하고 교권이 무너졌다는 말도 많아요.

=학생인권조례 안에 사실은 교권 보장도 포함돼 있어요. 인권이 나의 권리만 주장하는 게 아니잖아요. 학생의 권리만을 주장하라는 게 아니라 학교 공동체에 있는 친구·교사·직원 등 다른 구성원에 대한 배려도 함께 해야 한다고 가르치죠. 너무 이분법적으로 대립하는 것처럼 언론이 다루고 있어요.

-그래도 학생과 갈등하는 교사가 없지 않을 텐데요.

=우리 학교만 사회와 떨어져 청정한 게 아니니까요. 다만 좀더 인내한다고 할까요. 다른 학교에서 흡연 3회로 징계하면 우리는 10번 정도까지 참아요. 그리고 아이들 생활을 통제하는 생활부를 따로 두지 않아요. 교사가 아이들을 개별적으로 만나고요. 아이들을 통제·관리해야 하는 미성숙한 존재로 보지 말자는 것, 교사 역시 더불어 성장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강조하고, 내 앞에 오기까지의 인연의 소중함이랄까 이런 관점에서 보자고 늘 이야기하죠.

-그게 잘 되나요. 자기 자식도 미울 때가 있는데요.

=사실 쉽지 않아요. 교사가 학생한테 문제가 있어 부모님을 오시라고 하면 부모님은 당당히 말해요. "그래서 사람 만들어달라고 학교에 보낸 게 아닙니까." 교사 편드는 쪽은 어디에도 없어요. 속상할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교육을 바꾸는 출발점은 교사가 조금 더 힘을 내는 데 있다고 봅니다.

-흡연하는 학생을 적발하면 교사가 함께 운동장을 뛴다는 말을 들었어요.

=지금은 안 해요. 첫해에는 함께 운동장을 뛰었죠. 그런데 그게 EBS에 방송되면서 전국에서 스무 살이 넘는 복학생들이 막 지원했어요. 흡연 적발이 너무 많아져서 선생님이 하루에도 몇 시간씩 운동장만 뛰어야 하는 거예요. (웃음) 도무지 할 수가 없어서 백두대간 종주로 바꿨어요. 우리 학교는 '도전 과제'라는 게 있거든요. 책 100권 읽기, 소논문 쓰기 등을 학생들이 완수하면 인증패를 줘요. 백두대간 9구간을 3년간 뛰는 것도 도전 과제인데, 함께 하는 거죠.

유신 지지하다 반대한 정치 선생님

-흥덕고도 기본반·심화반을 두고 있어요. 우열반이 차별이고 낙인 효과가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저는 '보편적 수월성'이라는 용어를 쓰고 싶어요. 아이들이 성공하는 트랙을 성적 하나로 보는 게 아니라 다양화해 모든 아이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수월하도록 성장 기제를 만들어주는 게 학교의 역할이죠. 우리 학교는 성적에 따라 강제로 반을 나누는 게 아니에요. 상담을 거쳐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해요. 기본반에 들어가면 1학기와 여름방학에 중학교 과정을, 2학기와 겨울방학에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을 배워요. 방학도 없이 두 배로 열심히 공부해야 해요. 자발적으로 원하고 성실히 하겠다고 약속해야 해요.

-학생이 선택하는 거군요.

=네, 아이들의 만족도를 높이려면 선택의 폭을 늘리고 개별화해야 해요. 예를 들어 음악·미술뿐만 아니라 이걸 통합하는 교과목인 연극도 정기 수업으로 두고 있어요. 학년 말에는 뮤지컬 공연 같은 걸 프로젝트로 기획하고요. 사회와 미술 과목을 합쳐서 '흥덕지구 아름답게 꾸미기'도 하죠.

-혁신학교가 예산을 많이 쓴다거나 교재 개발과 회의 때문에 교사 부담이 크다는 비판도 있더군요.

=돈의 문제는 아니에요. 사실 학교 예산이 는다는 게 일이 늘어난다는 의미거든요. 학교 문화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는 교사들이 좋아하지도 않아요. 교사와 아이들이 모두 행복한 학교가 최고지만 현실에선 힘들죠. 그렇다면 교사가 불행하고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가 차선책이에요. 아이들이 불행하고 교사가 행복한 학교를 선택할 수는 없어요.

아이들의 행복이 우선인 학교. 첫인사를 할 때 받은 이 교장의 명함 뒷면에는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교사를 하기로 결심한 동기가 궁금해지네요.

=고등학교 때요, 정치 과목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유신헌법을 좋게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10·26이 일어나니까 갑자기 태도를 바꿔 반대하는 거예요. "전에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다"고 하니까, "그것이 삶이고 정치"라고 하시는 거예요. (웃음) 친구들 몇 명이 "우리가 선생님이 되자, 저런 선생님은 되지 말자"고 다짐했지요. 지금도 교사가 되겠다는 아이들을 만나면 나를 어떻게 볼까 생각해봐요.

학생과 삶을 나누고 성장하는 교사

교장실 한쪽 벽에 '복학생'이라고 쓴 이름표가 달린 목걸이가 있습니다. 뭐냐고 물어봤더니 이 교장은 웃으며 답합니다. "체육대회 때 아이들이 저에게 달아준 거예요." 왜 그랬을까요. 대화 도중 몇 번이나 강조한 '교사도 학생과 함께 삶을 나누고 성장하는 존재'라는 말의 의미를 학생들이 어느새 알아차린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고 그럼으로써 늘 행복한 교장 선생님을 만나고 나오는 2013년의 마지막 날, 언젠가는 우리 공교육도 제자리에 우뚝 서지 않을까 하는 새로운 희망을 품어봅니다.

정연순 변호사, 녹취 나해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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