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직 당신과 동거 중입니다".. 김수영 사후 45년 부인 김현경씨 '김수영의 연인' 에세이집 내

2013. 3. 5.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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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내 기억 속에 늙지 않은 당신. 기억 속에서 당신은 48세의 모습으로 정지해 있는데 저는 서재의 유품을 피붙이처럼 안고 15번의 이사를 거듭하면서 이렇게 지독한 사랑의 화살을 꽂고 살고 있습니다. 당신이 쓰던 테이블, 하이데거 전집, 손때 묻은 사전과 손거울까지…. 나는 아직 당신과 동거 중입니다."

시인 김수영(1921∼1968)의 미망인 김현경(86·사진)씨가 남편 사후 45년 만에 에세이집 '김수영의 연인'(실천문학사)을 5일 펴냈다. 이 책엔 저자가 간직해온 김수영의 미공개 사진들이 담겨 있어 눈길을 끄는 것은 물론 김수영 시의 첫 독자이자 대필자로서 고인이 남긴 2000장 분량의 유고(遺稿)에 일일이 번호를 매기던 문학적 동반자로서의 심정이 애절하게 묻어난다.

"수영을 처음 만난 게 진명여고 2학년 어느 여름이었나 보다. 멀리서 두 남자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걸어왔다. 이종구와 김수영이었다. 유년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이종구는 수영의 선린상고 2년 선배이자 일본 유학생활 내내 함께 기거한 막역지우였다. 이종구가 나와 수영 사이에 다리를 놓으면서 우리는 펜팔을 했다."

이후 이화여대에 재학 중인 김현경이 어느 여름날 한강 백사장을 걷다가 알몸으로 물속에 뛰어든 일이며, 이 일을 두고 김수영이 두고두고 '아방가르드'한 여자라고 되뇌던 기억은 차라리 다가올 시련의 아름다운 전조였다. 1950년 4월 결혼한 두 사람은 김수영이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에 징집되면서 파경과 재회를 반복하는 운명의 장난에 몸을 맡겨야 했다. 1952년 김현경은 취직을 위해 부산에서 교사생활을 하던 이종구를 찾아갔다가 그와 살림을 차리게 되지만 2년여 만인 1954년 김수영에게 다시 돌아간다.

서울 돈암동과 성북동 전셋집을 전전하던 둘은 1956년 마포 근방인 구수동에 집을 마련하고 생의 가장 행복한 시절을 맞는다. "서재에 들어서자마자 저는 그이의 초고를 봅니다. 깨알같이 쓴 장문의 시. 그의 시를 정리해서 원고지에 깨끗이 옮기는 작업이 저의 과업입니다. 몇 줄 안 되는 짧은 시일 때는 옮겨 쓰는 데 몇 분 걸리지 않아 아이들 시장기에 별 지장이 없었지만, 장시나 산문은 몇 시간이 걸릴 때도 있어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칭얼거리기도 합니다. 한 편의 시가 완성될 때마다, 그가 입버릇처럼 말한 산고(産苦)를 온 식구가 다 겪은 셈입니다."

현재 경기도 용인시 마북동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김씨는 가장 큰 방을 김수영의 유고와 유품을 모아놓은 서재로 꾸며 놓았다. 그는 아직도 김수영과 동거 중인 연인인 것이다. "당신보다 반세기를 더 살고 있는 내 인생은 결코 허무하지 않습니다. 이제 저도 언젠가는 곧 당신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할 사람, 모든 서러움을 가지고 하늘나라로 갈 날이 오겠지요. 꿈에서라도 나타나주기라도 하면, 이 책과 함께 당신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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