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오늘의 인물

"'여의도 텔레토비'는 어른이 보는 동화죠"

연합뉴스

tvN 'SNL코리아 - 여의도 텔레토비' 내레이션 맡은 구자형 성우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국내는 물론 전세계 아이들을 사로잡은 유아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 이 유명한 애니메이션의 내레이션을 맡은 다정다감한 아저씨의 목소리만 들리면 우는 아이도 '뚝' 그치고 TV 앞으로 달려온다.

토요일 밤늦은 시간 방송되는 tvN 'SNL 코리아 - 여의도 텔레토비'. 톡톡튀는 패러디와 비판정신으로 무장해 젊은층의 인기를 얻는 이 프로그램에서는 신랄한 정치 풍자를 담은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상징하는 '또'에게 "반값 수업료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이냐"며 '단독 면접'을 봐주고, 이명박 대통령을 나타내는 '엠비'를 보고서는 "'엠비' 어깨의 레임덕이 유난히 무거워 보인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두 프로그램의 간극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런데 내레이션을 맡은 목소리는 같다.

바로 20년차 베테랑 구자형 성우(27)가 그 주인공이다. 최근 여의도의 한 녹음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여의도 텔레토비'는 어른이 보는 동화에요. 분위기는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것과 같지만, 어른용이라는 걸 생각하면 아무래도 내레이션의 억양이나 느낌들이 달라지겠죠."

해학과 풍자가 포인트인 만큼, 내레이션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여의도 텔레토비'에서 들려주는 그의 목소리는 그렇지 못한 현실을 비웃기라도 하듯 '뽀로로'에서보다는 훨씬 밝고 경쾌하다.

"시즌 2의 마지막쯤에는 소리를 '버럭' 지르기도 해요. 직접 깊이 개입해서 비꼬는 부분도 있죠. 이런 점이 아이들 프로그램과는 다르게 '맛'을 내주는 부분입니다."

'여의도 텔레토비'는 최신 정가 소식을 담아낸다. 이 때문에 그의 작업은 금요일 밤늦게나 이뤄진다.

CG를 입히기 전 영상에 맞춰 그가 목소리를 녹음하면, 제작진이 세세한 부분을 조정·편집하는 식이다.

구자형 성우는 "사실 '텔레토비'는 어른들도 좀 봤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국회와 연결지어 패러디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했다"며 "실제로 실현되니 재미있다"고 말했다.

또 "처음 보고 수위가 세다 보니 담당 PD에게 '계속 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봤다"며 "담당 PD는 전체적으로 풍자하는 것이니 괜찮을 것이라고 안심시켰다"고 덧붙였다.

"연기자들이 다들 잘해요. 특히 김슬기 씨는 매번 화제가 되던데요. 욕을 잘해서 그런가? (웃음)"

그는 지난 1992년 KBS 공채 성우 23기로 첫발을 들였다. 올해로 20년을 꽉 채운 경력이다.

"저는 흔히 이야기하는 '노력 안하고 된 사람'이에요.(웃음) 친구가 학교 앞 사진관에서 사진 찍어주고 시험 보라고 해서 봤는데, 한 번에 됐죠."

그는 "나에게 배우는 학생들도 기분 나빠할 만하다"며 농을 던지고서 "그래도 들어와서 엄청나게 공부를 했다"고 부연했다.

구자형 성우는 20년간 애니메이션, 영화, 다큐멘터리를 오가며 200편이 넘는 작품에 목소리 출연했다. CF와 기타 홍보 영상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다. '이누야샤'의 미로쿠, '오늘부터 마왕!'의 군터 경 등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에게는 특히 유명한 목소리다.

그가 사랑받은 비결은 무엇보다 고급스럽고 신뢰가 가는 목소리일 터.

"물론 유전적인 부분도 있어요. 제가 머리와 골격이 커서 공명 조건이 좋거든요. 또 서울에서 살아서 사투리도 없죠. 부모님이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시는데, 그래서 저도 목소리가 좋나 봐요."

목이야말로 성우에게는 '보물'이지만 그는 목을 위해 특별한 관리는 받지 않는다. 남들과 똑같이 물을 많이 먹고, 항상 건강을 유지하려 운동을 꾸준히 하는 정도다.

스노보드 마니아인 그는 요즘 일주일에 세 번씩 꼭 스키장을 찾는다.

그동안 목소리를 연기한 무수한 애니메이션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것은 주로 양면성을 지닌 악역들. '나루토'의 우치하 이타치, '트랜스포머'의 메가트론, 특히 '카우보이 비밥'의 스파이크 스피겔이 가장 인상깊었단다.

"껄렁하지만 과거에 아픔을 가진 인물, 어둠과 밝음을 동시에 지닌 캐릭터를 선호했어요."

20대에 일을 시작한 그지만, 어느덧 40대 후반에 접어들었다. 아이들과 교감을 나누어야 하는 애니메이션 작품에 꾸준히 출연하는 게 어려울 법도 하다.

"성우는 영어로 '보이스 액터'라고 하죠. 표정과 제스처가 빠진 상태에서 연기하는 거에요. 느낌과 감정은 7살이 될 수도 있고, 20대 연기자가 상상력과 간접 경험을 동원해 70대 할아버지 역할을 할 수도 있죠."

그는 "모든 캐릭터는 똑같이 어렵고, 그만큼 기쁨도 크다"면서도 "흔히 이야기하는 10대 청소년 역할이 아니라 내 나이에 맞는 연기를 하는 걸 좋아하기는 하다"고 덧붙였다.

최근 시청자들이 더빙보다는 자막을 선호하고, 연예인의 내레이션 참여가 일상화되면서 성우의 입지는 예전보다 줄어들었다. 그 역시 이 점을 절감했다.

"성우에 대한 큰 비판 가운데 하나가 트렌디하지 못하다는 거에요. 표현이나 발성에서 전형적인 부분이 있다는 거죠. 요즘 트렌드는 '옆집 아저씨' 같은 내레이션이거든요."

그는 "유명인이어서가 아니라 해설자라는 위치가 중요한 만큼, 다큐멘터리에서도 앞부분에 내레이터의 이름을 넣어줬으면 좋겠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구자형 성우는 최근 애니메이션보다는 다큐멘터리에 더 관심이 많다. 자신이 목소리를 입히지 않았어도 EBS '다큐프라임', '다큐10+' 등의 프로그램을 자주 챙겨본다.

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이나 강의를 통해 노하우를 전하고픈 계획도 있다.

"성우란 프로그램을 빛내주는 장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나가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어요. 같이 하면 프로그램이 빛난다는 신뢰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죠."

tsl@yna.co.kr

(끝)



<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