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오늘의 인물

지도 밖 한비야, 그녀의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레이디경향

처음 보는 기자에게도 마치 어제 만난 사람처럼 쩌렁쩌렁 공간을 울리는 목소리로 "그동안 한국의 목욕탕이 가장 그리웠다"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여자. 4배속 재생이라도 한 듯 속사포 랩으로 그간의 삶을 전하다가 갑자기 말을 끊고는 "시간은 없고 하고 싶은 말은 많아서"라며 피식 웃으며 너스레를 떠는 사람. '바람의 딸' 한비야가 돌아왔다.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하고 제네바에 갔다가 어제 귀국했어요. 내일 출국하는데, 오전엔 등산을 하려고 해요. 아, 이게 어느 나라 시차인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한국 시간은 아닌 것 같아요. 정신이 없네요. 이번 방문은 정말 '이순신 스타일' 방문이에요. 짧고 굵게! '적에게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 하는(웃음)."





지난 8월부터 남수단 월드비전 긴급구호 총책임자로 현지에서 지내왔던 한비야(54)가 11월 초 귀국했다. 세계시민교육 활성화를 위한 교육과학기술부와 월드비전간 업무협약(MOU) 체결식에 참석하기 위해 잠시 들른 것. 그녀는 열일을 제쳐두고 왔을 만큼 이번 교과부와의 업무협약이 자신에게 중요한 일이었다고 강조했다.

"정말 기뻐서 눈물이 날 뻔했어요. 세계시민교육이 공교육과 함께 간다니, 제 꿈을 향해 한 발짝 더 다가선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잔칫날이에요. 교실 밖으로, 교과서 밖으로 나오는 공교육에 얼마나 감동했는지(웃음). 이제부터 우리나라 국민들도 제대로 된 시민교육을 받아서 책임과 의무를 다할 뿐 아니라 특권과 권리까지 다 누릴 수 있겠구나, 우리가 오늘 무슨 일을 했는지 나중에 역사가 기억할 것이다, 하는 뭉클함도 올라오고…."

교장선생님 한비야
교실 밖으로 행군


하루를 초 단위로 끊어 허투루 쓰지 않으면서 여든 살까지의 계획을 갖고 있다는 소문을 증명이라도 하듯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에너지가 넘쳤다. 그녀는 7년간의 행군 흔적을 옮긴 베스트셀러 작가, 세계 곳곳을 누빈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외교통상부 개발협력 자문위원, UN중앙긴급대응기금 자문위원, 한국국제협력단 자문위원,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같은 굵직한 직함보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세계시민학교의 교장 타이틀이 더 애착이 간다고 한참 동안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해서 '땡' 잡은 거죠. 제 활동 시기와 맞아떨어졌으니(웃음). 많고 많은 직함 중에 제가 교장선생님이란 직함을 제일 좋아하거든요. 소망사항이 있다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학생들을 만나는 교장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임기는 3년밖에 안 되지만 뼈 빠지게 해야겠다, 발동 걸었어요.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으리라 두 주먹을 불끈 쥐었죠(웃음)."

2007년, 그녀가 광고에 출연하며 받은 1억원을 전액 기부하면서 만들어진 세계시민학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3박 4일간 진행되는 야영장 체험 프로그램으로, 참가자들은 세계 각 나라의 국적을 부여받게 되는데 가난한 나라와 부자 나라에 차등하게 배분되는 생필품들로 생활하며 스스로 어떻게 쓸 것인지를 고민하고 배우게 된다. 현재까지 30만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이번 업무협약을 통해 향후 매년 17만 명을 목표로 일선 교사, 학부모, 일반 시민에게까지 사업을 확대하게 됐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대한민국 국민이잖아요.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세계 시민이에요. 전 세계의 일들을 같이 고민하고 걱정하고 해결점을 모색해야 한다는 뜻이죠."

'구호'의 아이콘답게 혹여 '세계 시민'이나 '시민교육'이란 낯선 단어의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까, 그녀는 몇 번이나 반복하며 설명을 더했다.

"물 부족 문제를 예로 들어볼게요. 예전에는 양치를 하면서 '엄마가 잔소리하니까'라고 생각하면서 수도꼭지를 잠갔다면 이제는 '나의 양치 컵 사용이 지구 반대편에 사는 한 사람의 하루 사용물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겠군' 하고 실천하게 되는 거예요. 그게 바로 세계 시민이고, 시민교육이라는 거죠. 오늘 제 인터뷰를 기점으로 샤워시 비누칠할 때 물 잠그는 습관을 들여보면 어떨까요? 그 물이 어느 집에서는 한 가족의 하루 사용량이라는, 세계 시민으로서의 양심으로(웃음)."

월드비전과 함께한 10년,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방송이나 신문 인터뷰를 통해 도움을 요청했을 때도 반짝 자극을 받았다가 이튿날이면 돌아서는 사람들에 대해 실망한 적도, 상처받은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지속적인 '알림'과 '교육'이 절실하다고 믿으며 더 열심히 뛰었다.

"첫 단추부터 순탄하게 끼워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방바닥을 기던 아이가 걷고, 뛰기까지 시간과 노력, 관심이 필요하듯 구호 문화에도 단계가 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정말 희망적인 건 우리는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되는 데 고작 40년밖에 걸리지 않았잖아요. 10년 전만 해도 긴급구호에 동참해 달라고 외치면 '우리나라에도 도울 사람들이 많은데' 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길거리에서 만난 분들이 '한비야씨 돈 필요하시죠?' 하면서 말 빨리 하니까 제가 급한 줄 알고(웃음) 막 돈을 쥐어주고 가시곤 해요. 앞으로 또 10년 뒤엔 어떻게 변할지 무척 궁금하지 않나요?"

수단의 여인
'몸 고생' 기부하러 왔어요


"영화 '울지 마 톤즈'로 많이 알려지긴 했는데 그건 제가 있는 남수단의 일부 상황만을 그렸을 뿐이거든요. 아직도 불안한 상황이라…. 상처가 많은 나라예요. 불난 집에 불을 끄다 말고 온 셈이라 마음이 급해요."

1955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수단은 종교적인 이유로 40년 가까이 내전을 겪으며 2백만 명이 희생됐다. 2011년 7월, 56년만에 남수단이 수단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심각한 가난으로 인한 자원에 대한 치열한 경쟁, 영유권 분쟁과 가축 분쟁 등으로 이 지역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처럼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

"길고 길었던 싸움에 인프라가 다 망가져서 5세 미만의 아이들 1백 명 중 7명이 죽어요. 놀랍지 않나요? 1천 명 중에 70명이라고 하면 좀 더 와 닿을라나? 거기에 90% 이상이 문맹이에요. 학교를 가던 아이들이 다 잡혀갔으니…. 다행히 유전이 있는데, 송유관을 갖고 있는 북수단이 km당 이용료를 상상도 못할 만큼 높게 책정해 사용할 수가 없어요. 난민들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고…."





처음 출국할 당시만 해도 긴급구호 전문가로 월드비전의 사업을 돌아보고 조언하는 임무를 맡았던 그녀는 떠난 지 2개월 만에 남수단 긴급구호 총책임자(Emergency Response Manager)로 임명됐다. 상상을 초월하는 열악한 상황에서 그녀가 맡은 일은 남수단에 구호기금이 제대로 전달됐는지를 총감독하고 적극적으로 현장 지원에 나서는 것.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정말 힘들어요(웃음). 그중에서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모기. 말라리아에 걸리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이슈조차 안 되는 나라이지만, 저는 일을 하러 간 사람이잖아요. 할 일이 태산 같은데 아파서 누워 있는 시간을 참을 수 없어요. 가끔씩 비슷한 증상으로 마음 졸인 일들이 있었는데, 열도 나고 토하기도 하고…. 그런 날이면 기도를 아주 '세게' 하고 UN 사무실로 가서 검사를 받아요. 다행히 물이 나빠서 생긴 질병들이었죠."

그녀의 열정을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 열악한 도로 사정과 교통편도 큰 장애물이다. 하지만 도전과 모험을 거쳐 봉사의 삶을 실천하게 된 그녀의 깊은 내공에 때때로 불가항력 자연의 힘도 거스르는 듯 보였다.

"사실 너무 위험한 곳이라 규칙상으론 해가 지고 난 뒤 일을 해서는 안 돼요. 하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나요. 한번은 나일 강을 보트로 이동하는데 시체 썩는 냄새가 나는 거예요. 악어들은 먹잇감을 잡은 뒤 썩을 때까지 뒀다가 먹는다고 하더군요. 또 밤이 되면 하마들이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내는데, 초식동물이지만 자기 영역을 침범했다는 위기의식이 들면 보트를 뒤집고 사람도 두 동강 낸대요. 한 마리도 아니고 10마리씩 떼를 지어 다니고. 어디 그뿐인가요. 우기라 며칠씩 비가 내리는데, 천둥번개라도 치는 날이면 저희 일행은 인간 바비큐가 될 마음으로 보트를 타요. 스피드보트가 온통 금속이라(웃음). 재밌는 사실은 보트 안에서는 절대로 아무 말도 안 하다가 나중에 내린 뒤에 서로 얼마나 무서웠는지 털어놓는다는 거죠. 가만히 보면 다들 변비, 위경련 등 하나씩은 맡아서 앓고 있어요."

아찔하고 긴박했던 순간들도 특유의 씩씩한 입담에 '추억의 에피소드'로 둔갑했다. 낯을 가리지 않는 성격 덕분에 목숨을 구한 적도 있을 정도라고 하니 혀를 내두를 수밖에.

"보트를 탐내는 무장한 반군들도 무섭고, 아, 또 있다. 성인식이나 결혼식을 앞둔 젊은 원주민 남자들은 자신의 강함과 용감함을 과시하기 위해 폭력적인 행동들을 서슴지 않는대요. 서바이벌 게임처럼. 예전에는 맨손으로 사자를 잡기도 했대요. 그런 일행을 만난 거예요. 그들 중 한 명이 공격을 시도했으면 군중심리 때문에 떼로 달려들어 아마 크게 다쳤을지도 몰라요. 어떻게 할지 몰라 악수를 청했는데, 하얀, 저 정도면 하얀 축이거든요(웃음). 아무튼 하얀 피부의 사람들을 처음 만나고 부끄러웠는지 신이 나서 악수를 따라 하더라고요. 정말 십년감수했어요."

현장 경험 바탕으로 강의까지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


"총책임자가 된 10월부터 제대로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잠든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책상에서 일하다가 '잠깐만' 하고 그대로 엎드려 잔 경우가 다반사고 그조차도 두 시간을 넘기지 못했어요. 괜찮아요(웃음). 저는 무슨 일을 잘하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그곳에서는 저만 그렇게 일하지 않아요. 다들 그렇게 일해서 티도 안 나요."

그녀는 현장 경험들이 좋은 사례로 남기 위해서는 꾸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아가 효과적인 이론들은 다시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는 정책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땐 막연하게 이 삼박자에 모두 관여하고 싶다고 꿈꿨어요. 그 꿈은 현실이 됐죠. 10년 현장 경험으로 교수가 됐거든요. 석사가 석사를 가르치는 거죠(웃음). 아무튼 이화여대에서 강의를 하고, UN과 한국국제협력단 자문위원 자격으로 정책도 제안해요. 보고 배우고 느끼는 현장과 절실하게 깨닫는 학계와 뭔가를 펼쳐 보이는 정책까지…. 멋지지 않나요? 그렇지만 한없이 즐겁다가도 어깨가 무거워요.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 없으니 물어볼 곳도 없고,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옳은지 틀린지 알 수도 없고(웃음)."

그녀에 의해 '국제구호학'이란 정식 과목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생겼다. 한국 사회에 맞게 용어도, 이론들도 모두 그녀의 손을 거쳐 재탄생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전이 일상인 그녀는 덕분에 그동안 축적한 자료들을 토대로 교과서를 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됐다.

"제가, 기름도 안 치고 볶고 있어요. 동료들, 대학 교수님들에게 물어물어 이곳 상황에 맞게 정리하고 있죠. 힘들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만약 좋은 예가 된다면 내 뒤에 오는 사람들은 내 어깨 위에서 시작할 수 있겠지, 지금은 벅차도 이건 굉장히 가치 있고 신나는 일이야, 라고(웃음). 저는 시대와 궁합이 잘 맞아요. 너무 앞서 가거나 역류하지 않고 딱딱! 개인적인 자산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에요?"

제2의, 제3의 한비야가 나온다면. 그녀는 이 상상이 오래 가지 않아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다. 오히려 최대한 빨리 그날이 오기를 꿈꾼다.

"가끔씩 사람들이 물어요. '어쩜 그렇게 에너지가 넘치나요?'라고. 그럴 때 전 '당신의 가슴이 뛰는 일을 하세요'라고 답해요. 그럼 어떻게 되느냐. 뭐, 저처럼 되는 거죠(웃음). 기자님은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의 얼굴을 '생방'으로 보고 계신 거예요. 70세 넘어서까지 현장을 다니는 건 민폐일 것 같고, 길어봐야 10년, 15년이 될 것 같은데요. 뜨겁게 몰아서 살려고 해요. 열심히. 갖고 있는 그 어떤 힘도 아끼지 않을 겁니다. 두고 보세요. 다음에는 더 진화한 모습으로 만났으면 좋겠네요."

"우리는 결코 아이들을 머리로만 가르치고 싶지 않다. 가슴만 뜨겁게 만들고 싶지도 않다. 냉철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과 더불어 부지런한 손발을 가진 세계 시민으로 키우려 한다. 자신이 알고 있고 믿는 것을 실천하며, 시민학교에서 배운 바를 다른 사람들과 기꺼이 나누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 교육의 본질이고 핵심이며, 이 교육에 거는 우리들의 기대다." -「그건 사랑이었네」 중에서-

<■글 / 김지윤 기자 ■사진 / 이주석 ■사진 제공 /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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