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각박해져도, 우리를 지탱해주는 건 사랑"

글 김윤숙·사진 김기남 기자 2012. 12. 3.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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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다큐 사랑' 유해진PD

끝내 웨딩드레스를 입지 못하고 사랑하는 남자 곁을 떠나야 했던 여자와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극진히 보살핀 남자, 시한부 판정을 받고도 풀빵을 구워 팔며 두 자녀를 걱정한 엄마, 선천성 골형성부전증으로 키가 120㎝밖에 되지 않지만 시련을 딛고 아이를 얻은 '엄지공주'….

방송 프로그램 < 휴먼다큐 사랑 > 으로 많은 시청자를 울렸던 유해진 MBC 교양제작국 PD(43·사진)가 제작 뒷얘기를 모은 휴먼에세이 < 살아줘서 고마워요 > (문학동네 펴냄)를 냈다.

지난달 22일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유 PD는 "세상이 날로 각박해지고 우리 주위엔 힘겹고 외로운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지만, 여전히 우리를 지탱해주는 것은 사람이고 사랑이라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유 PD는 16년차 휴먼 다큐멘터리스트다. < 휴먼다큐 사랑 > 을 다섯 편 연출한 이력 때문에 '사랑PD'란 별칭을 얻었다.

"많은 사람들이 입으로는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진정한 사랑'의 존재를 의심하죠. 저도 '사랑'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만해도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다큐를 찍으면 찍을수록 분명해졌어요. '진정한 사랑은 있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간 주인공들과 함께 지내면서 저는 그런 사랑을 확실히 봤거든요."

그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자신이 만난 그 '위대한 사랑들'이 한순간의 화제로만 기억될까봐 늘 노심초사했다고 말했다.

"내 삶을 주인공의 삶에 오버랩하면서 '내가 만약 저 상황이면 저렇게 용기를 낼 수 있을까' 하고 반성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지금도 끝까지 헌신하고 희생하는 사랑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는 '전쟁PD'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전쟁터를 세 차례나 '누빈' 덕분이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때 < 우리시대 > 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두 차례 이라크를 다녀왔고, 2006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공습했을 때는 베이루트를 다녀왔다. 레바논 전장에 들어간 것은 한국 신문·방송사를 통틀어 그가 처음이다. 그는 피비린내 나는 그곳에서 발견한 것도 결국은 사람과 사랑이었다고 했다.

"폭격으로 집이 불타고 부서져 폐허가 된 상황에서도 어느 틈엔가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갈 방도를 찾더라고요. 사람이란 한없이 유약한 존재이면서도 놀랍도록 강한 존재라는 사실을 전쟁터에서 목격했어요. 그들은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려줬습니다."

유 PD는 88학번이다. 공부보다 '운동'이 익숙한 세대다. 어떤 방법으로 사회를 바꿔야 할지를 고민하다 외국에선 다큐멘터리가 사회를 움직이는 '변혁'의 무기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96년, 그는 '세상을 바꾸는 PD'를 꿈꾸며 방송사에 입사했다.

"입사 초기엔 거대 담론을 통해 사회적 발언을 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어요. 하지만 휴먼 다큐를 하면서 사람이 주는 감동이야말로 그 어떤 감동보다 위대하다는 걸 알았어요. 휴먼 다큐의 힘을 온몸으로 체험한 거죠."

그는 덕분에 2010년 한국 방송사상 최초로 국제 에미상(다큐멘터리 부문), 아시안TV어워즈 다큐멘터리 부문 대상(2006년), 반프월드TV페스티벌 심사위원특별상(2007년)을 잇따라 수상했다.

그는 MBC스페셜 < 우리 학교는 '한국 스타일' > 로 5일 컴백한다. 170일간의 파업으로 작년 12월 방송 이후 1년 만이다.

"오랜만에 만져보는 행복이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깝습니다. 아직 제자리로 못 돌아온 동료PD들 때문입니다. 헝클어진 것들이 빨리 제자리를 찾아 모든 PD들이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글 김윤숙·사진 김기남 기자 yskim@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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