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세상에 던져진 24살 청년의 아름다운 삶

박순봉 기자 2012. 11. 30.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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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 차재원씨

차재원씨(24)의 기억 속에 가족과 함께한 시간은 6개월이 전부다. 그는 어린시절 버려져 혼자 살아야 했지만 망가지거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항상 자신을 도와준 주변에 감사하며 살아왔다. 차씨는 어렵게 대학을 나와 평소 꿈꿔왔던 바리스타(커피 전문가)가 됐다. 여전히 생활은 넉넉하지 않지만 7명의 아프리카 아동을 후원하고 있고, 매주 지역아동센터와 장애인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자신이 힘들었던 시절 받았던 도움을 세상에 돌려주는 거라고 그는 말한다.

차씨에게 가족이란 단어는 낯설기만 하다. 7살 때부터 서울의 한 보육원과 고모집을 전전했다. 낳아준 어머니는 기억이 없다. 갓난아기 때 '이혼했다'는 말을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이 그가 어머니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다.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하고 도박에 빠져 있었다. 집에서는 새어머니와 그 가족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결국 한 달 만에 집을 나왔다.

차재원씨가 지난 27일 자신이 근무하는 서울 동대문구의 한 커피숍에서 커피를 만들고 있다. | 월드비전 제공

혼자 세상에 던져진 차씨는 친구들 집을 전전했다. 방학 때는 치킨집에서 일하고, 학기 중에는 신문배달을 하며 살았다. 하지만 친구집에 신세를 지는 것이 오래갈 수 없었다. 그는 "친구집 4곳에서 살아봤지만 아무리 좋은 분들이라도 결국은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차씨는 결국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렇게 2년간 살다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다시 차씨를 찾아왔다. 이전과 다른 또 다른 새어머니가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빚이 너무 많은 상태였다. 결국 몇 달 만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빚쟁이들에게 쫓겨 중국으로 도망갔다. 그 뒤로 차씨는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나중에 중국에서 혼자 돌아온 새어머니가 10만원을 주며 차씨를 내쫓았다.

차씨는 다시 신문배달을 하며 고시원 생활을 시작했다. 매일 새벽 3시부터 5시간 동안 신문을 돌리고 학교를 갔다. 그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주변의 작은 도움들 덕분이었다. 중1 때는 친구 부모님이 차씨의 등록금을 내주고 교복도 사줬다. 고등학교 때는 서울의 한 교회 목사님이 학비를 도와줬다. 차씨는 이때부터 남을 돕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남을 돕겠다는 꿈은 생각보다 일찍 이뤄졌다. 차씨가 고교 1학년 때 소년소녀가장으로 지정돼 정부로부터 매달 30만원의 지원금을 받게 된 것이다. 신문배달로 버는 30만원을 합하면 한 달에 60만원의 수입이 생긴 것이다. 차씨는 그때를 "너무 풍족했던 때"라고 회상했다. 차씨는 이 돈의 일부를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쓰기로 했다. 고교 2학년 때 월드비전을 통해 아프리카 아동 1명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후원자수는 해마다 늘어 지금은 7명의 아프리카 아동을 후원하고 있다. 바리스타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관광대 호텔조리과에 들어갔다. 차씨는 올 2월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 동대문의 한 커피숍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차씨는 유목민처럼 살았다. 항상 고시원 방 안에 박스 4개로 짐을 정리해뒀다. 언제 고시원을 옮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시원에서 33번 이사를 다닌 뒤 올 2월 5층 옥탑방에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얻었다. 차씨는 "옥탑방에서 아침에 처음 눈을 떴을 때 방 안에 있는 주방도구, 가스레인지, 화장실을 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마구 흘렀다"고 말했다. 고시원 생활을 하는 동안 한 번도 개인 화장실이나 식당이 없었다. 그는 "밥을 내 방에서 차려 먹는다는 것만으로 정말 신기했고 꿈만 같았다"고 말했다.

차씨가 바리스타를 하면서 받는 월급은 130만원 정도다. 그는 이 중 21만원을 후원금으로 쓰고 있다. 차씨는 봉사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직접 찾아가 만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난해 방문했던 경기 파주시의 지역아동센터에서 자신이 왜 봉사를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다시 느꼈다고 한다. 그곳에서 만난 30여명 아이들의 꿈은 모두 목사였다. 차씨는 "자신들을 돌봐준 목사님이 멋지게 보여 그럴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다른 꿈이 없는 아이들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차씨는 아이들에게 꿈을 키워주기 위해 여러 가지 직업을 보여주기로 했다. 조리모·조리복을 갖춰 입고 요리를 하며 요리사란 직업을,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며 가수란 직업을, 현대무용을 하는 친구를 데려가 무용수라는 직업을 알려줬다. 이때부터 아이들의 꿈도 달라졌다. 요리사로 꿈을 바꾼 아이들을 보며 차씨는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차씨는 "힘든 시절 교복을 사주고 밥을 사준 작은 도움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며 "바리스타로 성공해 내가 받은 도움을 되돌려 주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 박순봉 기자 gabgu@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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