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역앞 천막 식당, 가출 청개구리들이 모여든다

이태훈 기자 입력 2012. 11. 30. 03:22 수정 2012. 11. 3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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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심야식당 '청개구리' 운영하는 이정아씨

매주 화요일 경기도 부천역 파출소 옆, 밤 9시쯤이면 어김없이 '청소년 심야 식당 청개구리'라는 플래카드를 단 '수상한' 천막이 선다. 밤 10시는 가출 청소년들이 PC방에서도 쫓겨나는 시간. 부천역 주변을 배회하던 아이들은 이 천막에 들러 공짜 밥도 먹고, 기타 치며 노래도 부르고, 타로카드 상담을 하며 마음속 쌓인 이야기도 털어놓는다. 부천 선한목자교회 부설 물푸레나무 청소년 공동체 이정아(45) 대표가 봉사자들과 함께 작년 8월부터 운영하는 '청개구리 청소년 심야 식당'이다.

27일 밤 부천역 앞, 천막 안에서는 대학생과 고등학생 등 자원봉사자 18명이 모여 배식, 설거지, 카운터, 아이들을 끌어오는 '아웃리치(outreach)'조 등으로 역할을 나눴다. 이날 식사 메뉴는 카레라이스와 계란 프라이. "청개구리 심야 식당을 열겠습니다, 개굴개굴!" 다 함께 구호를 외치자 천막 안팎이 분주해진다.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거나 독특한 옷차림을 한 아이들, 어른들이 보기엔 뭔가 '삐딱한' 아이들이 이 대표와 인사를 주고받았다. "걱정하는 눈빛, 어설픈 충고는 절대 금지예요. 어른 기준으로 판단하는 순간, 아이들은 마음을 닫거든요." 한 번 열 때마다 아이 30~40명이 이 식당을 다녀간다.

이 대표는 남편인 선한목자교회 김명현(49) 담임목사와 함께 2003년 부천 송내동에 교회를 개척하면서 지역의 맞벌이 가정이나 결손 가정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하다 가출 청소년들까지 관심이 미쳤다. "'학교 밖 청소년'이 22만명이에요. 가정이 품어주지 못했고, 학교에는 이미 뜻을 잃었죠. 그런데 사회가 제공할 수 있는 건 소년원과 중독 치료 시설뿐이에요. 그럼 이 아이들은 누가 돌보죠?"

부천시 청소년수련관, 고리울청소년문화의집과 함께 고민한 끝에 청개구리 식당을 열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이런 게 있으니 아이들이 집에 안 간다"는 '어른'들의 민원 때문에 새벽 1시까지였던 운영 시간도 1시간 줄였다. 민원으로 전기가 끊긴 적도 있다.

한번 마음을 연 아이들은 이곳 '회원 카드'에 계속 출석 도장을 찍는다. '청개구리 식당'은 화요일에만 문을 열지만, 이 대표는 상담을 통해 꾸준히 돌봐야 할 아이들을 찾아내 평일에도 만난다. 중독 치료 시설이나 상담소 등 도움받을 곳으로 연결해주기도 한다. 지난 6월에 남양주의 집을 나와 부천역 근처에 머물고 있는 미경(가명·17)양도 이 식당의 '단골'이다. "마음 편하고, 따뜻하고, 교회 나오라고 강요도 않고요. 여기 머무는 시간은 안전하고 즐거워요." 작년 10월부터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고3 이재민(18)군은 "어른들 눈엔 가출한 아이들이 그냥 '문제아'로 보여서 싹 잡아 가두고 싶을지 모르지만, 그들도 생활이 있고 꿈도 있는 청소년"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내년부터 인근 공간을 빌려, '청개구리 식당'을 낮에도 아이들이 언제나 모일 수 있는 '청소년 카페'로 만들고 싶어 한다. "더 많은 '청개구리 식당'이 생겨나고, 더 많은 '어른'이 아이들 돌보는 걸 공동의 책임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 그의 꿈이다.

"청개구리 식당의 목표는 '교화'가 아닙니다. 한번 마음을 돌렸던 아이라도 언제든 같은 죄를 또 짓거나, 또 가출할 수도 있어요. 누군가에겐 쓸데없는 짓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따뜻한 밥그릇 같은 온기와 관심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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