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건 모두 나누고 떠난 기부 천사 구두수선공

송원형 기자 2012. 2. 22.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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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창식씨 빈소에 박원순 시장 등 찾아 애

21일 오후 찾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구두 수선집. 어른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3.3㎡(1평) 남짓한 가게는 굳게 닫혀 있었다. 가게 밖에는 비영리 공익단체 '아름다운재단'의 '아름다운 1% 나눔 운동'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며칠 전 손님이 놓고 간 동전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페트병은 텅 비어 있었다.

가게 밖에는 흰 조화(弔花) 한 다발이 놓여 있었다. 이곳에서 29년째 구두를 닦으며 동전을 모아 기부해온 '기부 천사' 이창식(55 ·사진)씨가 20일 오후 급성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씨는 이혼하면서 한때 술에 빠져 살았다.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체 장애인이 리어카를 끌고 장사하는 모습을 보고 정신이 들었다고 한다. 이씨는 술병을 치우고 2000년 구두 수선점 문을 다시 열었다.

그는 "어려울 때 남을 도우라"는 어머니(90) 말씀을 듣고 2001년 2월부터 '수입의 1%를 이웃과 나누자'는 '1% 나눔 운동'에 참여해 왔다. 46㎡(14평)의 눅눅하고 습기가 찬 반지하 전셋집에 노모와 딸과 함께 살았던 이씨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형편이었지만, 매달 1만여원씩 수입의 1%를 11년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해왔다.

이씨의 '나눔'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6년부터 5년여간 민간 싱크탱크 희망제작소에 매달 1만여원을 기부해왔다. 2007년 3월엔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사후 각막 기증과 뇌사 시 장기 기증 서약까지 했다. 또 매월 5000~1만원씩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기부했다. 2010년 4월부터는 노숙인을 위한 무료 급식소 '밥퍼'를 운영하는 다일복지재단에도 매달 1만원씩 기부했다.

틈틈이 폐지를 모아 판 돈도 기부했다. 2009년 9월 길에서 강도를 만났다가 2010년 3월 범인이 잡히면서 받은 보상금 일부도 사회단체에 내놓았다. 이씨는 돈뿐만 아니라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사회에 내놓았다. 겨울철엔 독거 노인을 위한 연탄 배달 봉사에 나섰다. 2010년 아름다운재단 창립 10주년 행사 때는 다른 사람에게 구두닦이 노하우를 전수하는 등 재능 기부도 했다.

사후에도 자기가 가진 모든 걸 나누고자 장기 기증 서약까지 했지만, 이제 그의 약속은 지켜질 수 없게 됐다. 지난 20일 새벽잠에서 깨 잠깐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쓰러졌고, 응급실로 옮겨졌으나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그날 오후 급성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올해 대학에 입학하는 딸 은혜씨는 "아빠처럼 매달 하지는 못해도 앞으로도 계속 기부를 해 좋은 뜻을 이어나갈 계획이다"고 했다.

21일 빈소에는 이씨가 기부를 했던 아름다운재단 회원 등 300여명이 찾았다. 20일 오후 9시쯤에는 박원순 서울시장도 빈소를 찾아 고인을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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