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로 회귀' 거꾸로 행정안전부

2008. 9. 25.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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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공직자윤리법 개정안 '호주제로 회귀'

여성공직자 시부모 재산만 등록 강제

친정 직계 제외…인권위 권고도 무시

행정안전부가 현행 공직자윤리법을 성 평등 원칙에 걸맞지 않게 개정하겠다고 나서, '낡은 호주제로 되돌아가려는 퇴행적 태도를 벗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고위 공직자는 직계 존·비속의 재산을 등록하되, 혼인한 이는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 '배우자의 직계 존·비속'의 재산을 등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행정안전부는 '기혼 여성은 시부모의 재산을 등록하라'는 내용의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마련해, 입법 예고와 여성부 등 부처 협의를 마치고 법제처에 법안 심사를 맡긴 상태다.

등록 대상자 규정에 현행 "본인의 직계 존·비속. 등록 의무자가 혼인한 때에는 그 배우자의 직계 존·비속"이라는 문구를, "본인의 직계 존·비속. 다만 여성인 등록 의무자가 혼인한 때에는 그 배우자의 직계 존·비속"으로 고친 것이다. 그러면서 현행법이 '혼인한 여와 외조부모 및 외손자녀'를 재산 등록 범위에서 제외한 것도 성평등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었는데도, 개정안에는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

결국 개정안 내용은 예전 호주제가 있었을 때 적용되던 공직자 재산 등록 규정과 같다. 호주제에서는 여성이 결혼하면 남성의 호적에 입적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남성 공직자는 친부모 재산을, 여성 공직자는 시부모 재산을 등록하는 것이 '관행'처럼 돼 있었다. 그러다 지난해 5월 호주제를 대신해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며 이에 맞춰 성별에 관계없이 결혼한 공직자는 배우자의 직계 존·비속 재산을 등록하도록 개정됐고, 가족관계 등록법과 함께 올해 1월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행안부는 개정 공직자윤리법을 외면한 채, 지난 1월 '2008 공직윤리 업무 지침'을 마련해 기혼 여성에게만 시부모 재산 등록을 강제하는 예전 '관행'을 유지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7월 "남성 우위의 호주제 관념이 반영된 것"이라며 지침을 고칠 것을 권고했는데도, 이마저 무시한 채 법률을 개정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행안부의 이런 태도는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국가인권위는 최근 행안부가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기를 거부했다며, 이번 개정안이 "양성평등 원칙에 반하는 법률안이며, 친정 부모보다 시부모를 통한 재산 은닉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없어 현실적이지도 못하다"고 밝혔다. 한국여성민우회와 한국 여성의전화연합은 "성평등 원칙에 어긋나며,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개정안"이라는 의견을 냈다.

행안부는 '재산 관리 관행이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건 아니다'라는 근거만 내세운다. 행안부 관계자는 "당사자와 배우자 모두의 직계 존·비속 재산을 등록하게 하면, 등록 부담도 크고 그 효과를 거두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재산 관리 관행의 실태가 어떤지는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조진우 여성부 정책총괄과장은 "지난해 호주제 폐지로 그 영향을 받았던 30여 가지 법률이 성 평등하게 개정됐다"고 말했다. 예컨대 며느리만 받는 보상 규정이 있었다면, 사위도 적용되도록 했다는 거다. 그는 "아직도 성 평등 원칙에 어긋나는 법률이 남아 있는지 더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행안부의 '거꾸로' 법 개정 추진과 관련해, 호주제에 바탕한 인식이 아직도 뿌리깊어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소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상담위원은 "부모가 숨지면 자매에게 일률적으로 상속 포기 각서를 요구하는 사례들이 최근에도 있는데, '딸은 출가외인'이라는 낡은 호주제 관념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원형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어느 회사 단체협약에 노동자의 형제자매가 숨지면 기본급의 30%를 경조사비로 지급하는데, 호주라면 50%를 준다는 조항도 있더라"고 말했다. 가족뿐 아니라 직장에서도 이처럼 호주제의 '잔재'가 꿈틀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여성 종중 구성원의 종중 재산 권리 찾기처럼, 여성의 경제적 권리 찾기 욕구가 커지고 있는 현상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홍미리 한국여성의전화연합 활동가는 "호주제 인식의 뿌리가 깊은 만큼 이를 극복하려는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며 "정부는 관행을 핑계 삼아 과거로 회귀할 것이 아니라, 이를 이겨내는 선도적 구실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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