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존엄사 논쟁.."삶 아닌 죽음의 연장"

2008. 5. 13.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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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메디컬투데이/뉴시스】

의학적으로 살아날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 대해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 즉 존엄사(尊嚴死)의 허용여부를 놓고 뜨거운 논란이 예상된다.

식물인간 상태에 빠져 인공호흡기로 연명하고 있는 김 모(여·75)씨의 가족들이 지난 11일 헌법재판소에 '존엄사'에 대한 법률을 제정하지 않은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우리 법이 품위 있게 죽을 자기선택권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는 게 이유다.

이들은 앞서 지난 9일에는 품위 있게 죽을 환자의 권리를 주장하며 김 씨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달라는 가처분신청을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제출했다. 국내에서 존엄사 집행을 허용해달라고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족들을 대리해 사건을 맡은 신현호 변호사는 12일 "이 환자의 경우 뇌의 상당부분이 괴사한 상태로 전형적인 존엄사 사건"이라며 "현재 우리 법에는 존엄사에 대한 법도 제정돼 있지 않고, 국민건강보험법의 경우 무의미한 연명치료에도 치료비를 계속 지원함으로써 이를 방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 소생가능성이 판단 잣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안락사에는 약물을 주입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하는 '적극적 안락사'와 인공호흡기를 떼는 수준의 '소극적 안락사'로 나뉜다.

미국에서 루게릭병 환자에게 독극물을 투입, 안락사를 도와줘 2급살인죄로 기소돼 감옥에서 8년여를 복역한 뒤 지난해 출소한 잭 케보디안 박사가 대표적인 적극적 안락사인 반면 이번 헌법소원 사건의 경우 소극적인 안락사인 셈이다. 특히 국내에서는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의미에서 소극적 안락사를 '존엄사'로 부르고 있다.

하지만 현행법상 존엄사 역시 '살인 혹은 살인방조죄'로 처벌받는다. 물론 무조건 처벌받는 것은 아니다. 법원과 검찰이 환자의 소생 가능성에 따라 판결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0여 년 전인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에서 법원은 뇌수술을 받고 의식불명인 상태였던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뗀 행위에 대해 당시 부인에게는 살인죄, 의료진에는 살인방조죄를 각각 적용했다. 환자가 치료를 계속했다면 살 수 있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10여년 후인 2006년 간경화 말기 환자 김 모(여·72)씨 사건의 경우, 산소공급 호스를 떼어낸 의사 2명에 대해 검찰은 무혐의 처리를 했다. 환자가 소생 불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 헌재·법원 받아들일까

하지만 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이번 가처분신청과 헌법소원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식물인간 상태인 김 씨 할머니에 대해 인공호흡기, 약물·영양수분 공급, 심폐소생술 등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시켜달라고 낸 가처분신청의 경우 '생명의 처분권은 소송의 대상이 아니다'는 이유로 기각될 가능성이 높고, 입법 부작위소송인 이번 헌법소원 역시 헌재가 이를 받아들일 지 미지수다.

신현호 변호사 역시 "죽을 권리를 달라'는 소송 자체는 생명유지 의무를 지고 있는 국가의 역할과 모순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법원이 기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다만 세계적으로는 소극적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추세인 만큼 이번 사건을 계기로 존엄사에 대한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삶의 길이를 늘이는 것이 아니나 죽음의 길이만 늘어나는 것"이라며 "더 이상 우리사회가 존엄사 문제를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회에서도 존엄사 인정 논란은 올해 새 쟁점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은 지난해 대선에서 후보는 "내년 국회에서 인간답고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존엄사법 제정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존엄사가 허용될 경우 유산상속과 치료비 부담 등을 이유로 남용될 수 있고, 노인단체를이 우려하는 '현대판 고려장' 가능성 등의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한 방안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태형 기자 kth@md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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