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대단한 일 했다고.. 그냥 떡볶이나 먹고 가"

2009. 3. 3.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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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세 '떡볶이 할머니' 전재산 2300만원 아름다운 기부개성 출신 김정연 할머니 "그저 먹고 사니 난 부자, 이것밖에 없어 서운하네"또 다른 기초생활 수급자 박부자·배복동 할머니도 전세금 털어 유산 기부

"가진 게 많았으면 힘든 사람 주라고 나라에 다 냈을 건데, 이것밖에 없어 서운하네. 뭐 대단한 일이라고 왔어. 여기 앉아 떡볶이나 먹고 가."

2일 서울 종로구 적선동 금천교시장. 20여년간 이곳에서 떡볶이를 팔아온 김정연(93) 할머니는 스티로폼 뚜껑을 방석으로 내주며 흰떡을 철판에 올렸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김 할머니는 지난달 24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펼치는 '행복한 유산 캠페인'에 동참, 전세금 800만원과 예금 1,500만원 등 전 재산을 기부했다.

김 할머니는 시장 가까이에 창이 없어 종일 빛도 들지 않는 방에서 홀로 살고 있다. 밥상에는 늘 쌀밥과 된장찌개만 오르고, 따로 난방시설도 없어 전기담요에 의지해 추운 겨울을 난다. 그래도 할머니는 "부자가 별건가. 남한테 얻으러 안 가고, 그저 먹고 사니 내가 부자지"라며 활짝 웃는다.

김 할머니는 원래 개성 사람이다. 고향에서는 제 손으로 밥도 안 해봤을 정도로 부잣집 딸이었다. 지금도 "중국 제나라 시조 강태공이 세월을 낚았듯 나도 세월을 낚는다"고 흥얼댈 만큼 당시 여자로서는 드물게 10년의 신교육(개성정화여자국민학교 6년, 명덕중학교 4년)도 받았다. 한국전쟁 때 남편이 실종된 뒤 혼자서 가업인 공장을 꾸리며 자식 셋을 키우던 김 할머니는 서울 동대문 시장에 물건 대금을 받으러 왔다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그 때 나이 서른 셋, 고생이 시작됐다.

금천교시장 노점에서 야채 팔아 모은 돈으로 꽃 장사를 했다. 그러나 돈을 버는 족족 남 돕기에 바빴다. "누나"라고 따르던 남동생 뻘 고향사람을 대학교까지 뒷바라지 해줬고, 아들 학비가 없다며 울상 짓는 이웃들에게 쌈짓돈을 쥐어줬다.

"그런데 다 소용없더라고. 누구도 날 한 번 찾아와 주지 않았어. 명절 때만 되면 그렇게 서러워." 할머니는 그 흔한 휴대폰이 없다. 전화를 걸 사람도, 찾아와 줄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남 돕는데 진저리가 났을 법한데도 할머니는 "사람이란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고집한다.

떡볶이도 할머니 마음을 오롯이 담은 메뉴다. 국내산 쌀로 만든 떡에 고춧가루, 파, 깨소금, 몽고간장이 전부인 양념장을 버무려 볶아내는 것. "기름이나 설탕같이 몸에 나쁜 건 절대 안 넣어. 떡도 모두 손으로 써니 내 손가락이 이렇게 휘었잖어." 하지만 요즘은 하루 1만원어치 팔기도 쉽지 않다.

1만원어치 팔아야 남는 돈은 2,000원도 안 된다. 그래도 할머니는 "동네 아이들이 가게 앞에 와 두 손 내밀면 떡 하나 쥐어주는 것이 재미"라며 매일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자리를 지킨다.

김 할머니의 소원은 여느 때처럼 장사하고 집에 가서 자다가 편히 세상을 뜨는 것이다. 그리고 30여년 전 해놓은 장기기증 서약대로 몸뚱이까지 모두 주고 가는 것이다.

할머니는 "내가 이렇게 하면 개성에 있는 내 자식들 어려울 때 누군가 도와주지 않을까 싶어 장기기증 서약을 했다"고 말했다. "늙어서 내 몸뚱아리 쓸 곳 있겠냐마는 김수환 추기경처럼 눈이라도 주고 가면 좋겠네."

역시 기초생활수급자인 박부자(85) 할머니와 배복동(92) 할머니도 각각 전세금 500만원, 900만원을 공동모금회에 유산으로 기부했다. 함북 나남 출신의 박 할머니도 서울에 왔다가 전쟁 통에 고향을 등지게 됐다.

이후 할머니는 미군물품 판매, 식당 주방 보조 등으로 어렵게 생계를 꾸려왔다. 그럼에도 박 할머니는 교통사고를 당해 받은 돈까지 강원도 수해 복구 지원금과 이웃돕기 성금으로 고스란히 기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 할머니는 "어차피 죽으면 없어지는 것, 언젠가는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김 추기경 선종을 지켜보며 실천에 옮기게 됐다"고 털어놨다.

남편과 다섯 자녀를 병으로 모두 잃고 평생 식모살이로 살아온 배 할머니도 "3평 지하 방 전세금이 조금이라도 어려운 이웃에게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행복한 유산 캠페인'은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란 주제로 펼치고 있는 유산 기부 캠페인으로 2004년부터 지금까지 총 8명이 동참했다. 유산으로 기부하더라도 기부자가 생전에는 재산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사망 후 남은 재산에 한해 법적 절차에 따라 기부가 이뤄진다.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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