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무너진 45만 도시, 평택

평택 | 최인진 기자 2015. 6. 4.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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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최다 발생 지역 가보니

▲ 거리·시장 삭막…병원 개점휴업 시민들 “외출 자제” “딴 곳 피신” 한낮에도 인적 드문 ‘유령 도시’ 정부·시에 대책기구 설치 등 촉구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의 진원지인 인구 45만명의 경기 평택시는 도시 전체가 마비된 듯했다.

거리는 썰렁했다. 지역경제는 바닥을 향하고 있다. 백화점, 쇼핑몰, 음식점에는 시민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재래시장도 손님이 뚝 끊겼다. 상인들은 노심초사했다. 메르스 확진환자가 입원했던 병원은 이미 문을 닫았고, 감염 의심환자가 입원했다는 소문이 돈 병원들은 개점 휴업상태다.

손님 없는 재래시장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환자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생한 경기 평택시내 한 재래시장이 불안감 확산으로 시민들이 외출을 자제하면서 4일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한산한 모습이다. 평택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4일 낮 사람들로 붐벼야 할 시내 거리는 을씨년스러웠다. 유령도시 같았다. 아파트 놀이터에는 노는 아이가 없었고, 휴교령이 내려진 학교 운동장과 건물은 고요하기까지 했다. 거리에는 마스크를 쓰고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이 간혹 보였다. 대부분 메르스 감염을 염려한 나머지 바깥출입을 자제하며 집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주부 유모씨(45)는 “불안해 아이들과 하루 종일 집에 있다”며 “장 볼 일이 있으면 마스크를 쓰고 승용차를 이용해 마트만 잠깐 다녀온다”고 말했다. 이모씨(31)는 “임신 초기이고 큰아이도 천식이 있어 내일 강원도 친정으로 피신을 하기로 했다”며 “메르스 사태가 진정되면 돌아올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청 인근의 한 백화점. 마스크를 쓴 직원 외에 손님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 삭막했다. 의류매장, 식당가 등이 즐비한 이곳은 점심식사 시간이면 차례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장사진을 이루던 평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선글라스를 판매하는 직원은 “오후 2∼3시쯤 되면 대여섯 개는 팔았어야 하는데 며칠 전부터 하나도 못 팔았다”고 말했다. 지하 식당가 한식코너의 한 직원은 “손님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4층 의류매장 여성복 코너 직원도 “쇼핑객이 크게 줄었다”고 전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재래시장도 비슷한 분위기다. 상인들은 “시장이 생긴 이래 이런 적은 없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상인 홍모씨(57)는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한 이래 이렇게 사람이 없는 건 처음 봤다”며 “(메르스 사태가) 장기화되면 문을 닫는 가게가 속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먹자골목으로 유명한 ‘조개터’ 거리도 조용했다. 식당과 술집 100여곳이 모여 있어 밤이면 불야성을 이루던 곳이지만 메르스 여파로 손님이 급감했다. 시내 은행에도 찾는 고객이 줄어 1시간씩 대기하던 평소와 달리 고객 한두 명이 전부였다.

텅빈 영화관메르스 환자가 국내에서 처음 나와 도시 전체의 유동인구가 뚝 떨어진 경기 평택시 도심의 한 영화관이 4일 관객 한 명 없이 텅 비어 있다.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최초 확진환자가 입원했던 병원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메르스 확진환자 중 10명이 이 병원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감염됐다. 병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약국은 문을 닫았고, 맞은편 편의점 유리문 안쪽에는 ‘휴점’이라고 적힌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병원 주차장은 텅 비어 내부 상황을 짐작하게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허위사실이 유포된 병·의원은 피해가 심각했다. 정부의 병원명 비공개 방침이 ‘카더라 정보’를 양산하면서 메르스와 전혀 관련 없는 병원까지 환자 기피 현상이 심해져 폐업 위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병원들은 ‘우리 병원은 메르스와 관련이 없습니다’라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내걸었지만 환자들의 발길은 사라진 상태다. 모 병원 관계자는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병원명을 공개하지 않으니 인터넷을 통해 헛소문이 나돌면서 환자들이 병원을 아예 오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메르스 대처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에 대한 불신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시민들은 “지역사회 안정을 위해선 정부 당국의 명확한 설명과 정보 공개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일부 시민들은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메르스 예방법을 공유하고 있었다.

평택과 안성 지역 주부 모임 카페인 ‘안평맘’에서 누리꾼 whh3***은 메르스 바이러스 차단용 마스크의 구입 요령을 올렸다. 또 다른 누리꾼은 메르스 예방법을 알리며 외출을 자제하고 손을 잘 씻으라고 당부했다. 시민단체들은 집단행동에 나섰다. 참여연대·농민회·YMCA 등 23개 평택지역 시민단체가 연대해 비상대책위를 구성,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비대위는 지난 2일 평택시청을 방문해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비대위는 정부에 평택지역을 재난관리지역으로 선포할 것을, 평택시에는 민관 종합대책기구 설치를 촉구했다.

<평택 | 최인진 기자 ijcho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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