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희망버스 동행기 "연대 통한 비정규직 철폐 희망 다시 갖게 됐다"

울산 | 박철응 기자 2013. 7. 21.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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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열차로 4000여명 참석.. 밀양·강정 주민들도 힘 보태'몽구산성' 앞에서 한때 충돌.. 참가자들 "희망버스는 계속"

주말인 20일 오전 11시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차에 올랐다. 울산으로 가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희망버스' 19대가 서 있었다. 옆에 앉은 40대의 유모씨(자영업자)가 손을 내밀었다. 그는 "내 아내도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비정규직"이라며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철탑 위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작은 희망을 주고 사람들의 양심을 깨우는 데 일조하고 싶어 버스를 탔다"고 말했다.

희망버스에선 영화·인권·언론 등 테마가 있는 강연이 이어졌다. 기자가 탄 버스에는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가 올랐다. 박 교수는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은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이라며 "한국의 자본이 수출 위주이고 자원도 없다보니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해 해고가 쉬운 비정규직을 양산했다"고 말했다. 그는 "가부장제와 군사문화로 대변되는 강한 위계질서와 출세와 성공을 목표로 내세우는 개인적 이데올로기가 결합해 비정규직을 짓밟고 있다"고 말했다. 휴가 중에 희망버스에 탔다는 박모씨가 말을 받아 "연대를 통한 희망이 가능한가"라고 물었다. 박 교수는 "지금 버스에 타고 있다는 것이 희망의 근거이며, 최근에 '갑질'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할 정도로 비정규직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것도 희망"이라고 답했다.

강연과 삼삼오오 대화하며 5시간여 달려간 오후 5시쯤 울산 현대차공장 앞에 버스가 도착했다. 무더웠다. 현대차 앞 송전철탑에서는 사내하청 노동자인 최병승·천의봉씨가 278일째 고공 농성 중이었다. "두 사람을 내려오게 하자"며 전국에서 4000명이 100대의 희망버스와 2대의 희망열차를 타고 모인 날이었다.

희망버스 기획단은 애초 현대차 울산공장 안으로 들어가 경영진과 대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현대차 공장 정문은 컨테이너 벽으로 막혔다. 희망버스에선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이름을 따 '몽구산성'이란 말이 나왔다. 사람들이 정문이 아닌 철탑 농성장 주변에 모였다. 현대차 공장과는 철망이 경계선을 이뤘다.

공장 진입을 놓고 예고된 충돌은 오후 7시쯤 하얀 소화기 연기와 함께 시작됐다. 참가자들은 철망에 밧줄을 걸어 잡아당겼다. 순식간에 50m가량의 철망이 개방됐다. 참가자들이 대나무봉을 들고 진입했다. 회사 측도 헬멧을 쓰고 방패를 든 사람들이 맞섰다. 소화기와 소방호스 물이 밖으로 쏟아졌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격한 육박전과 투석전이 벌어졌다.

기자의 머리를 향해서도 주먹만한 돌이 날아들어 가까스로 피했다. 여기저기서 숨을 쉬지 못해 콜록거리는 소리가 넘쳐났다. 바닥은 소화기 가루가 뒤섞인 물바다였다. 오후 8시20분쯤 경찰이 '불법 집회이므로 강제 해산시키겠다'는 방송과 함께 살수차에서 물을 쏘기 시작했다. 참가자들은 굵은 물줄기에 밀려났고 온몸이 흠뻑 젖었다.

충돌은 밤 9시30분쯤 경찰이 참가자와 사측 사이를 완전히 막아서면서 마무리됐다. 사쪽도 희망버스에서도 수십명씩 부상자가 나왔다. 날아온 돌에 눈 부위를 맞거나 머리가 깨지고 손가락이 탈골되는 중상자도 있었다. 7명은 경찰에 연행됐다가 22일 아침까지 풀려났다.

밤 10시부터 철탑을 바라보며 문화제가 진행됐다. 밀양 송전탑 반대 할머니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행복을 공약했는데, 이런 전쟁터가 어디 있느냐. 서로 힘 모으고 희망을 주고 받자"며 '흙에 살리라'를 합창했다. 강동균 제주 강정마을 이장과 한상균 전 쌍용차노조 지부장 등의 응원 메시지가 이어졌다.

21일 새벽 2시쯤 철탑 농성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22일은 최병승씨가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을 받은 지 3년 되는 날이다. 현대차는 여전히 "3500명가량의 비정규직을 신규 채용하겠다"는 입장이고,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는 "최씨 판결이 8500명의 비정규직 생산라인 전체에 적용돼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고공농성 중인 천의봉씨는 문화제 초기에 잠시 모습을 비췄으나 몸에 이상이 생겨 육성 대신 미리 촬영한 영상으로 '죽지 말고 싸우고, 죽을 만큼 사랑하자'는 내용의 시를 전했다. 최씨는 우렁찬 목소리로 "밀양 할머니나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 그리고 우리들도 모두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투쟁을 하는 것"이라고 외쳤다. 오전 2시쯤 서울로 돌아간 희망버스 2대를 빼면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울산에서 1박을 하고 21일 오전 헤어졌다. 대구에서 온 대학생은 버스에 오르며 "정몽구 회장이 법원 판결마저 무시하면 희망버스는 계속될 것"이라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갖고 연대하면 비정규직 철폐를 이뤄낼 수 있다는 희망을 다시 갖게 된 하루"라고 말했다.

<울산 | 박철응 기자 h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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