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원장들, 비리 고발 엄마들 무차별 고소 '입막음'

2013. 7. 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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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구청 민원제기·SNS 알릴 때면

명예훼손 걸거나 손해배상 청구까지

아이 다른 곳도 못가게 명단 공유

보육단체들 "솜방망이 처벌 탓"

서울 강북에 살면서 생후 20개월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김아무개(40)씨는 8일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해야 한다. 딸이 다니는 어린이집의 원장이 김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해 기소까지 됐기 때문이다. 원장은 김씨에게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걸겠다고 벼르고 있다. 김씨는 "원장 쪽이 다른 사람을 통해 내게 '가만두지 않겠다. 난 정치권에 백이 많아서 아무 상관 없으니 밟아 주겠다'고 위협했다"고 말했다. 어린이집의 학부모회장을 맡을 정도로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김씨와 원장은 왜 이렇게 사이가 틀어졌을까.

지난해 2월 직장에 다니던 김씨는 저녁 9시까지 일해야 하는 날이 많아 생후 4개월이던 딸을 어린이집에 맡기기 시작하면서 원장에게 선물도 곧잘 하는 등 친해졌다. 하지만 지난해 4월 한 아이의 부모가 구청에 어린이집을 비난하는 전화민원을 낸 뒤 상황이 달라졌다. 그날 저녁 원장은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 '전화 건 부모의 아이에게 보복을 하겠다. 못 먹을 것을 먹여 토하게 만들겠다. 그러면 그 부모가 말을 잘 들을 것이다'라는 등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원장의 양식을 믿지 못하게 된 김씨는 어린이집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어린이집의 보육교사가 수시로 바뀐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그만둔 교사들을 집에 불러 다른 아이의 부모와 함께 영문을 물었더니 '정부 보조금을 추가로 타내기 위해 원장이 퇴원시간을 조작하는 등 비리가 있는데다 비인간적 대우를 참을 수 없어 그만뒀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씨는 학부모들이 모인 시민단체 누리집에 해당 어린이집의 비리 내용을 올리고 구청에 고발도 했다. 그러자 원장이 소송으로 김씨의 입을 막으려 나선 것이다.

최근 아동학대와 비리를 저지르고 이를 지적하는 보육교사들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는 등 일부 어린이집 원장의 횡포가 입길에 오르고 있는 가운데 학부모들까지도 그 표적이 되고 있다. 어린이집의 문제점을 공론화했다가는 명예훼손이나 업무방해 등으로 고소당하기 십상이다.

경기도의 한 중소도시에 사는 박아무개(35)씨도 얼마 전 아이에게서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주방으로 끌고 가 양쪽 귀를 잡아당겼다'는 얘기를 듣고 이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 박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다른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들어가려 해도 연거푸 퇴짜를 맞아, 어린이집 원장들이 교사 블랙리스트에 이어 부모 블랙리스트까지 공유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앞선 김씨의 경우처럼 손해배상 소송이라는 경제적 압박 수단까지 동원해 부모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움직임도 최근 들어 두드러진다는 게 관련 단체의 설명이다. 장미순 참보육부모연대 운영위원장은 "민간 어린이집에서 민원을 제기하고 에스엔에스 등에 알린 부모의 명단을 공유해 고소·고발을 하는가 하면 이제는 손해배상 소송을 내는 횡포까지 나온다. 이는 기본적으로 관련 어린이집 원장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처벌이 가볍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심선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 의장은 "블랙리스트 등 비리가 드러날 때마다 반복되는 '반짝 처벌'로는 절대 어린이집 문제를 못 푼다. 강력한 처벌과 함께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비리 어린이집의 국공립화, 보육노동자 지자체 직접고용 등 근본적 대책을 통해 영리에 기대는 보육시설의 공공성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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