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끊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최씨, 센터 사장의 욕설 녹취록 알리려다 고초"

박철응·송진식·천영준 기자 2013. 11. 2. 06:0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금속노조·삼성전자서비스지회 대책위 구성

"인마, 새끼야 고객이 주장하는 게 있으니…너가 죽여불든지, 칼로 찔러서 갈기갈기 찢어 죽여불든지 했어야지."

지난달 3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 엔지니어 최모씨(32)가 지난 9월 센터 사장에게 들은 말이다. 최씨는 이 같은 전화 통화 내용을 녹취해 알리려 했고 그 때문에 고초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고객 불만이 접수돼 센터 사장에게 폭언을 들어야 했다. 최씨가 노조에 보낸 진술서에는 지난 7월 냉장고 소음 건으로 점검을 하던 중 자신의 허리에 손을 올렸다는 이유로 고객이 "어디 삼성전자 기사 따위가 고객이랑 말하는데 허리에다 손을 올려"라며 고성과 반말을 시작한 것으로 적혀 있다.

녹취록을 들어보면 최씨는 "어느 정도 기분 맞춰줄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처럼 바쁜 찰나에, 트집 잡으려고 처음부터 마음먹은 사람이에요"라고 항변했다. 사장은 "니 입장이야 안다"면서도 "갈기갈기 찢어 죽여버리든지 했어야지"라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이어 "왜 새끼야 무릎 꿇고 빌게 만드냐. (고객과) 맞다이 까든지, 무릎 끓고 빌든지 둘 중에 하나 선택해"라고 말했다. 최씨는 "아무튼 죄송하다"며 사죄했다. 최씨는 이후 진술서에서 "다시 한번 삼성서비스 하청 직원에 대한 서러움을 느낀다"고 적었다.

천안센터는 수리기사 90여명 중에 최씨를 포함한 노조원 8명만 상대로 지난달부터 감사를 진행해왔다.

최씨는 죽기 전날인 지난달 30일 밤 10시쯤 노조 동료들과의 카카오톡 단체대화창에 "그동안 삼성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었어요. 배고파 못 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전 전태일님처럼 그러진(분신하진) 못해도 선택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1일 민주노총과 함께 '삼성 자본에 의해 타살된 최OO 열사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대책위는 가족들과 협의해 삼성전자서비스의 직접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충분한 보상 등이 이뤄질 때까지 발인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했다.

박유순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국장은 "최씨는 유서에서 '배고파서 못살겠다'고 했다. 그 원인은 원청이 주도한 표적 감사와 원청 직원을 동원한 일감 뺏기, 바지 사장을 동원한 노조 탄압이다"면서 "삼성전자서비스가 교섭에 나서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기 전까지는 장례를 마무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 소속 조합원들은 2일까지 모두 휴가를 냈으며 이날 천안센터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2일 저녁에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차원에서 집회를 열고 4일에는 서울에서 삼성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위영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지회장은 "최근 폭로된 삼성의 노사전략 문건에 나온 매뉴얼대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를 말살하려 했다"면서 "최씨의 죽음은 개인적인 일이 아니며 이 땅의 수많은 비정규직들의 꿈과 미래를 위해 죽은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며 고인의 가족에게 애도의 뜻을 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상범 삼성전자서비스 사장은 장례식장에 화한을 보냈으나 분노한 조합원들에 의해 폐기 처분됐다.

<박철응·송진식·천영준 기자 hero@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