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록 빠진 재판 변호인 조차 떠났다

2009. 9. 2.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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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불공정 재판 못 벗어나…

변호인이 할 게 없다" 사임계

검찰 3천여쪽 공개 계속 거부

재판부는 재판연기 수용않고

항의 방청객 4명에 감치 명령

"일단 구속하십시오."

법정 경위들이 엑스(X)자가 그려진 마스크를 쓰고 자리에서 일어난 여성 네 명의 팔을 잡아끌었다. 법정 안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검사는 증거서류를 재빠르게 읽어 내려갔고,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피고인의 요구는 묻혔다. 1일 오후 2시, '용산 철거민 참사사건' 재판은 이렇게 일그러진 풍경 속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날 공판은 시작 전부터 파행이 예고된 상태였다. 변호인단은 이날 오전 "검찰이 수사기록을 추가로 공개하지 않은 채 재판만 강행한다면 불공정성을 벗어날 수 없다. 이를 위해 변호인단은 취할 수 있는 조처를 다 했으나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재판부에 사임계를 냈다.

법원은 번호표를 나눠주며 방청객 수를 제한했다.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한양석)는 지난 공판에서 법정 소란이 일었다는 이유로 공익근무요원 2명에게 캠코더를 들려 방청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찍었다. 법정 천장에서는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카메라가 '이중 감시'를 했다.

사선 변호인단이 사임계를 내자, 재판부는 국선변호인을 변호인석에 앉히고 공판을 강행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이충연(36·구속 기소)씨는 "지금 상황에서 재판을 받을 수 없어 재판을 연기해주기 바란다"고 했지만, 재판장은 "피고인들의 구속 기간이 오래됐고, 그동안 피고인들의 주장을 충분히 들었다"며 수용하지 않았다. 이씨는 "재판을 거부한다"며 돌아앉았고,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마스크를 쓰고 방청석에서 일어선 네 사람에게는 5일 동안의 감치명령이 내려졌다. 방청석의 문정현 신부는 "피고인들이 거부하는 재판을 더 이상 방청할 수 없으니 조용히 나갈 시간을 달라"고 했고, 100여명의 방청객이 법정을 빠져나갔다.

검찰이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미공개' 수사기록 3000여쪽을 둘러싼 신경전은 6차 공판에 이어 이날의 7차 공판에서도 파행의 원인이 됐다. 재판부의 문서 복사·열람 명령에 대한 검찰의 완강한 거부, 피고인들의 법관기피신청과 세 차례의 기각 결정 등으로 용산참사 공판은 갈등 해결과 심판의 장으로서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225일째를 맞은 이 사건은 갈등의 연장과 증폭이라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피고인들과 변호인단은 검찰이 내놓지 않은 기록에 사건의 진실을 밝혀줄 무엇인가가 있다고 믿고 있지만, 검찰은 묵묵부답이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지난달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피고인의 방어권에 중요한 사안이면 공익의 대변자로서 검찰이 내줘야 한다"고 했지만, 그 뒤에도 달라진 것은 없다.

사선 변호인들이 소속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이날 성명을 내어 "피고인들에게 지금 이대로 재판에 응하게 하는 것은 변호인으로서 죄악이자 양심에 반하는 것"이라며 "지금 이대로의 재판은 문명국가의 공정한 재판이기는커녕 피고인들의 헌법적 권리를 짓밟는 사법의 치욕"이라고 주장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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