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살인·상해 형량 반토막 '황당한 법개정'

이범준 기자 2010. 11. 1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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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국회 '특강법' 고치다 삭제 실수로 적용 범위 축소대법원 판례까지 확정 '파장'

법무부와 국회의 실수로 강간살인범과 강간상해범에 대한 형량이 지난 3월부터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 대법원이 최근 선고 형량을 반 토막 낼 수 있는 판례까지 확정해 파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김모씨는 고모씨를 성폭행하기 위해 바닥에 넘어뜨리고 얼굴을 때리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 경찰에 붙잡힌 김씨는 강간상해죄로 기소됐고 지난 4월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김씨에게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강법)'이 적용됐다.

특강법에 따라 강간치상·강간치사 등 특정강력범죄는 가중 처벌된다. 가령 특정강력범죄를 3년 안에 두 번 저지르면 형량이 두 배로 늘어난다. 또 10년 안에 같은 범죄를 다시 저지르면 집행유예를 받을 수 없다. 김씨의 경우 9년 만에 다시 죄를 지어 실형을 피하지 못했다. 만약 강간치상이 특강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면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지난달 28일 대법원은 김씨가 특강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며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항소심까지 유지되던 징역 2년6월형이 '없던 일'이 된 것이다. 대법원은 또 단순 강간치사·강간치상은 특강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대법원 측은 "국회가 지난 3월 법개정을 통해 특강법의 적용 범위를 축소한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지난 3월 특강법 개정 당시 "어려운 용어를 쉬운 말로 풀어쓰고 복잡한 문장을 간결하게 다듬는다"고 개정 이유를 밝혔다.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제안 이유나 국회 검토보고서 모두 법 문안만 다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간치사상죄를 특강법에서 빼기 위해 개정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 법무부는 '기타→그 밖에' '2인→2명'으로 고쳤다. 그러나 핵심 구절에 손을 댄 것이 큰 실수로 이어졌다. 개정 이전 특강법 제2조는 '흉기, 기타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거나 2인 이상이 합동하여 범한' 강간, 강제추행, 준강간·준강제추행, 미수범, 미성년자 간음·추행'의 죄 및' 강간치사상을 법 적용 대상으로 규정했다. 즉 강간치사상은 흉기 소지나 2명 이상 함께 범죄를 저지른 것과 관계없이 특강법 대상이었다. 하지만 개정 과정에서 '의 죄 및'이라는 자구가 빠지면서 강간치사상 역시 흉기 소지나 2인 이상이 저지른 경우에만 특강법으로 처벌받게 된 것이다. 따라서 흉기를 쓰지 않고 혼자서 범죄를 저지른 김씨는 특강법 적용 대상에서 빠지게 된다.

대법원은 이 조항의 변경에 따라 지난달 28일 강간치사상의 특강법 적용을 15년 만에 폐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1996년 이후 유지되던 대법원 판례가 법무부와 국회의 실수로 뒤집힌 셈이다. 대법원 관계자들은 "법안 개정 과정을 추적해봐도 강간치사상을 제외하자는 논의는 없었다"며 "그러나 법관은 법문에 우선적으로 구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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