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허원근 일병, 자살 아닌 타살"

김미영 2010. 2. 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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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미영 기자 = 군(軍)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자살사건'이 타살이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5부(부장판사 김흥준)는 3일 허 일병의 부모 및 형제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국가는 허 일병의 부모에게 각각 4억원씩, 형제에게 각각 4000만원 등 총 9억20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

재판부는 "허 일병은 당일 새벽 두부에 총상을 입고 사망했는데 당시 중대본부에 있었던 누군가가 허 일병에게 총을 발사하거나 허 일병이 중대장 등으로부터 저항할 수 없는 압력을 받은 상태에서 총기를 왼손으로 붙잡고 머리에 대고 있던 중 허 일병의 의사와 상관없이 발사된 것"이라고 사건을 정리했다.

재판부는 "사건 발생 이후 당시 대대장, 보안대 하사가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며 "헌병대에서도 현장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나머지 탄피 1발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고 3발 모두 발견한 것처럼 발표하고 중대본부 요원들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각종 가혹행위를 가하면서 요구하는 대로 진술서를 작성하도록 유도하는 등 사건을 조작, 은폐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방부 특조단은 군 명예 회복에의 의지가 강한 나머지 군에 유리한 증거들을 확대 평가했다고 할 수 있으나 특별히 조작, 은폐 행위가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또 "허 일병의 유족들은 사고가 발생한 뒤 2004년 의문사위의 최종 조사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 10여년동안 수차례에 걸쳐 국가에 진상을 밝혀줄 것을 요청했으나 최초 헌병대 조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수사가 행해졌을 뿐"이라며 "의문사위 조사가 발표된 2004년부터 3년이 지나기 전에 소송을 냈으므로 소멸시효에 대한 국가의 주장은 받아들 수 없다"고 밝혔다.

허 일병은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1984년 4월 3발의 총상을 입고 사망했고 당시 군 당국은 사인을 사망으로 결론 내렸다.

그러나 재판부는 의문사위의 증거 자료, 헌병대 및 국방부 특조단의 수사 자료를 토대로 3발의 총상 중 머리 쪽 총상을 직접적인 사인으로 판단했으며 허 일병의 왼손 부상은 발사 당시 총구를 잡고 있었기 때문으로 판단했다.

또 재판부에 따르면 사건이 발생하고 새벽 내내 허 일병 사망에 대한 보고가 지휘부에 전달됐으며 지휘부는 이를 자살로 은폐하기 위해 구체적인 지시까지 내렸다. 허 일병의 사망 흔적을 지우기 위해 당시 중대본부 요원들이 물청소를 했고 자살인 것처럼 꾸미기 위해 사체를 수차례 옮겼으며 이미 사망한 허 일병의 가슴에 2발을 더 발사하기도 했다.

반면 재판부는 허 일병에게 총을 쏜 것으로 지목됐던 노모 중사가 사건 당일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린 정황은 있으나 그 과정에서 허 일병에게 총을 쐈다는 증거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mykim@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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