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가정형편 생각지 않고 유행 좇는 자녀들 많아… 얇은지갑 열기 망설여져

서울 송파구에 사는 주부 이정주(49)씨는 중3 아들 때문에 고민이 많아졌다.

특정 브랜드의 다운파카와 백팩ㆍ신발ㆍ스마트폰……. 애를 키우면서 들어가는 돈이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과도한 지출 때문이다.

지난주 말 이씨는 아들이 조르던 겨울용 외투를 사러 함께 집 근처 백화점에 들렀다. 아들이 '같은 반 친구들도 다 이거 입는다'며 고른 것은 65만원짜리 다운파카. 보온성과 압축성이 뛰어난 거위털로 만들었다지만 졸업과 아들 생일을 미리 축하해줄 겸 큰 마음먹고 갔던 이씨는 기겁을 했다. 결국 '한국은 그렇게 춥지 않다'고 아들을 설득해 동일한 브랜드의 30만원대 제품을 사주는 선에서 마무리 지었다.

매주 근처 산에 오르는 남편도 망설이는 전문용품 브랜드였지만 매장에는 이씨처럼 중고등학생 아들에게 사주려고 온 부모들이 자주 보였다. 매장 직원은 "아이돌 연예인이 TV광고에 입고 나온 제품이라 애들이 많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새 옷을 입게 된 아들은 싱글벙글이다.

최근 '등골 브레이커'라는 신조어가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가정형편을 생각하지 않은 채 부모에게 비싼 옷이나 통신기기 등을 사달라고 조르는 이들을 가리킨다. 청소년들이 자주 찾는 인터넷 포털을 통해 펴져나간 용어인데 부모들 등골이 휘다 못해 부러진다는 냉소를 담았다.

한 네티즌은 '노스페이스 계급'이라는 글을 통해 고가 외투를 입는 이들은 친구를 때리거나 협박해 빼앗는 일부 학생(일진ㆍ학교에서 싸움을 제일 잘하는 학생들을 일컬음)이거나 아니면 '등골 브레이커'라고 꼬집기도 했다.

중고등학생들이 또래 친구들에 뒤지지 않고 유행을 따라가려면 만만치 않은 돈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씨가 고른 노스페이스의 다운파카는 최소 20만원을 넘는다. 고교 남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나이키 운동화는 한 켤레에 10만원을 웃돈다. 비슷한 가격대의 써코니나 뉴발란스의 알록달록한 운동화는 여학생들이 즐겨 신는다.

가방도 특정 브랜드가 인기다. 드라마나 시트콤에 자주 등장해 선호도가 높은 뉴발란스의 백팩은 6만~7만원. 주로 남학생들이 선택하는 노스페이스 가방도 엇비슷한 가격이다.

생활필수품으로 불리는 최신 스마트폰도 빠질 수 없다.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애플사의 아이폰4S(32GB)는 정가 기준으로 81만8,000원이다.

두발 자유화 이후에 머리에 신경을 쓰는 학생들도 많아졌다. 남학생이 부스스한 곱슬머리를 가라앉히려 볼륨매직을 시도한다면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적어도 5만원 이상을 지출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유행을 좇아가는 청소년들의 행동을 비난만 할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정신분석심리센터 마음사이의 박영란 소장은 "또래집단 구성원들이 같은 옷차림 등을 통해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라며 "청소년들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아이들과 가정에서 경제적 부담에 대해 털어놓고 충실한 의사소통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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