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 잇단 FTA 비판] "한·미 FTA, 사법주권 침해".. 대법원장 자제 당부에도 연일 소신 발언
대법원장의 자제 당부에도 불구하고 현직 부장판사들이 잇따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사법주권이 침해됐다"는 주장을 폈다. "판결로 말한다"는 판사들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지상파 라디오에 출연, 정치적으로 민감한 현안에 의견을 표명한 것은 법관윤리강령 위반 소지도 있다. 법원행정처는 올 초 발간한 '법관윤리'에서 "법관이 언론 등을 통해 정치적 견해를 밝히거나 공식 정치토론에 참여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현직 판사, 라디오서 FTA 비판=이정렬 창원지법 부장판사는 2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한·미 FTA의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는 우리 사법권을 박탈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판사가 방송에 나와 국가 정책을 놓고 개인적 견해를 밝힌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그는 "FTA 비준동의안이 충분한 논의 없이 날치기 통과된 것은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에서 민주주의가 유린된 것"이라며 "헌법재판소에서 무효라고 하기 전에는 FTA 협정에 따라 판사 업무를 해야 할 제 모습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름대로의 울분을 페이스북에 표시했다"고 말했다. 이 부장판사는 자신의 글이 정치적 중립 의무에 위배된다는 시각도 있다는 질문에 "ISD 문제는 사법주권에 관한 것이고 법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법률가인 판사 본연의 업무"라고 반박했다.
최은배 인천지법 부장판사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ISD는 국민의 관점에서 볼 때도 주권침해 소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4대강 사업도 일방적으로 홍보해 여론을 형성시키고 밀어붙이기만 할 뿐 전문가의 문제제기에 제대로 된 답변이나 토론·소통 과정이 크게 미흡했다"고 강변했다.
◇"대법원장 만나겠다"=지난 1일 법원 내부 게시판에 "한·미 FTA 문제에 사법부가 나서야 한다"는 글을 쓴 김하늘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이날 다시 글을 올려 "제안에 동의한 판사가 현재까지 116명"이라며 "이렇게 빨리, 많은 판사가 공감할 줄 몰랐다. 용기가 난다"고 적었다. 김 부장판사는 "오늘 오후 5시가 지나면 제안에 동의한 판사들의 이름을 정리해 청원문을 작성하겠다"며 "대법원에 연락해 대법원장을 만날 일정이 마련되는지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판사 100명 이상이 제안에 동의하면 대법원에 FTA 재협상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청원하겠다던 말을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것이다. 오후 5시까지 댓글을 단 판사는 170여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의 행보에 대해 법원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라디오에 출연한 판사들에 대해 "나가서 정치를 하라"며 "법관이 국민을 선동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그는 TF 청원과 관련해서는 "젊은 판사들도 FTA 재협상 TF를 만들자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다만 FTA의 법률적 영향을 연구해 볼 수는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법원의 한 판사는 "라디오 발언은 보는 각도에 따라 법관윤리강령 위반"이라며 "대법원장의 자제 권고도 있었는데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재경 지법의 40대 판사는 "FTA 조항을 법률적으로 검토해보자는 것이 대법원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지호일 우성규 기자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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