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의 그늘 현장을 가다- 벼랑에 선 그들>"꿈꿀 수 있다면 이렇게 살겠수?".. 얼굴엔 무기력 그늘만

박정경기자 2011. 11. 1.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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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노숙인

10월27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동자동 서울역 광장에는 가을볕이 눈이 시리도록 찬란하게 쏟아져 내렸지만, 그 볕을 등진 채 광장 한가운데 우두커니 앉아 있던 박근호(48)씨의 얼굴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박씨는 "3년 전 아내에게 버림받고, 당시 한 살 된 딸아이를 아동보호센터에 빼앗긴 후 서울역 노숙인이 됐다"며 힘겹게 입을 열였다.

그도 10년 전 전남 목포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만 해도 꿈 많은 30대였다. 중국 음식점에서 설거지와 배달을 하며 돈을 모아 서울역 뒤편에 쪽방을 얻었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서울역 광장에서 한 여자를 만났고, 그 여자와 쪽방에 신혼 방을 꾸리고 아기도 낳았다.

박씨는 "새벽에 경동시장에서 과일을 떼다가 남대문경찰서 맞은편에서 과일 장사를 했다"며 "돈을 모아 전세방이라도 얻기 위해 밤낮 없이 일만 했다"고 말했다.

화목한 가정을 꾸리려던 박씨의 꿈은 알코올 의존증 증세가 있던 그의 아내가 3년 전 갑자기 집을 나가면서 부서졌다. 그는 한 살 된 딸을 안고 아내를 찾으러 영등포역을 돌아다니다 한 행인의 신고로 딸아이마저 아동 보호소에 빼앗겼다. 박씨는 "행색이 초라하니까 무조건 아이를 빼앗아 가더라. 잘 살아 보려고 정말 노력했는데, 사람들은 지금의 내 모습만 보고 손가락질을 한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다시 과일 장사를 시작해 돈을 모으고, 세 살 된 딸이 대학교에 갈 때쯤 적금통장 하나를 건네주는 것이 꿈이라는 박씨는 한 손엔 소주병을, 다른 한 손엔 허름한 겉옷을 들고 힘없이 서울역 광장을 걸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역과 역사 주변에는 300여명의 노숙인이 있다. 이들 중에는 박씨처럼 자본주의사회 안에서 열심히 살아 보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거나 기회조차 얻지 못해 거리로 나오게 된 사람도 있고, 자유시장경제의 경쟁이 싫어 자발적으로 노숙의 삶을 선택한 이도 있다. 사연과 동기가 어떠하든 대부분 노숙인들은 고독하고 연약하다. 노숙인상담보호센터 관계자들은 "주류 사회의 바깥으로 밀려나 있는 노숙인들은 배고픔과 질병에 괴로워하며, '일하지 않는 게으르고 무가치한 존재'라는 차가운 시선에 시달린다"고 지적했다.

서울역에서 200m 떨어진 '서울시 따스한 채움터'에서 점심을 먹는 200여명의 노숙인 사이에 지난 30년 동안 서울역에서 노숙 생활을 한 오경운(62)씨가 있었다. 오랜 노숙 생활로 치아가 다 빠진 오씨는 밥과 반찬을 제대로 씹지 못하고 목으로 넘겼다.

오씨는 서울역 노숙 생활을 시작하기 전 공사 현장 근로자로 일하면서 돈도 꽤 모았지만 하는 일이 번번이 실패하면서 노숙인으로 전락했다. 그는 "이게 팔자인지 모르겠는데, 돈을 벌고 어딘가에 매여 일을 하기보다는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고 말했지만 삶을 포기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노숙인은 '게으르고 폭력적'이란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서울역 노숙인들은 자기만의 시간표대로 생활하며 타인의 영역에 침범하지 않았다.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는 일부 노숙인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노숙인은 홀로 어디론가 걷고 있었다. 서울역의 치안을 담당하는 서울역 파출소 관계자들도 "폭력적이거나 행인을 못살게 구는 노숙인들은 극히 드물고 대부분의 노숙인은 얌전하다"고 입을 모았다. '사람대접을 못 받는다'는 노숙인들의 눈에서 분노를 찾기는 어려웠지만 희망 역시 찾기 힘들었다. 서울역에서 폐지를 줍고 있던 강모(45)씨는 "앞이 안 보이니까 답답한 마음에 서울역으로 나와서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어느새 노숙자가 돼 있더라"며 "내일을 꿈꿀 수 있다면 서울역에서 이렇게 살겠는가"라고 물었다. 내일의 희망을 찾기 힘든 노숙인들은 오늘도 차가운 서울역 광장에 고독한 몸과 마음을 누인다.

박정경기자 verit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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