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사고 위험 알리니 징계로 응수

김은지 기자 2011. 9. 2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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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신속했다. 8월23일 징계가 결정 난 지 딱 일주일 만이었다. 보통 열흘 넘게 걸린다는 통지였다. '징계처분 사유설명서'에는 수도권 철도차량 정비단 고속 중정비처의 차량관리원 신춘수씨(42)를 해임한다고 적혀 있었다. 여섯 장에 걸쳐 긴 이유가 설명되어 있었지만 요약하자면 간단했다. 내부 고발이 문제였다. 하루아침에 16년 동안 몸담았던 한국철도공사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된 신씨는 "추석 선물도 이런 추석 선물이 없다"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발단은 5월8일 부산발 서울행 KTX 130호 열차에서 일어난 고장이었다. KTX의 잦은 사고 및 장애가 연일 언론에 보도될 때였다. 광명역을 향해 달리던 열차 맨 끝 객차에서 연기가 나고 차량이 심하게 흔들렸다. 당시 철도공사 쪽은 과열된 엔진 문제일 뿐 고장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차량정비단이 본 엔진 모습은 달랐다. 엔진 커버 한쪽과 베어링이 부서져 있었다. 고장이 난 KTX는 310만㎞를 달렸다. 250만㎞ 주행할 때마다 엔진을 교체해야 한다는 철도공사 규정을 한참 넘어선 수치였다. 사고 경위를 조사하던 철도공사 직원 박 아무개씨가 사진을 찍었다. 상부 보고용이었다. 철도노조 고양차량지부장인 신씨는 철도노조에도 사고 사실을 알리기 위해 박씨에게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철도노조 제공 5월9일 한 방송사가 보도한 KTX 사고 열차의 엔진 사진. 엔진은 곳곳이 그을려 있고 한쪽 커버가 부서졌다.

사달은 그 이후에 났다. 철도노조에 접수된 사진이 한 방송사를 통해 보도되면서 철도공사가 이를 문제 삼기 시작했다. 신씨와 박씨는 사내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 회사 내부 정보를 허락 없이 외부에 알리고 회사 이미지를 떨어뜨렸다는 이유에서였다. 철도노조는 국민권익위원회에 징계처분이 부당하다며 민원을 넣었다. 그동안 권익위가 내부고발자 보호를 강조해온 데다 9월30일부터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시행되는 점을 염두에 둔 조처였다. 8월17일 나온 결과는 각하였다. 권익위는 이번 건이 공익신고자 보호법 시행 시기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밝혔다.

곧바로 철도공사의 징계가 이어졌다. 신씨는 해고, 박씨는 해고 바로 아래 단계인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았다. 재심 청구를 했지만 두 사람의 싸움은 길어질 전망이다. 재심 청구 뒤 60일 안에 결과가 나오는 데다 결과가 나쁠 경우 앞으로 법정 투쟁까지 지난한 길에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이제 그에게 남은 길은 노동위원회와 법정행뿐이다. 신씨는 "회사가 명예훼손 운운하는데 그 논리라면 오히려 사고를 키우는 회사가 명예훼손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박씨는 언론 접촉을 부담스러워했다). 민주노총 법률원의 우지원 변호사는 "어떤 사실이 진실이나 공익에 해당하면 명예훼손죄는 성립하지 않는데, 이번 건도 이에 해당한다고 판단된다"라고 말했다.

"시범 케이스로 두 사람 중징계"

백성권 철도노조 홍보국장은 두 사람의 징계가 '시범 케이스'라고 단언한다. 백 국장은 "이번 징계는 철도공사 직원들에게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말을 못하게 하는 효과를 불러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잦은 사고로 여론의 도마에 오르는 상황을 막기 위해 철도공사가 개별 직원 입단속을 시작했다는 뜻이다. 실제 현장 분위기가 위축되었다고 철도공사 직원은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비업 근무자는 "남발되는 징계에 누가 나서겠나. 이런 식이라면 웬만한 문제는 덮고 갈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윤무영 철도노조는 감사원 앞에서 KTX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라며 1인 시위(위)를 한다.

전문가들의 지적도 비슷했다. 오선근 공공교통 시민사회노동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은 "일본의 사례를 보더라도 징계 위주의 책임 추궁은 사고를 더 키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김철홍 인천대 교수(산업공학과)는 "현재 철도는 대형화·고속화되었지만 인력은 계속 줄이고 있다. 특히 정비 관련 정규직 직원들은 2007년부터 꾸준히 줄었다. 구조조정으로 직원 한 명당 업무 부담이 훨씬 늘어났다. 이런 구조를 간과한 채 사고 책임을 개인에게만 전가하는 건 부적절하다"라고 말했다.

철도노조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사고와 관련해 해고당한 철도공사 직원은 7명, KTX 사고 및 장애는 31건(무궁화호 및 전동차 포함 38건)이다. 지난 한 해 동안 KTX 사고 및 장애가 53건 일어나는 동안 사고 관련 해고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과 비교된다. 신씨가 해임을 통고받은 다음 날 부산에서 서울로 가던 KTX가 또 멈춰섰다. 올해 들어 39번째 고장이었다.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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