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부실 국정교과서] 초등 4년 도덕 교과서 한글 관련 내용 오류들

2011. 3. 2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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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 공용문자로 뽑혔다?… 관련된 학술회의서 언급없어(2) 英 옥스퍼드대학서 선정?… 언어학과선 순위 매기지 않아(3) UN, 문자없는 나라에 제공?… 국립국어원 관계자 "금시초문"

'몇 년 전 세계 언어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학술회의에서 세계 공용 문자로 쓰이면 좋겠다고 선정한 글자가 무엇일까요?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합리성, 과학성, 독창성 등을 기준으로 가장 우수한 글자로 뽑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 문자가 없는 나라들에 국제연합(UN)이 제공하는 문자가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바로 한글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1학기 도덕 교과서 114쪽에 실린 글이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 한글'이란 제목이 붙어 있다. 교과서 116쪽 참고자료 목록엔 어떤 자료를 근거로 이 내용을 수록했는지 나와 있지 않다.

◇세계 공용 문자?=인터넷에선 관련 내용이 무수히 검색된다. 언론 기사도 많다. 한 신문은 '얼마 전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 언어학자들의 모임에서는 한글을 세계 공용어로 쓰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고 소개했다.

교과서에 실린 문장과 거의 같다. '의견이 오갔다'를 '선정했다'로 교과서가 표현 수위를 높였다는 점만 다르다.

교과서엔 출처가 없지만 인터넷엔 이 내용의 출처를 표기한 글이 꽤 있다. KBS가 1996년 한글날 특집으로 방송한 '한글 발표 550돌 기념-세계로 한글로'에 나온 얘기라는 것이다. 해당 프로그램에는 한글 관련 학술대회가 딱 한 번 언급된다.

"1996년 6월 25일부터 27일까지 프랑스에서 한글문화의 세계화란 주제로 '한글 반포 550주년 기념 한글문화 국제 학술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대회에는 세계 각국에서 저명한 학자 50여명이 참석해 한글과 한국어에 깊이 스며 있는 한국인의 정서와 행동양식 등 한국문화의 특성을 한국어 교육에 활용하는 방안 등을 논의했습니다."

'한글이 세계 공용 문자로 쓰이면 좋겠다고 선정했다'는 내용은 없다. 이 프로그램을 만든 양원석 PD는 "만약 학술회의에서 그런 내용이 있었다면 당시에 큰 뉴스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옥스퍼드대학?=교과서에 실린 '옥스퍼드대학' 관련 내용도 인터넷에 많다. 언어학으로 유명한 영국 옥스퍼드대학이 세계 문자 순위를 매겨 발표했는데 한글이 1등이었다는 게 요지다.

2007년 국립국어원은 한글 홍보 자료에 이 내용을 인용하려 했다. 확인을 위해 옥스퍼드대학에 연락했다. 당시 이 작업을 주도했던 김모 연구관은 "인터넷 글엔 옥스퍼드대학의 '언어학대학'이 순위를 매겼다고 돼 있는데, 옥스퍼드대학엔 언어학대학이란 게 없다. 언어학과는 있는데 그런 순위를 누가 매겼는지 모르겠다는 답이 왔다. 그래서 홍보 자료에 인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국어학자 오새내씨는 2008년 한국어문교열기자협회 계간지 '말과글'에 한글 관련 언론 보도 중 사실이 아닌 것들을 모아 기고했다. '옥스퍼드대학 스토리'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2005년부터 이 얘기의 근거 자료를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 중인데 아직도 구하지 못했다. 언론에 그런 내용을 쓴 분들에게 자료를 요청해봤지만 '인터넷에서 봤다'는 답만 왔었다"고 말했다.

문자 없는 나라에 유엔이 한글을 제공한다는 얘기도 신빙성이 낮다.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에 대한 한글 보급 사업도 우리나라 민간단체가 한 것일 뿐 유엔과는 무관하다.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금시초문이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우리가 모르고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외교통상부 유엔과 관계자 역시 "그런 보고를 받은 바 없다"고 했다.

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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