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산수

입력 2010. 7. 30. 18:10 수정 2010. 7. 3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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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노 땡큐!]

맞벌이 부부는 한 끼 식사비가 단돈 1천원에도 못 미치게 책정된 최저임금을 받기 위해 종일 일터에 나가 있다. 먹고살아야 하고 어떻게든 아이를 키우고 가르치려면 달리 방법이 없다. 엄마·아빠가 없는 동안 초등학생 아이는 집 안에서, 동네 골목에서, 학교 운동장에서, 하물며 교장실에서 고스란히 어른들의 몹쓸 짓에 속수무책으로 방치되고 있다. 아이의 부모가 받는 임금으로는 지금보다 나은 생활은 꿈도 꿀 수 없다. 지금보다 더 나은 옷을 입을 수도, 더 나은 것을 먹을 수도, 더 나은 집으로 이사갈 수도 없다. 식구 중 누가 아파서도 안 되고 아무리 급해도 택시를 타서도 안 되고 외식을 해서도 안 된다. 물론 의무교육 외에는 교육을 받을 수도 없다. 부부의 임금에는 의류비도 택시비도 외식비도 교육비도 거의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최저임금과 최저생계

전기·수도 공과금을 포함한 한 달 주거비로 14만원을 책정받은 아버지는 직장에서 퇴근하면 다시 대리운전을 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적자와 빚에 시달리는 생활을 메울 방법이 없다. 몸은 녹초가 되지만 투잡을 계속할 수만 있다면 이번 학기 큰아이 대학 등록금과 둘째가 가고 싶다는 학원비 마련에 보탬이 될 것이다. 언제 가족끼리 맘 놓고 한 번 쇼핑도 하고, 계절이 바뀔 때 아이들과 고생하는 아내에게 옷 한 벌 사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마음뿐이다. 당장 그게 어렵다면 시원한 식당에서 외식이라도 한 번 하자고 생각하며 콜이 들어온 곳으로 숨차게 뛰어간다. 오늘따라 차주의 주정이 심하다. 운전을 똑바로 하라는 둥 트집을 잡으며 욕설을 퍼붓더니 난데없이 손찌검이다. 어지간하면 참으려 했지만 심하다 싶고 두려운 마음에 차에서 내려 항의했다. 차주는 거친 말을 내뱉으며 다짜고짜 운전석에 올라 차 후미에 있는 그를 향해 급발진을 하듯 돌진했다. 서울과 경기의 애매한 경계 지역이라 몇천원을 더한 요금 실랑이가 끝내 차주의 심사를 사납게 했을 것이다.

보건비 3천원을 책정받은 아내는 대형마트 계산대에서 일한다. 종일 서서 일하니 다리가 코끼리 다리처럼 무겁고 퉁퉁 붓기 일쑤다. 요즘은 머리까지 깨질 듯이 아파 병원에 갔다가 수십만원 하는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자기에 놀라서 그냥 나왔다. 간단한 컴퓨터단층촬영(CT)도 4만원이나 한다니 검사는 아예 포기하고 두통약만 먹고 있다. 이름을 대면 알 만한 대형마트 계산대에서 정규직으로 일할 때만 해도 지금보다는 괜찮았다. 구조조정에 밀려나와 식당에서 시간제로 일하기도 하고 청소용역을 하기도 하고 백화점 시식코너에서 판촉사원 아르바이트도 했다. 온갖 허드렛일을 하다가 지금은 예전 정규직으로 있던 대형마트와 비슷한 곳에서 임시직으로 일한다. 식당일도 그렇고 백화점 판촉도 청소일도 모두 제일 바쁜 시간에만 불러서 일을 시킨다. 잠시도 숨을 돌릴 여유가 없다. 집중적이고 집약적으로 일을 시키기 때문에 노동강도는 전보다 훨씬 더하지만 임금은 그전과 비교할 수 없게 적다. 그나마 내일도 일을 할 수나 있을지 불안한 파트타임 인생이다.

하루 교통비 330원을 책정받은 청년은 평일 밤 시간과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한다. 지난달까지 이틀은 중학생 과외를 했는데 기말고사가 끝나고 정리되었다. 시급이 동네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나 교통비를 생각하면 그냥 같은 지역의 편의점 같은 데로 한 곳 정도 더 일자리를 알아봐야 할 것 같다. 부모님을 원망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평생 쉬지 않고 일하시는 걸 알기에 대학을 다니는 것이 죄스러울 때가 많다. 이렇게까지 힘들게 계속 공부를 해야 하는지 회의가 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방법이 없다. 졸업을 한다고 해도 학자금 대출을 갚을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 동생이 내년에 대학에 들어가면 휴학을 하거나 군대를 가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

미래를 허락하지 않는 셈법

10원을 올려준다, 5원을 올려준다 임금 협상이 아니라 적선을 받는 듯 모욕을 던져주던 최저임금이 결정되었다. 식비, 주거비, 보건비, 교통비, 어느 나라에서 가능한 계산법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던져진 임금은 이 시대를 사는 많은 부모 세대에게, 젊은 맞벌이 부부에게, 청년 세대에게 골고루 적용된다. 수십 년을 일하고, 공부할 시간을 쪼개어 일하고, 잠자는 시간을 바쳐 일한 대가로 지금보다 나은 내일을 바랄 수 없다면 노동이 진정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성실하고 부지런히 일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좌절만큼 불행한 일은 없다.

신수원 '손바닥 문학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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