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혜택조차 양극화.. '사회권'의 위기

2010. 7. 2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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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창간 22돌 기획 대논쟁 <한국사회 미래를 말하다>

① 왜, 복지국가인가

우리 사회의 대안체제로 복지국가를 주창하는 목소리가 드높다. 학계와 시민사회, 정치권까지 번졌다. 진보개혁 진영 일각에서는 이를이념적 매개로 해 정당 통합을 꾀하려 한다. 복지국가가 무의미한 구호가 아닌, 나름의 시민권을 획득하며 우리 사회로 잰걸음치며 다가오는 형국이다. <한겨레>는 지난 5월 이래 창간 22돌 기획 '한국 사회의 미래를 말하다'의 1부 순서로 진보와 보수의 미래 논쟁을 벌였다. 7회에 걸친이 논쟁에서 국가비전, 성장, 분배전략 등을 짚었다. 이어 2부 순서로 '진보개혁, 복지국가를 말하다'를 마련해 다섯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그 첫회로 한국 복지의 현주소를 사회권 차원에서 새롭게 조명한 노대명 박사(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의 글을 실었으며, 아울러 복지국가 연구자인 고세훈 고려대 교수의 인터뷰를 통해 복지 한국의 나아갈 길과 이를 위한과제를 살펴보았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복지제도는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많은 빈곤층은 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복지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9년 우리 사회의 소득 불평등과 빈곤율은 1980년대 초반 수준으로 되돌아가 있다. 복지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저임금 노동자는 늘어나고, 자산 불평등은 더 깊어지고, 교육기회의 격차마저 커지고 있다. 복지의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가 매우 저조한 것이다.

미래 한국을 위한 대안적 복지패러다임이 나와야 하는 이유다. 이 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사회권이다. 사회권이란 시민들이 생존 보장 및 생활 향상을 위해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소득보장권, 노동권, 주거권, 건강권, 교육권 등을 가리킨다. 이런 권리를 국가가 보장함으로써 최소한의 인권이 보장될 수 있다. 복지 또한 시혜가 아닌 모든 시민에게 주어진 당당한 보편적 권리라는 시각에 기초하고 있다. 한국의 복지는 이제 사회권적 관점에서 재조명되고, 새로이 설계돼야 한다.

청년기 교육기회 차별, 장년기 고용 주거 불안, 노년기 빈곤 자살 급증…'복지정책 재설계' 시급

우리의 복지제도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누구에게나 다 같이 적용되지 못하는 보편주의 결여가 핵심이다. 직장이 있고 없음에 따라,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에 따라 복지혜택의 격차가 너무나 큰 것이다. 이런 양상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사회보험의 적용 범위가 확대되는 단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높은 임금과 고용이 보장된 정규직 노동자에게 더 많은 복지혜택이 주어지고, 저임금과 고용 불안에 노출된 비정규직 노동자는 복지혜택에서 배제되는 이른바 '이원화'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빈곤층(경상소득 중간값의 50% 이하인 계층)은 비빈곤층에 견주어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집단의 비율이 2배가량 더 높다. 이는 복지 확대가 소득격차를 줄이기보다 더 늘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런 추세는 외환위기 이후 더욱 뿌리 깊어졌다. 지난 10년간 중산층 비중이 크게 떨어진 것은 바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리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곧 복지혜택의 이중구조가 초래한 결과에 다름 아니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의 복지제도는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비록 일정 부분 개선된 점이 있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고용·교육·주거 등 인간의 존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권리, 곧 사회권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나마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있지만, 이는 전체 빈곤층의 약 3분의 1에게만 혜택이 돌아갈 뿐이다.

사회권의 위기라 할 수 있다. 이는 빈곤층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대다수 시민들이 겪고 있거나 겪을 문제다. 18~65살 근로연령층을 보자. 이들은 지금 노동권, 교육권, 주거권의 위기를 가장 총체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실업, 고용 불안, 저임금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조기 퇴직의 압력마저 받는다. 한번 노동시장에서 퇴출되면 본래의 일자리로 복귀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결혼 초기에는 주거 마련을 위해 대출상환부담에 허덕이게 되고, 자녀가 성장하면서는 무거운 사교육비 부담을 안게 된다. 직장에서 퇴출되면, 빚에 허덕이거나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 '가난한 노년' 또한 이들을 기다린다. 이들 근로연령층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려면 복지제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노동권, 교육권, 주거권 보장정책과의 연계가 필요한 것이다.

노인은 빈곤과 사회적 소외를 가장 크게 겪고 있는 위기집단이다. 2008년 우리 사회 노인빈곤율은 48.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이는 수년째 오이시디 국가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노인자살률로 이어진다. 복지를 늘려왔다고 하지만 실상은 노인 빈곤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향후 고령화는 우리의 미래를 더 암담하게 한다. 노인 인구의 기초생활을 보장하자면 소득보장권, 건강권 외에도 문화적 권리도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노인들에게 최소한의 소득보장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청년세대는 어떤가? 20~30대의 상당수는 각종 경쟁에서 기회조차 못 얻는 경우가 허다하다. 계층이동은커녕 자기실현의 기회에 큰 제약을 받고 있다. 부모의 교육 수준과 소득 수준에 따라 사교육비 경쟁에서 차별을 받는 기회 불균등을 겪었으며, 대학에 들어가서도 학비와 생계비 부담으로 학업성취에 어려움을 겪는 불균등을 경험한다. 대학 서열과 학업성취가 일자리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물어보나 마나다. 비정규직이 되면 정규직 진입은 꿈같은 일이다.

취업을 했다고 해도 자산 형성은 요원하다. 결국엔 부모의 재산과 소득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 빈곤의 대물림 현상이 구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들에게 기회균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기본권인 사회권을 강화하는 노력 외에는 달리 답을 찾기 어렵다. 노인과 청년층의 상황은 한국의 사회정책이 더는 사회권에 기반하지 않고 있음을 말해준다.

'보편주의' 결여된 복지, 계층간 격차 악화시켜소득불평등·빈곤율도 1980년대 수준 못벗어

 임금차별과 학력차별을 용인하는 노동정책, 사교육에 의해 대체된 교육제도, 중질환에 걸리면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의료보장제도는 더는 사회권을 보장하는 복지제도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시민들의 주거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개발정책도 사회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최저주거기준이 있다고 해도 이를 실천할 구체적인 정책이 없다면, 그것 또한 사회권의 부재를 뜻한다. 그 결과는 저임금 일자리를 전전하는 노숙자며 쪽방거주자며 고시원 거주자다. 이런 주거빈곤층이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권의 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를 낙관하기는 힘들다. 이미 상당 기간 '고용 없는 성장' 또는 '빈곤 유발형 성장'을 겪은 상황에서 경제성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한번 빈곤층으로 추락하면, 기초생활을 유지하기 힘들고, 좀처럼 재도전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시민들은 몸으로 안다. 각종 정책 현안을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이 벌어지는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왜 국민들이 복지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복지지출 증가에 따른 조세부담을 꺼리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자신과 가족의 삶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양보나 타협 없이 경제적으로 유리한 지위를 사수하는 것이다. 이기심과 배금주의가 사회권이 실종된 자리를 대신한다. 이런관점에서 보면, 우리 사회는 사회권 강화를통해 rl초생활을 보장하고, 기회균등을 보장하며, 연대적 실천을 확산시키지 않고는미래를 낙관하기 힘든 것이다. 사회통합의 국민적 역량을 기대하기도 힘들 것이다.

 사회권 강화를 위해서는 복지지출을 늘려야 하고 조세부담의 증가가 불가피하다. 물론 국가재정적 여력과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새 제도 도입에 따른 복지지출의 증가로 일종의 '복지 피로감'이 존재하고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우리 사회가 사회권 강화를 위한 재정지출을 감당할 여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복지지출증가가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킨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2010년 오늘, 우리 사회의 복지는 여전히 성장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영역에 재원을 집중하는 선별적 투자전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선별적 투자전략에 의존할 일은 아니다. 복지확장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지만 사회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복지 확대는 지속돼야 한다.

 서구 복지국가처럼 '축소 지향적' 복지개편이 아니라, '확장 지향적' 복지개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단절되어 있는 사회권을 종

합적으로 연계하고 보편적 권리로 자리매김하는 복지개편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 서구학자의 표현처럼, 우리 사회는 더는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싸구려 복지국가'를 기반으로 발전할 수 없다. 개인의 경제사회적 권리와 의무를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역할은 이제 큰 정치의 문제로 남아있다.

노대명 박사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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