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부추기듯 방치된 동네골목초등생 딸 키우는 나는 잠이 안 온다

2010. 7. 8.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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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안호덕 기자]아동 성폭력 뉴스가 연일 끊이지 않는다. 초등학생 딸아이를 둔 부모로서 그런 뉴스를 대할 때면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을 쓸어내리곤 한다. 이건 뭐 학교 내, 골목 안, 아이만 있는 가정집 가리지 않는다. 어제는 서울, 오늘은 대구, 또 어디… 전국적으로 전염병처럼 돌고 있다. 방법은 없는 것일까? 화학적 거세. 전자발찌. 엄한 처벌, 사건이 공론화될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지만 그렇게 실효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아이가 가방을 싸서 현관을 나선다."엄마, 아빠 학교에 다녀 오겠습니다.""그래 오늘도 차조심. 또 뭐지?""개조심. 사람조심이요.""그래 골목길로 다니지 말고 큰길로 다녀. 사람 많은 길로."아침마다 아이와 주고 받는 인사다. 좁은 골목길에서 차조심, 개를 유독 무서워하는 아이에게 개조심하라는 당부.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 조심하라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떤 부탁도 들어 주지 말라고 당부 겸 다짐을 받고 등굣길을 배웅한다.

차조심 개조심 그리고 사람조심

▲ 빈집 사이 골목길로 등교하는 아이들

주변 상가 유리는 다 깨져 있고, 건축 폐기물이 쌓여 있다. 양쪽 집들은 대부분 비어 있다.

ⓒ 안호덕

▲ 불타버린 빈집

사람들이 떠나간 빈집. 언제 불이 나도 났는지 심하게 그을려 있고 유리는 다 깨져 있다.

ⓒ 안호덕

차조심. 개조심에 사람조심을 덧붙인 것 몇 년 전 일이다. 아이에게 짐 좀 같이 들어 달라는 부탁을 해서 유인해서 유괴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아내는 아이에게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떤 부탁도 들어주지 말고, 어떤 호의도 받지 말고 어디로 가자고 하면 큰 소리로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라고 몇 번이고 가르쳤다.

꼭 그렇게 타인의 호의를 거절하고 아이의 친절까지 차단하면서 '사람조심'을 가르쳐야 하느냐는 나의 항변(?)도 있었지만 "뉴스 못 봤어요? 세상이 얼마나 험한데" 이 한마디에 모든 것이 정리되어 버렸다. 그때부터 아이는 '차조심, 개조심, 사람조심'을 거의 매일 등교 인사처럼 반복한다.

내가 사는 곳은 서울시 광진구 자양동 자양6정비구역 근처다. 집에서 학교까지 1.5km남짓. 어른들 보기에는 그리 먼 거리도 아니지만 아이들로서는 꽤나 힘들 길이다. 더구나 보도와 차도도 구분되지 않는 길. 시장길을 이리저리 돌아가야 당도할 수 있는 학교는 단지 1.5km 직선도로를 걷는 것과는 판이한 어려움이 있다.

또 하나, 부모로서는 걱정될 수밖에 없는 구간이 있다. 몇 년 전부터 정비구역으로 발표되어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골목길이다. 비오는 어떤 날. 아이의 등굣길을 따라 나섰다가 음산한 그 골목길 때문에 다른 길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 문이 다 뜯겨 나간 식당 건물

문이 다 뜯겨 나간 식당 안에는 이불, 술병들이 밖에는 건축 자재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아이들은 이 길로 학교를 간다.

ⓒ 안호덕

▲ 남아 있는 사람들의 고통

골목 대부분 집들이 비어 있다보니 남아 있는 사람들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닌 듯 하다.

ⓒ 안호덕

정비구역으로 언제 발표 났는지 알 수 없으나 상가가 철시되고 빈집이 생겨난 지는 2년이 넘었다. 단지 비어있던 가게들은 어느 날은 유리창이 깨어지고 또 어떤 날부터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했다. 집은 점점 더 많이 비어 가고 골목이 폐허처럼 되어 갔다. 그러나 여전히 드문 드문 사람들이 살고 있고, 아이들은 폐허가 된 골목길을 통학로로 이용하고 있다.

위험한 등굣길, 접근금지 표시조차 없어

문이 다 뜯겨나간 건물. 불이 났는지 심하게 그을린 건물. 노숙자나 불량 청소년들이 묵었는지 소주병에 이부자리가 뒹굴고 있고, 구토 자국이며 각종 오물이 넘쳐나고 있는 골목. 재개발이든 정비구역이든, 공사는 언제부터 시작한다는 예정도 없이 사람들만 내보내고 도심 한복판에 이렇게 폐허처럼 방치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남아 있는 사람들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물론, 등하교길 위험에 노출된 아이들을 위한 '접근 금지' 경고판이나 펜스조차도 쳐져 있지 않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부산 여중생 살해 사건. 범행 장소도 재개발을 앞둔 비어 있는 집이었고,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재개발 예정으로 생겨난 빈집은 항상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왔다. 그러나 개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그때일 뿐, 여전히 재개발 예정구역 빈집들은 폐허처럼 방치되어 범죄의 온상으로 될 여지를 충분히 안고 있다.

학교에서는 그나마 CCTV를 설치한다, 도우미 제도를 도입한다,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이나 인력을 보완하고 있지만, 학교와 큰 길 하나를 두고 있는 골목길은 수많은 아이들이 아침 저녁으로 등하교를 하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CCTV는커녕 어떤 위험 표지판조차 없다. 재개발 구역 내 사는 사람들이 모두 퇴거하고 공사가 시작될 때까지는 계속 이대로 방치할 것인지, 아이들은 알아서 먼길을 돌아 가고, 자기 안전은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인지 관계기관에 묻고 싶다.

오늘도 아이는 차조심, 개조심, 사람조심을 맹세처럼 말하고 등교한다. 아빠는 또 대답처럼 말한다.

"아빠가 가지 말라는 그 골목, 절대 들어가지마. 늦더라도 돌아가."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다시 가본 골목길. 내 아이는 아니지만 또래의 아이들은 여전히 그 길로 들어서고 있다. 위험한 등굣길. 좀 바꾸어 주시라. 벌써 2년이 넘게 방치된 재개발 구역의 빈집들. 삐죽삐죽 열려 있는 빈집 대문들. 깨어진 유리창들. 각종 오물과 건축 폐기물이 쌓인 골목길. 제발 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골목으로 바꿔 주시라.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 일, 예를 들어 경비원을 세우거나, 빈집에 시건장치를 하는 것부터 시작하라. 그리고 마지막 사람이 집을 비울 때까지 몇 년을 폐허처럼 방치하는 재개발 방식도 이 참에 고쳐라.

특단의 조치, 엄정 처벌, 매번 반복되는 땜질 처방보다 아이들 등굣길 안전이라도 보장해 달라는 것이 아이를 둔 부모의 바람이다. 재개발 구역, 이런 곳이야말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사람 조심'을 입버릇처럼 외우게 해야 하고 골목길 하나 하나까지도 가야할 길, 가지말아야 할 길, 가르쳐야 하는지. 아이는 날마다 위험하고 부모는 날마다 걱정이다. 세상 참 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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