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시간이 없다 ② 배려없는 직장문화

2009. 11. 30.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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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낳으면 불이익"..잦은 회식.야근에 '괴로운' 워킹맘 가정친화경영 성과좋다..경영진 의지가 관건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 「#1. 박진희(29.가명) 씨는 2005년 대형 유통업체에 공채로 입사했다.

여성 동기는 모두 10명이었다. 그 중 2명이 입사 직후에, 다른 2명은 결혼하면서 회사를 그만뒀다. 여전히 남은 6명 중 3명은 결혼했고 3명은 미혼이다.

결혼한 여성 동기 3명은 모두 아이가 없다. 내년 대리 승진을 앞두고 있어서다.박씨는 "아이를 낳아 출산휴가를 가면 그해 인사고과는 최하점을 받는다"면서 "동기들이 다 대리를 다는데 나만 아이를 낳았다고 승진에서 누락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2. 이지현(30.가명) 씨는 올해 초 임신 4개월만에 유산을 했다.대기업 기획파트에서 근무했던 이씨는 임신중이었지만 회사 전반에 대한 컨설팅작업이 진행되면서 야근을 밥먹듯하다 소중한 아이를 잃었다.

이씨는 "유산 전 몸이 안좋아 휴가를 신청했을 때 받아들여지기만 했어도…"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유산 뒤에도 불과 일주일밖에 쉬지 못하고 다시 격무에 내몰리자 회사를 그만 뒀다.」

임신과 출산. 모두의 축복속에 가장 행복해야 할 순간이다.하지만 일하는 대한민국 여성 대다수에게는 동시에 고민과 갈등의 시작이다.`아이는 누구한테 맡겨야 하나, 출산휴가를 다녀오면 내 자리는 그대로 있을까, 내 커리어 관리에 지장은 없을까', 일을 하면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저출산이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우리 사회에도 워킹맘(Working Mom.일하는 엄마)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하나 둘씩 도입되고 있다.

그러나 워킹맘들은 "제도도 제도지만 워킹맘을 배려하지 않는 직장문화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애낳으면 불이익'..잦은 야근과 회식도 고역많은 직장에서 출산은 곧 불이익으로 직결된다.누군가가 고과에서 최하점을 받아야 한다면 출산휴가로 3개월 자리를 비운 `죄'로 `희생양'이 되는게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그야말로 자식낳은 죄다.

출산 후에도 전쟁은 계속된다.직장인이라면 으레 경험하는 야근과 회식도 워킹맘에게는 풀기 힘든 숙제같다.하지현(33) 씨는 "팀장이 저녁에 회식을 소집했다"면서 "며칠간 야근하느라 아이 얼굴도 제대로 못봐서 오늘은 빨리 들어간다고 약속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하씨는 "하루 하루가 갈등의 연속"이라며 "일과 가정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회식을 일의 연장선상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해 회식에 빠지면 마치 업무를 게을리하는듯한 눈총을 받기 일쑤다. 그렇다고 회식에 꾸역꾸역 따라가기에는 아이가 눈에 밟힌다.

자녀가 있다고 일찍 퇴근하는 것도 흠이된다.유통업체에 다니는 강모(29) 씨는 "최근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찾아오기 위해 자주 `칼퇴근'을 하던 선배가 찍혀서 점포로 발령나면서 요즘은 다들 아이가 있어도 늦게까지 일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아이가 아파 하루 쉬려고 해도 눈치를 봐야 한다.대기업에 근무하는 이혜인(32) 씨는 최근 5살짜리 아들이 갑자기 열이 나 하루 휴가를 냈다. 신종플루가 걱정이었지만 다행히 검사결과는 음성이었다.

이씨는 "다음날 회사에 출근했더니 `신종플루도 아니라면서 무슨 휴가까지 냈느냐'는 수군거림이 들렸다"면서 "그들도 모두 아내가 있고 아이도 있을텐데 그렇게 속이 좁나 싶었다"고 말했다.

◇ "워킹맘 배려 경영에 도움된다"기업이 워킹맘을 배려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아직도 여전한 가부장적 분위기가 우선 지목된다.여성들의 사회진출이 일반화됐지만 간부 대다수가 남성인데다, 소수인 여성 간부마저도 남성과의 경쟁을 뚫고 살아남기 위해 가정을 희생하는데 익숙하기 때문에 여성 부하직원을 배려하는데 인색한 경우가 많다.

IT업체에 근무하는 유모(34) 씨는 "출산한 해에 근무평가에서 최하점을 받아 상사에게 물어보니 `3개월 쉬었지 않느냐. 원래 회사는 그런 곳'이라는 답이 돌아왔다"면서 "그 상사도 워킹맘이어서 더 서운했다"고 말했다.

비용도 문제다.출산휴가나 육아휴직으로 결원이 생겨 대체인력을 채용하려면 추가로 돈이 들어가고 직장내 육아시설을 마련하는데도 적잖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기업들도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공감하고 있다.대한상공회의소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달 국내기업 303곳(대기업 153곳, 중소기업 150곳)을 대상으로 전화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기업의 83.4%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의 책임과 역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가족친화경영을 적극적으로 실천한다는 기업은 8.6%(대기업 13.1%, 중소기업 4%)에 불과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행동'으로 나서지 않는 셈이다.

회사업무 특성상 어렵고(40.6%) 추가비용이 부담(30.4%)된다는 이유에서다.하지만 가족친화적 경영을 하고 있다는 기업의 66%가 경영성과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직원들의 사기가 올라가고(80.1%) 이미지 제고에도 도움이 되며(49.8%) 이직률도 감소(48.5%)하는 효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비용 증가 등을 감수하고 가족친화적 경영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경영진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임신 인지시점부터 육아휴직을 가능하게 하는 등 가족친화적 경영을 실천하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여성인력 없이는 국가경제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최고 경영진의 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가족친화적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확대돼야 한다.정부는 매년 가족친화기업을 인증하고 있지만 정부사업에 있어 약간의 인센티브를 받는 것 외에 실질적인 혜택은 없어 지원 기업은 많지 않은 실정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 한 기업들이 비용부담을 감수하고 가족친화적 기업으로 변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transil@yna.co.kr < 뉴스의 새 시대, 연합뉴스 Live >< 연합뉴스폰 >< 포토 매거진 ><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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