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오역으로 본 국내 통·번역시장 현주소] 인턴에 협정문 번역 맡긴 대한민국..'싼 값' 찾다 국제 망신

2011. 4. 20.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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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때문이라지만…대학생 리포트 같은 오류…전문인력 부족이 사태 키워번역사 몸값 천차만별장당 2000원서 20만원까지…정부 계약직 연봉 2300만원예견된 오류사태"번역은 하찮은 일"폄하…1000여개 영세업체 난립

'이식'(transplant)은 '수혈'로,'역학'(epidemiological)을 '피부의학'으로.최근 한 · 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한글본 협정문에서 공식 확인된 207건의 오류 중 일부다.

이런 단순 오류가 국가 간 조약에 포함되는 무역 협정문에서 무더기로 쏟아진 원인은 무엇일까.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1300쪽의 협정문 전부를 전문인력에 맡기면 2억6000만원이 들어 내부에서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내부 작업 당시 실무자들이 일일이 다 볼 수 없어 인턴들이 상당 부분 번역작업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FTA 협정문 오류 사태는 단순히 외교부의 실수 차원을 넘어 국내 번역시장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국어 전문인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 및 전문인력 부족이 이번 사태를 불러왔다는 분석이다.

◆번역사 수입 차이는 최고 100배

국제 거래가 활발해지고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늘면서 정부와 기업의 업무용 문서 번역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대한번역개발원의 추산에 따르면 기술번역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90%에 육박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통 · 번역시장 규모가 3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번역서비스를 실시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소규모 중개업체 형태로,1000여개의 업체가 난립해 있다. 번역사들이 대부분 프리랜서로 활동하기 때문에 관련 산업의 정확한 통계는 찾아보기도 힘들다.

1인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번역사들의 몸값은 천차만별이다. A4용지 한 장 기준으로 계산되는 번역료는 적게는 장당 2000원에서 많게는 20만원까지 편차가 매우 크다. 번역사들의 수입이 100배까지 차이난다는 얘기다.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5년째 프리랜서 번역사로 활동하고 있는 노희연 씨(32)는 "기업이 발주한 중요 문서를 번역할 때는 장당 20만원까지도 받는다"며 "일을 많이 하면 연수입이 1억~1억5000만원 정도 된다"고 말했다. 노씨는 "번역사들의 역량이 천차만별이라서 대기업과 로펌들은 소개 받은 사람이나 검증된 인력만 쓴다"고 전했다.

반면 한국외대 구인 게시판에 오른 한 정부 부처 계약직의 연봉은 불과 2300만원.이 때문에 번역사들은 대학원을 졸업한 후 단순히 경력을 쌓기 위해 정부 기관에 취직,1~2년간 경험을 쌓으려 할 뿐이다. 알바천국 등의 구인 사이트에선 장당 8000원에 번역자를 구하는 광고를 흔히 볼 수 있다.

◆번역 시장 급성장했지만

번역시장에 억대 연수입자들이 수두룩하지만 번역에 대한 이미지는 조선시대 하위직인 '역관'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도 있다.

원영희 성균관대 번역대학원 교수는 "한국은 역사적으로 번역사들에 대해 낮게 보는 분위기가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원 교수는 FTA 협정문 오류 사태도 이처럼 번역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번역업무를 하찮게 보고 예산을 아끼기 위해 번역의 질보다는 싼값으로 번역하는 데 우선순위를 둔다는 얘기다.

정부 부처 관계자는 "업무로 바쁜 사무관들에게 번역까지 시키긴 어렵고,그렇다고 외부 전문인력을 고용하면 돈이 많이 든다"며 "인턴들에게 번역 업무를 맡기는 게 대부분 부처의 관행"이라고 실토했다.

◆'진짜' 번역인력은 부족

전문 번역인력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현재 통번역대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학교는 총 8곳으로 연간 졸업자 수는 500명 수준이다. 이에 따라 최근 들어 검증되지 않은 번역 인력이 급증하고 있다. 신정숙 한국번역가협회 사무국장은 "요새는 어학연수를 6개월만 갔다 와도 번역일을 하겠다고 달려든다"며 "전문 역량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로 인해 번역 수준이 전반적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번역인력이 일부 언어권에만 한정돼 있는 것도 문제다. 영어,일본어,중국어,프랑스어 정도를 제외한 다른 언어권의 번역 인력은 사실상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전문 번역인력도 없을 뿐 아니라 관련 학과 전공자들도 한국외대 등 일부 학교를 제외하면 구하기 힘들다.

강경민/이현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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