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연한 위장전입> ① 불법불감증 "남들 다하는데"

2010. 8. 29.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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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국민은 물론 단속해야 할 지자체도 위장전입 앞장

한해 피고발자 수십명 불과.."전 국민 뒤질 수 없어"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 최근 인사청문회를 통해 위장전입을 한 일부 고위 공직 후보자들이 사퇴하는 소동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위장전입 문제가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국민 조차도 "실정법을 위반, 부당한 이익을 챙긴 사람이 법을 집행해야 할 고위 공직자가 되는 것은 부적절하다", "법은 어겼지만 자녀 교육 등을 위한 경우 이해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등 의견이 갈리고 있다.

위장접입은 징역 3년 혹은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엄연한 '범죄'인데도 그만큼 위장전입이 만연해있지만 처벌을 받는 경우가 드물고 범죄라는 인식도 옅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법을 개정하든지, 단속을 강화하든지 위장전입에 대해 어떤 방향으로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불법에 대한 죄책감 없이 위장전입 난무

분당에 사는 회사원 김민철(가명.43) 씨는 지난 2005년 딸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딸의 주소를 인근 외할아버지 집으로 옮겼다.

자신의 주소지로는 딸이 Y초등학교로 배정되는데 바로 옆 아파트인 외할아버지의 주소지로는 Y교보다 훨씬 평판이 좋은 S초등학교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딸이 S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딸의 주소지를 곧바로 자신의 집으로 다시 옮겼다.

주소만 이리저리 옮겼을 뿐 실제로는 계속 같이 살았으니 위장전입이다.

김씨는 "불법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 것이어서 망설이지는 않았다"면서 "담벼락 하나 때문에 보내고 싶은 학교를 보낼 수 없는 현실부터 바뀌지 않는 한 자녀 교육을 위한 위장전입은 근절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직자 재산공개 등의 영향으로 청문회에서 부동산 투기용 위장전입이 드러나는 경우는 사라져 가지만 사회에서는 부동산을 둘러싼 위장전입이 여전히 만연하다.

회사원 이철민(가명.36) 씨는 지난 2006년 말 마포의 한 재개발 예정지의 다가구주택을 매입한 뒤 이사는 하지 않은 채 그곳으로 주소만 옮겼다.

이 주택이 철거된 뒤 지어질 아파트를 매도할 때 비과세 혜택을 받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씨는 "철거 전 다가구주택 보유ㆍ거주 기간도 나중에 아파트를 팔 때 보유ㆍ거주 기간으로 합산되기 때문에 미리 주소를 옮겨놓으면 좋다는 부동산 중개업자의 말에 위장전입을 했다"면서 "덕분에 2년의 보유ㆍ거주 기간을 벌었다"고 말했다.

서대문구의 H공인중개사 관계자는 "다가구 주택은 여러 세대가 함께 살기 때문에 위장전입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면서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어서인지 위장전입에 대한 거부감도 없다"고 말했다.

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로 선정되기 위해 위장전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임진경 구로구청 통합조사팀장은 "부부 사이에 따로 주소를 해놓고 배우자로부터 어떤 경제적 지원도 안 받고 있다며 기초생활수급권을 신청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하지만 조사해보면 주소만 다를 뿐 같이 살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 공무원도 교부세나 선거구 유지 등을 위해 위장전입 앞장

위장전입자를 적발하고 고발해야 할 지방자치단체에서 오히려 조직적으로 위장전입을 하는 경우도 있다.

갈수록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지방의 일부 지자체에서 교부세와 선거구 등을 유지하기 위해 위장전입을 부추긴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

인구 10만명인 광주 동구의 경우 작년 9월 한 달 동안 인구가 3천300명이 늘었는데, 이는 지자체 차원에서 직원들에게 '주민 늘리기'를 독려했기 때문이다.

동구측은 "동구 소재 원룸 등에 살면서도 주민등록은 옮기지 않은 이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닌 결과 주민이 늘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과별로 목표 인원이 할당돼 부담감을 느낀 직원들이 어쩔 수 없이 친구나 친지 등을 위장전입한 사례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직원은 "친구의 동의를 얻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주면 동주민센터에서 알아서 누군가의 집에 전입해준다"면서 "친구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집에 '또 다른 가구주'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구가 각종 교부세와 국회의원 선거구, 구의회 의원 수 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주민 수를 유지하기 위해 불법적인 위장전입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한 표라도 더 얻고자 후보자의 지인들을 선거구 내로 위장전입시키는 사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 6.2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투표를 목적으로 위장전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례가 전북, 천안, 울릉군 등에서 적발됐다.

◇ 정부 "모든 국민 뒤진다면 감시사회"

위장전입이 이처럼 일반 국민, 공무원 가릴 것 없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 때문에 처벌받는 이는 드물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08년 위장전입으로 지자체로부터 고발된 건수는 총 83건에 불과하다.

2002년부터 7년간 총 고발 건수도 434건으로 한 해 60여건 정도다.

인사청문회에 나올 정도의 사람들도 한 명 건너 한 명은 위장전입을 한 경력이 있는 현실과는 엄청난 괴리가 있는 수치다.

이는 위장전입이 워낙 은밀하게 이뤄지는데다 객관적 증거를 확보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선 기초 지자체에서는 주민등록 일제조사 등을 통해 등록된 주소지에 해당자가 살지 않는 경우 '거주불명 등록(무단전출 직권말소)'을 할 뿐 위장전입으로 고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주소지에 살고 있지 않는 이유가 위장전입을 했기 때문인지, 실제 살았었는데 단순히 전.출입 신고를 하지 않고 이사를 나갔는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구로구청 노명식 동행정팀장은 "부동산 투기라든가 선거 때 유권자 확보 등 명백한 사유가 있을 때에는 고발을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거주불명 등록'을 통해 추후 재등록시 과태료를 물게 한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 주민과 이정민 사무관은 "전입신고가 들어오면 통.이장이 15일 이내에 실제 전입 여부를 확인하도록 돼 있지만, 막상 찾아가면 '그런 것까지 확인하느냐'며 항의하는 등 확인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 투기나 농지 취득 등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철저히 조사하지만 모든 국민에 대해 전입신고를 제대로 했는지를 뒤지다 보면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transi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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