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00년] 광산.. 공장.. 비행장.. 한반도 전역은 노역장이었다

2010. 6. 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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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 100년 기획 잊혀진 만행… 일본 戰犯기업을 추적한다제3부 강제동원 더 깊이 들여다보기③ 국외 동원 그늘에 가리어진 국내 동원

1938년 4월 일제는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했다. 조선을 비롯한 식민지에서 인적·물적 자원을 수탈해 전쟁에 쓴다는 취지였다. 법 제4조는 "정부는 전시에 국가총동원상 필요할 때는 제국신민을 징용하여 총동원 업무에 종사하게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조선인은 5월부터 '합법적으로' 강제동원됐다. 국무총리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국내 강제동원 작업장 현황'은 국가총동원법 공포 후 1945년 광복 직전까지 한반도에서 강제동원을 수행한 일본 자본을 총망라했다. 자료에는 개별 작업장 6956곳의 이름과 주소, 설립연도, 생산품목, 자본계통, 군수공장 지정 여부 등이 빼곡히 기록돼 있다. 그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국내 동원 작업장 실태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는 의미를 지닌다.

◇한반도 전역에서 금(金) 수탈=지역별로 평안도와 함경도, 강원도, 충청도에서 자원 수탈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평북은 도내 877곳 강제동원 작업장 가운데 836곳(95.3%)이 탄광·광산이었다. 함남도 657곳 가운데 탄광·광산이 84.8%인 557곳을 차지했다. 강원은 661곳 중 633곳(95.8%), 충북은 493곳 가운데 461곳(93.5%)이 탄광·광산이었다.

일제가 주로 빼내 간 광물은 금이었다. 전국적으로 탄광·광산 작업장은 5569곳이었는데 이 가운데 4485곳(80.5%)에서 금을 생산했다. 충남 아산군은 광산 22곳이 모두 금광이었다.

이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제는 전쟁물자를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탄광·광산을 파헤쳤다. 하지만 전투기나 군함, 무기를 만드는 광물보다 자본 성격이 강한 금을 캐 갔다. 자원수탈이 아니라 자본수탈을 한 셈이다. '국가총동원이란 전시에 국가 전력을 가장 유효하게 발휘하도록 인적 및 물적 자원을 운용하는 것을 말한다'(국가총동원법 제1조)라고 규정한 것은 거짓이었다. 일본은 한반도 금광 덕택에 당시 세계 5위 금 생산국이 됐다.

◇경기도는 공장, 남해안은 비행장 많아=공장은 경기도에 집중됐다. 경기도는 712곳 가운데 262곳(36.8%)이 공장이었다. 업종은 다양했다. 경성부(현 서울) 남대문통에는 경성전기, 동화직물, 반도자동차, 애국섬유재생공업, 일본탄소공업, 조선임업개발, 조선철공소, 조선화학공업 등 공장 16곳이 있었다.

공장 가운데 상당수는 군수회사법에 따라 군수공장으로 지정됐다. 1944년 12월과 이듬해 1월 두 차례 이뤄졌다. 1차 때는 미쓰비시광업 등 55개 기업 307곳 작업장이, 2차 때는 북선제강소 등 44개 기업 123곳이 군수공장이 됐다. 이곳에서 일하는 조선인은 신분이 바뀌어 징용자가 됐다. 임금을 거의 못 받게 됐고 근무시간이 늘어났다.

조선인은 비행장과 철도, 수력발전소 건설에도 동원됐다. 비행장 건설 작업장은 전국에 42곳 있었다. 대부분 일본군 전투기를 위한 것이었다. 제주도를 비롯한 전남에 비행장 건설 작업장이 9곳으로 가장 많았다. 경남에도 비행장이 7곳 있었다. 일제가 이른바 '본토 결전'을 준비하면서 한반도 남해안을 항전지로 택해 건설됐다.

군사시설물 건설 작업장(전국 140곳)도 경남과 전남에 많았다. 각각 43곳과 42곳에 전투기 격납고와 진지 등이 지어졌다. 철도 및 도로 작업장은 전국적으로 152곳이었다. 철도 공사는 대부분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발주했다. 조선인은 수력발전소 건설 작업장 26곳에도 끌려갔다.

◇막대한 이익을 남긴 일본 기업들=미쓰이(三井)와 미쓰비시(三菱) 등 일본 기업 계열사 1089개가 전국에 산재해 있었다.

미쓰이는 전남 화순 동면 무연탄광, 함남 문천군 천내리 시멘트공장, 평북 의주군 옥상면 금광, 경남 통영군 광도면 광도광산 등 전국 95곳에서 계열사 작업장을 운영했다. 특히 함남 문천군과 평남 강동군 승호리 등 5곳에 있던 오노다 시멘트는 학도지원병을 거부한 80여명을 가혹하게 착취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재야 운동가인 고(故) 계훈제 선생도 이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미쓰비시는 계열사로 평남 강동군 삼등면 덕산탄광과 함북 무산군 무산읍 무산철산 등 67곳을 거느리고 있었다.

'국내 강제동원 작업장 현황'은 일본 주요 기업이 한반도에서 강제동원으로 막대한 이익을 취했다는 점을 역사적 사료로 증명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전시체제에서 일본 대기업 계열사는 사업장이 군수공장으로 지정됨으로써 큰 이익을 얻었다. 이들 기업이 당시 거둔 이익을 기반으로 현재까지 사세를 유지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 자료는 향후 피해자 지원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기업이 징용 조선인에게 주지 않고 일본 정부에 맡긴 임금(공탁금) 명세서가 지난 3월 우리 정부로 전달됐다. 명세서에는 일본 본토에 포함됐던 한반도의 동원 내역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두 자료를 비교하면 일제 강점기 국내 강제동원 피해 현황을 좀 더 상세히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거문도=특별기획팀=글·사진 김호경 권기석 우성규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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