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 한달 활발한 '무리짓기'.. 무리 결속된 뒤 집단따돌림 시작

이서화 기자 2012. 1. 15.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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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석동 중2학년 대상 집단따돌림 실험해보니

신학기 중학교 교실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서울 동작구 흑석동의 한 중학교 2학년 담임교사는 몇 년 전 새로운 실험을 해봤다. 담임교사는 개학 첫날 좌석배치를 해주지 않은 채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앉고 싶은 친구와 앉으라"고 말했다. 이 학급의 재학생 수는 36명이다. 학생들은 자리가 배치된 직후부터 삼삼오오 무리짓기(Grouping)에 열중했다.

ㄱ군은 평소와 달리 새 옷을 입고 머리 스타일도 바꿔가며 외모 가꾸기에 열중했다. ㄴ양은 친구들에게 떡볶이를 사주고 상냥한 태도로 환심을 사는 데 열중했다. 어느 무리에도 끼지 못한 학생들은 풀이 죽은 채 눈치만 보고 있었다.

4월이 되자 이 교실에서는 몇 개의 그룹으로 편이 갈라졌다. 각각의 무리를 중심으로 집단따돌림 현상도 산발적으로 생겼다. 학생들은 친구의 나쁜 모습을 껴안아 포용하기보다는 처벌하려고 했다. 자신의 무리 안에서 집단따돌림을 당한 학생은 다른 무리에도 끼기 어려웠다. 간혹 다른 무리에 끼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속적인 선물공세를 펴야 가능했다. 학생들의 무리짓기는 '무리형성·무리확정·본성파악·무리변화'의 4단계를 거쳐 6월쯤 마무리됐다.

경기도내 학생들이 학교폭력 예방과 갈등·고민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한 '또래중조인' 교육실습활동을 벌이고 있다. | 경기도교육청 제공

한국교육개발원이 중학교 2학년 1개 학급을 대상으로 추적한 집단따돌림의 발생과정은 흥미롭다. 학교폭력의 주된 원인 중 하나인 집단따돌림이 매 학년 초부터 '무리짓기'를 통해 시작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학생들은 무리를 중심으로 사고·행동하기 때문에 무리 이외의 친구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죄의식 없이 집단따돌림에 동참하는 것으로 나왔다.

청소년문제 상담사들은 "학교폭력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단편적 정책 발표에 앞서 학생들 사이의 집단·망·권력관계에 대한 실태조사와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당시 연구를 맡았던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15일 "집단따돌림이 생길수록 해당 무리집단의 응집력이 커진다"면서 "그런 면에서 집단따돌림은 무리의 단합을 위해 속죄양(남의 죄를 대신 지는 것)을 만들어내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학생들은 무리짓기 이후 자신들은 사소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심각한 학교폭력을 조장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청소년예방재단이 전국 초·중·고등학생 36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0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학생들은 폭력행사의 가장 큰 이유가 '장난'(27%)이라고 답했다. 이어 '상대방이 잘못해서'(23%), '오해와 갈등'(16%), '이유 없음'(13%) 순으로 나타났다. 또 학교폭력을 목격한 학생 1059명 중 과반수(62.0%)는 '모른 척했다'고 응답했다. 혼자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3~6명가량의 소규모 무리에 끼기만 한다면 무리 외 모든 일은 남의 일이 돼버리는 것이다.

지난해 '학교 내 청소년들의 권력관계 유형과 학교폭력 참여역할 유형'이라는 보고서(엄명용·송민경은)는 "학생들이 자신이 속한 집단 안에서 갖게 된 자아상과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학생들을 괴롭히도록 압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이 학생들 사이에 형성돼 있는 집단·관계망·권력관계·역할 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명신희 중랑청소년수련관 청소년상담팀장은 "학생들을 상담하다 보면 자신이 피해자가 될까 봐 방관자로라도 가해에 참여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며 "학생에게 뭐가 옳고 그른지 기준을 세워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의 입장에서 전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더 이상 집단따돌림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이서화 기자 tingco@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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