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강사 고단한 삶의 실태.. '생계 막막' 강의 뒤 막노동도

정영선·김지환 기자 2010. 6. 1.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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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수업 34% 맡고도 시간당 2만원 받기도과외강사·번역 등 예사, 지도교수가 성희롱도

40대의 지방대 시간강사인 ㅇ씨가 강단에 선 지는 10년째다.

대학 강의가 없는 시간에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학원에서 논술 과외를 하고 번역일을 하는 시간강사도 있지만 그는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있다. 사회학 강의와 연구활동을 하며 고집스럽게 정교수의 꿈을 키우고 있지만, "현실은 계속 멀어지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ㅇ씨가 받는 강의료는 시간당 5만원이 조금 넘는다. 많을 때는 1주일에 9~10시간을 강의하지만 매달 손에 쥐는 것은 100만원 안팎이다. 프로젝트를 닥치는 대로 하다보면 200만원쯤 벌 때도 있다. 시청 공무원인 배우자의 월급으로 가정을 꾸린다는 사실이 가장으로선 늘 괴롭다는 ㅇ씨는 "나는 그나마 배우자 도움으로 버티는 경우"라고 말했다. 막노동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시간강사도 주변에 적지 않다고 했다.

수도권 모 대학에서 강의했던 30대의 한 여성 시간강사는 3년 전 대학의 지도교수가 성적 모멸감을 주는 말로 계속 성희롱을 하자 총장에게 투서하는 등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했다. 하지만 돌아온 결과는 해고였다. 그동안 이 대학에서 쓴 논문이나 참여했던 프로젝트에서 모두 이름이 삭제되는 수모도 겪었다. 그는 큰 용기를 내서 한 문제제기가 '계란으로 바위치기'임을 느꼈다고 했다. 지금은 타 대학으로 옮겨 학위를 새로 따고 강의를 다시 시작했다.

대학 시간강사들의 처우 문제가 심각하다. 생활고에다 인격적으로 무시받으며, 미래는 불안한 '암흑시대'를 사는 사람들이다.

2009년 교과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대학의 시간강사는 7만2419명이며 이들이 대학내 수업의 33.8%를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임금 수준은 열악하다. 한국비정규직교수노동조합이 지난 4월30일 '대학알리미'에 공표된 4년제 186개 대학 현황을 조사한 것에 따르면 강의료가 시간당 5만원 이상인 대학은 10%에 불과하고, 4만원 이상이 33%를 점했다. 올해 1학기 강의료가 시간당 2만원인 대학도 있다. 일부 국·공립대학 시간강사가 산재·고용 보험에 가입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시간강사들은 4대보험 혜택에서도 제외된다.

시간강사를 위한 개인연구실은 전혀 없다. 공동연구실도 2006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100명당 1개꼴이고 4년이 지난 지금도 비슷하다. 일부 대학에선 아예 추첨을 통해 운 좋은 시간강사 100여명만 10개 정도 마련된 공동연구실에 들어갈 수 있다. 이들은 학교 측에 제시하는 강의개설 신청권과 자료 구입 신청권도 없다. 근로계약서 자체가 없기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해고 통지도 없이 학교를 떠나야 한다.

생활고를 겪는 일부 시간강사들의 일탈도 이런 배경에서 일어나고 있다. 몇 년 전 과자나 햄 같은 식품에 벌레를 넣고 제조회사를 협박해 돈을 뜯어낸 대학강사 박모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박씨는 "시간강사 월급이 40만원밖에 되지 않아 부인에게 미안했고 거짓 신고로 생활비를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지난달 25일 10년 경력의 조선대 시간강사 서모씨는 교수 임용에서 탈락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씨는 1주일에 10시간을 강의했지만 한 달 수입은 150여만원에 불과했다. 식당에서 일하는 아내와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자녀를 둔 서씨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2003년 5월에는 서울대 러시아어과 백모 강사가 서울대 뒷산에서 목숨을 끊었고, 2006년에는 부산대의 한 시간강사가 74세 노모를 남기고 목을 매 자살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4년 6월 정부에 "대학 시간강사는 전임교원과 비교해 근무조건과 신분보장, 보수 및 급부 등에 있어서 차별 대우를 받고 있고, 그 차별적 대우는 합리성을 잃은 것이어서 헌법상 기본권인 평등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며 "결과적으로 국민의 교육을 받을 권리도 훼손될 우려가 있어 조속히 개선돼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러나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처우는 달라진 게 없다.

한국비정규직교수노동조합 윤정원 위원장은 "시간강사의 지위를 교원으로 보장해야 한다"며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이 가능한 임금과 사회적 대우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영선·김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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