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유학생 10만 시대.. 추악한 제노포비아]<上> 왕따 시키는 캠퍼스

2011. 11. 21.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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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의 전당서도 "깜둥이.. 짱깨.." MT 따돌려

[동아일보]

"더러운 짱깨 놈들. 되게 시끄럽네."

전북 전주의 한 4년제 대학에 재학하는 중국인 유학생 A 씨(23)는 이달 초 주점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옆자리의 한국인 학생 5명이 욕설하는 것을 들었다. A 씨는 화가 났지만 싸움이 날까봐 가만히 있었다.

30여 분 뒤 A 씨 일행 1명이 화장실에서 구토를 했다. 마침 옆자리의 한국인 학생 1명도 화장실에 있었고 "더럽게 왜 토하느냐"며 시비를 걸었다. 소란이 일자 A 씨도 달려갔고, 한국인 학생 일행은 "밖으로 나가서 한판 붙자"며 주먹을 휘둘렀다. A 씨는 이들의 폭행을 말리다가 얼굴을 맞아 멍이 들고 안경이 부러졌다. A 씨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학내에 소문이 나면 유학생에 대한 반감이 커질 것 같아 치료비 50만 원만 받고 합의했다. 조사 결과 한국인 학생들은 같은 학교 1년 후배였다. 그는 "한국인은 중국인을 아무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 같다"며 억울해했다.

○ 외국인 유학생, 학내에선 '왕따'

동아일보가 '외국인 유학생 10만 명 시대'에 앞서 만난 유학생 125명 중에는 '제노포비아'에 시달리며 '왕따'를 당한 적이 있다고 증언한 사람이 많았다. 특히 영미권이나 유럽보다 아시아,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 출신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심한 차별을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학내에서 겪는 차별이 가장 심각했다. 조 발표나 과제를 준비할 때 한국인 학생들이 뭉쳐 외국인을 따돌리거나 하찮은 일만 시킨다는 것. 중국인 유학생 허윈(賀云·26·여·서울 K대) 씨는 "나와 같은 조가 된 한국인 학생들이 '에이 ××, 또 짱깨가 끼였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며 "외국인을 강제로 내보낼 때도 있고 막상 같은 조가 돼도 컴퓨터 작업 등 간단한 일만 시킬 때가 많다"고 말했다.

대학생활의 낭만인 수련회(MT)나 동아리활동도 이들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가오아오(高傲·22·서울 S대) 씨는 "네 학기를 다녔지만 한국 학생들과 MT를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외국인 유학생회와 동아리에 대한 금전적 지원도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상당수의 아프리카, 아시아 출신 유학생은 "영어가 능통한 백인 학생들은 환영을 받지만 우리는 차별과 배제의 대상인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 이유 없는 인종차별에 성희롱까지

짐바브웨 출신으로 대구 K대 대학원을 다니는 B 씨(26)는 최근 대구시내 클럽에 갔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뒤에 있던 한국인 남자가 자꾸 등을 쳤던 것. "왜 그러느냐"고 항의하자 그는 "깜둥이 새끼"라고 욕을 했다. B 씨가 같이 욕하며 대응하면서 싸움이 붙었고 결국 그는 클럽 직원들에게 붙잡혀 밖으로 끌려 나왔다. 그는 "한국어를 잘 못하지만 '깜둥이'라는 말의 의미는 알고 있어 매우 불쾌했다"고 말했다. 영국 출신으로 부산의 B대를 다니는 앤드루 험프리스 씨(19)도 지난해 백화점에 갔다가 한 노인이 "한국 여자들 죄다 끌고 다니는 양놈 코쟁이들"이라고 욕을 퍼붓는 것을 아무 이유 없이 들어야 했다.

서울 C대에 재학하는 중국인 D 씨(27·여)는 지난해 삼겹살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사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손님이 별로 없을 때 사장이 자신의 뒤를 지나가며 엉덩이를 슬쩍 만졌던 것. D 씨는 "경찰에 신고하려 했지만 불법 아르바이트 사실이 드러나 처벌받을까 봐 두려워 관뒀다"며 "그후에는 절대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명문대에 다닌다고 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울 K대에 재학중인 탄자니아계 미국인인 제리 에드워드 씨(22)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흑인인 내가 앉은 자리 주변에는 사람들이 잘 앉지 않아 기분이 상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 차별의 결과는 혐한(嫌韓) 확산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차별이 만연하자 중국인들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혐한 분위기가 유학생 사이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서울 D대에 다니는 장밍(張明·23) 씨는 "한국인을 '가오리방쯔(高麗棒子·한국인을 얕잡아 부르는 말)'라고 부르는 중국인이 많다"며 "혐한 사이트에는 한국에서 무시를 당한 사람들이 한국 비난 글을 많이 올린다"고 말했다. 이어 "혐한의식이 강한 중국 친구들은 '왜 한국에서 공부를 하느냐'고 타박을 주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외국인 유학생들의 국내 생활 만족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이인영 씨가 서울대에 다니는 외국인 유학생 5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올해 2월 발표한 '외국인 유학생 실태 분석과 효과적 지원방안 연구'라는 석사 논문에 따르면 유학 기간이 6개월 미만인 학생은 만족도가 4.2점(5점 만점)이었지만 1∼2년은 3.44점, 2년 이상은 3.29점이었다.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학생사회에서도 우리와 다른 문화와 인종을 평가 절하하는 태도가 만연해 있다"며 "다른 나라 학생의 생각과 가치관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외국인 유학생을 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전주=정윤식 기자 jys@donga.com  

대구=고현국 기자 mck@donga.com  

▼ 백인에겐 손 내밀고 中-흑인 학생에겐 안면 싹 바꿔 ▼

○ 동료들의 두 얼굴

캐나다인 유학생 크리스 매추라 씨(22·서울 J대 정치외교학)는 최근 수업 시간에 큰 환호를 받았다. 발표 차례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섰을 뿐인데 "외국인 친구 파이팅!"이라는 환호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온 것. 교수도 "외국인 학생이니 박수를 더 크게 쳐줘라"고 했다. 당시 강의실에 있던 중국인 유학생 3명의 발표 땐 이런 반응이 없었다. 최근 학교에서 만난 매추라 씨는 "한국 학생들이 너무 친절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기분은 좋았다"고 말했다.

중국인 유학생 이레이 씨(李(뇌,뢰)·여·서울 K대 경영학3)는 수업 시간에 팀별 과제를 하려고 팀을 구성할 때마다 씁쓸함을 느낀다. 영어를 쓰는 싱가포르 유학생에게는 음료수를 사주며 "같이 과제를 하자"고 제안하지만 자신에게는 다가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 씨는 "한국 학생들이 영어권 국가에서 온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빨리 친해져야지'라고 말하는 걸 자주 들었다"며 "같은 유학생인데 다른 대접을 받아 서운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서구권·영어권 국가 출신의 유학생 상당수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인은 친절하다. 한국 생활을 매우 즐기고 있다"고 응답했다. 중국이나 동남아 출신의 학생 또는 흑인 학생들이 차별과 괄시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서울 H대 언론정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러시아인 아쿨로바 에브게니야 씨(22·여)도 "먼저 도와주겠다고 손을 내미는 한국인 친구들 덕분에 발표나 과제 모두 어려움 없이 해내고 있다"고 했다.

프 랑스인 브누아 기야메 씨(29·서울 K대 대학원 한국어학 전공)는 학교 안팎에서 늘 환영의 대상이다. 수업시간에 도와주겠다는 친구들이 줄을 서는 건 물론이고 학교 앞 식당이나 술집을 가도 서비스 음식을 받곤 한다.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 중국인 유학생 바샹(巴翔·20) 씨가 최근 한 식당에 갔다가 주인으로부터 "중국인들은 원래 많이 안 먹으니까 반찬 리필은 해줄 수 없다"는 말을 들은 것과 반대되는 상황이다. 기야메 씨는 주변에 중국인 친구들이 많은데 차별 때문에 힘들어 해 안타깝다며 "한국인들은 유독 유럽·미국 출신 유학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개발도상국 출신 유학생에 대한 차별에 대해 "빠른 성장 과정을 거치며 경제 규모 순위로만 외국인을 평가하는 습성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모든 국적의 외국인을 같은 인격체로 인식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다문화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일부 대학 '외국인 유학생 장사'… 교과부 "인증제로 質관리"▼

교육과학기술부는 올해 9월 '외국인 유학생 유치관리 역량인증제'를 시행하기로 하고 전국 4년제 대학과 전문대 346곳을 대상으로 실사를 벌이고 있다. 대학교수, 기업 및 연구기관 전문가 13명으로 구성된 인증위원회가 캠퍼스를 방문해 평가한 결과는 다음 달 중 발표될 예정이다. 교과부는 모범 대학에는 외국인 유학생 장학금 사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반면 부실 대학에 대해서는 시정명령을 내리기로 했다.

정부가 이같이 외국인 유학생 관리에 나선 데에는 최근 일부 대학이 외국인 유학생을 새로운 돈벌이 수단으로 삼아 무작위로 유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 실제 교과부가 지난해 12월부터 두 달간 전국 18개 대학을 조사한 결과 입국하지도 않은 유학생을 출석 처리하거나 한국어능력시험(TOPIK) 성적이 기준 미달인 학생까지 선발한 대학들이 줄줄이 적발됐다. '2020년 외국인 유학생 30만 명 유치계획'을 세우고 정부 주도로 유학생 학사관리와 취업알선을 위한 시스템을 마련한 일본과 상반되는 모습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인증제를 엄격하게 운영해 앞으로 정부가 외국인 유학생의 숫자뿐 아닌 질적 관리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외국인 유학생 68% "왕따 경험"
[외국인 유학생 10만 시대… 추악한 제노포비아]백인에겐 손 내밀고 中-흑인 학생에겐 안면 싹 바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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