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 일본군 식인·집단학살 첫 규명

입력 2010. 10. 5. 05:33 수정 2010. 10. 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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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살해후 인육 먹은 사건 사실로 판단돼"

'밀리환초 조선인 집단저항' 정부 진상보고서

(서울=연합뉴스) 김연정 기자 = 일제강점기 남태평양 마셜제도에 강제 동원됐던 조선인들이 일본군의 식인 사건에 저항하며 집단행동에 나섰다가 무차별 학살된 사실이 정부 조사로 처음 확인됐다.

몇년 전 일본군 식인사건과 관련한 생존자 증언이 나온 적은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 사건 전반의 진상을 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위원장 오병주)는 2006년부터 3년여간 조사를 벌여 펴낸 '밀리환초 조선인 저항사건과 일본군의 탄압 진상조사 보고서'를 5일 공개했다.

보고서를 보면 1942년 초 조선인 군무원 800∼1천명은 비행장 등 군사시설을 짓는다는 명분으로 마셜제도 동남쪽 끝에 있는 밀리환초로 강제 동원됐다.

이 곳은 크고 작은 100여개 섬이 가늘고 둥근 띠 모양을 이루는데 태평양전쟁 당시 최전방의 군사적 요충지였다.

원래 원주민 500여명이 살던 섬에 일본군과 징용 조선인이 몰려오면서 1944년 초 거주 인원은 5천300여명을 넘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토질, 기후가 좋지 않은 데다 미군 공격으로 1944년 6월 이후 식량 보급이 막히자 일본군은 어쩔 수 없이 섬에 흩어져 식량을 채집하거나 농경, 어로로 생존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1945년 2월28일 체르본 섬에 살던 조선인 120여명이 감시 목적으로 파견된 일본인 11명 중 7명을 숲속으로 유인해 흉기로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조선인들은 거사가 성공했다고 여기고 이튿날 미군에 투항하려 했지만 날이 밝자 이웃 루크노르섬에서 기관총으로 완전무장한 일본군 토벌대 15명가량이 체르본섬을 공격했다. 조선인 100여명이 학살 당했다.

이때 일부 조선인은 야자수 나무 위로 피신해 목숨을 건졌는데 이들의 증언으로 사건은 역사 속으로 묻히지 않고 공개될 수 있었다.

보고서는 조선인의 집단 저항이 일본군의 식인사건 때문으로 보인다고 결론냈다.

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1945년 초 일본인이 숙소로 '고래고기'를 갖다 줘 허기진 조선인들이 이를 먹었는데, 며칠 뒤 근처 무인도에서 살점이 도려져 잔혹하게 살해된 조선인 사체가 발견됐다.

주변에 자꾸 사람이 없어지는 걸 이상하게 여겼던 조선인들은 일본군이 산 사람을 살해해 먹었고 조선인에게도 먹인 것을 눈치챘다.

연구를 진행한 조건 전문위원은 "저항사건의 발단이 된 '일본군 식인사건'은 실증에 어려움이 있으나 적지 않은 정황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사실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밀리환초 식인사건은 독특한 정신주의와 결부된 일본군 내의 가혹한 풍토, 기아상황과 미군에 대한 공포, 전쟁 스트레스가 중첩돼 일어난 만행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yjkim8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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