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사업' 한강 3개보 가보니.."고작 이거 하려고 22조원을?"

2011. 10. 3. 16: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명품보' 홍보하더니…은빛 백사장 사라지고 인공 둔치로 성형

"4대강 사업 전의 남한강은 아름답고 정겨웠다. 강변의 푸른 물결 곁으로 은빛 모래밭과 갈대숲이 조화롭던 곳이었다. 빼어난 경관을 보러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백사장을 통해 강 가운데까지 걸어들어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겨울 갈수기에도 물을 그냥 떠 먹을 수 있고, 여름철에는 향그러운 흙내가 나는 수질을 자랑했다. 그러나 이제 남한강 모래밭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푸근하던 습지와 갈대밭을 밀어낸 자리엔 끊임없이 복구해야 할 한강식 둔치가 등장했다."

여주환경운동연합 이항진 집행위원장의 말이다. 지난달 29일 4대강살리기 추진본부의 초청으로 10개 언론사 부장단과 함께 명품보라 자랑하는 경기 여주의 이포보를 비롯해 강천보, 여주보 등 3개보를 돌아본 뒤 든 솔직한 느낌은 "어, 고작 이거 하려고 무려 22조원을 들여야 했나?"하는 거였다.

4대강추진본부는 "보가 완성되고 난 뒤면 반대자들 입이 쑥들어갈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올 여름부터 정부는 사활을 건 총력 홍보전을 펼치고 있다. 주관적인 일부 주민들의 증언이나, 비교할 수 없는 사례들을 들어 홍수피해가 크게 줄었다고 부풀리고, 무려 100억원 가까운 홍보비를 퍼붓고 있다. 하지만 올해도 예년처럼 홍수피해는 컸고, 공영방송 우측 상단엔 수재의원금 모금 에이아르에스(ARS) 광고가 자리를 잡았다. 7월7일부터 8월10일 한달 사이에만 7350억원의 피해가 났고, 대부분이 4대강 본류가 아닌 지류지천과 도심홍수, 산사태 피해였던 것도 예년과 같았다. 이 기간 중 이포보에서 불과 수십킬로미터 떨어진 한강 지류 경안천과 곤지암천이 범람해 주민 6명이 숨지고 거리가 물바다가 됐다. 본류의 교각붕괴, 지류지천의 역행침식 외에 남한강 보 주변 둔치 일부도 쓸려나가 복구해야 했다. 보에 물을 채우고 난 뒤 수질악화나 수해 등의 영향은 내년에 다시 모니터링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달 24일부터는 세종보를 시작으로 막대한 비용을 들인 4대강 개방행사를 시작했다. 6일 금강 백제보(충남 부여군), 8일 영산강 죽산보(전남 나주시) 15일 한강 여주보·강천보(경기 여주군), 낙동강 구미보(경북 구미시)순으로 개방행사를 갖는다. 다음달 22일에는 이른바 '4대강 새물결맞이' 행사가 각 수계를 대표하는 한강 이포보(경기 여주군), 금강 공주보(충남 공주시), 영산강 승촌보(광주광역시 남구), 낙동강 강정 고령보(대구시 달성군, 경북 고령군)에서 동시개최된다. 이밖에 여주군등 지자체들은 이미 줄줄이 축제행사를 열거나 준비 중이다.

하지만 정부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한강의 3개보는 큰 볼거리가 못됐다. 여주보나 강천보는 다리 위로 솟아있는 몇개의 기둥들을 제외하면 국도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다리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 다만 보 유지와 관람외에는 용도가 없는 다리라는 점만이 달랐다. 디자인이 뛰어난 명품보라고 자랑하는 이포보도 공도교 위 알모양의 은빛 조형물(수문을 들어올리는 권양기 보관소)이 조금 독특했으나 이걸 보러 주말 교통체증을 무릅쓰고 서울 관광객들이 지속적으로 찾아올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공도교 아래 쪽에 설치된 보도 특징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환경단체들이 수해방지 대안으로 요구해 온 저류지를 이포보 부근에 한 곳 마련한 것은 의미가 있어 보였으나 평상시 용도와 환경영향 등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우리 강 특유의 강옆으로 유유하게 펼쳐지던 은빛 백사장은 사라졌다. 대신 강과 인간을 차단하는 볼품없는 한강식 둔치가 그 자리를 채웠다. 강천보와 여주보 주변의 황토색 둔치에는 아직 풀이 자라지 않아 황량했다. 저마다의 모습으로 굽이치던 강들을 개성없는 한강식으로 성형하는 것이 4대강 사업의 본질이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포보 상류의 당남리 섬은 인공공원으로 변했다. 자연습지와 농경지가 혼재한 당남리 섬은 개발이 엄격하게 제한된 수변구역이다. 환경부는 수도권 주민들이 낸 물이용부담금으로 2000년대 중반부터 이곳을 매입해왔다. 하지만 4대강 사업 직후 국토해양부 요청에 따라 환경부는 이곳의 매각 절차를 밟고 있다. 한강유역환경청 관계자는 "강변에 어울리는 식물을 심어 자연습지를 유도했지만, 국토부가 이 땅을 넘기라고 요구하면서 기존 수목을 뽑겠다고 통보해왔다"고 말했다.

  지금 이곳에 심어진 나무는 단풍나무 등 도심공원에나 어울리는 조경수다. 거대한 잔디광장과 어지럽게 난 자전거도로 사이로 앙상하게 서 있다. 오토캠핑장, 물놀이장, 수변무대도 주변 당남지구에 들어선다. 교목 3만1000그루, 관목 153만그루, 초화류 1300만본이 새로 들어서는 공원에서 사람들을 맞을 것이라고 국토부는 밝혔다. 개장초기 언론의 떠들석한 홍보에 호기심으로 한 번 찾을 수는 있겠지만 역시 서울 도심이나 지자체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별다른 특징없는 공원이었다.

 결국 대규모 투자를 통해 위락단지를 조성하지 않고서는 관광객 유치가 어렵기 때문인지 개발제한구역인 이곳을 벌써 관광레저도시로 탈바꿈시키려는 개발계획( ▶ 환경부, 한강 수변구역 4대강 사업에 넘겼다)이 나왔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홍희덕 의원(민주노동당)은 "수공 4대강 사업비 8조원 보전 목적이 아니더라도 정부가 친수구역 개발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아시겠지요"라고 되물었다.

글·사진 박영률 남종영 기자 ylpak@hani.co.kr

공식 SNS [통하니][트위터][미투데이]| 구독신청 [한겨레신문][한겨레21]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