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무가내 철거에 노점상 '피눈물'

2011. 1. 31.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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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설연휴가 더 추운 '거리의 서민들'

서초구청 38곳 기습철거상인 10여명 골절 등 부상항의하며 분신 시도도

서울의 기온이 영하 13도까지 떨어졌던 지난 30일 오후 4시께, 지하철 강남역 6번출구 앞에서 3년 동안 영화 디브이디(DVD) 노점을 운영해온 최명환(45)씨는 추위에 언 손가락을 주무르고 있었다. 순간 서초구청 로고가 박힌 트럭이 길가에 멈췄다. 수십명이 그의 좌판으로 들이닥쳤다. 기습 철거였다. 좌판을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그의 잇몸에서 피가 배어나왔다.

하루 뒤인 31일 오후 1시55분, 최씨는 서초구청 4층 도로관리과 사무실에서 온몸에 휘발유를 뿌렸다. 손에는 라이터가 들려 있었다. "안 돼요, 안 돼!" 그와 함께 서초구청을 항의방문했던 30여명의 상인들이 달려들어 라이터를 빼앗았다. 오전 10시께 한 차례 분신을 시도했던 최씨는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죽으려고 그랬죠. 물건, 노점 다 부숴놓고 돈 한 푼 없이 명절을 쇠라니…." 정신을 차리고도 최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 대책이 없어요. 몸이 안 좋아서 막일도 못하니까 시작한 노점인데…." 최씨는 당뇨와 고혈압으로 잘 보이지 않는 오른쪽 눈을 연신 부벼댔다. 손가락 사이로 물기가 흘렀다.

30일 서초구청 건설교통국 도로관리과 직원 20명과 용역업체 직원 50명(상인 쪽 추산 100명)이 강남역 6번 출구 앞 38개 노점을 기습 철거했다. 이 과정에서 10여명의 상인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6년 동안 이곳에서 귀걸이를 팔아온 조성윤(30)씨는 왼쪽 발목이 골절되고 오른쪽 팔목뼈가 부러졌다. 5개월짜리 딸을 둔 조씨는 "통장에 잔고도 별로 없는데 어린 딸을 데리고 어떻게 살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31일 상인들은 서초구청을 찾아가 혹한에 벌어진 강제철거에 거세게 항의했다. 3년 동안 만두 노점을 했던 송갑선(48)씨는 "구청이 설날을 앞둔 일요일에, 그것도 어떻게 깡패를 고용해 들이닥칠 수 있느냐"며 울음을 터뜨렸다. 김유신(39) 서초구상인회 회장은 "길 건너편 강남구청에서 관할하는 지역의 노점상들은 구청과 논의해 가판대 제공 등 대책을 마련했다"며 "서초구청은 최소한의 대책도 없이 상인들을 막무가내로 몰아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초구청 도로관리과 박정우 주임은 "지난해 11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즈음부터 철거 계고장을 보내고, 경고방송도 해왔다"며 "지난 27일 1차 철거 시도가 실패했는데, 30일이 설을 앞두고 정비에 가장 적절한 시점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박보미 임지선 기자 bomi@hani.co.kr

신설동 인력사무소 가보니, 한파에 일감 줄어 일용직 '막막'

하루 70명중 20여명 허탕…"부모님 선물 어떻게 살지…"

설 연휴를 이틀 앞둔 31일 새벽 5시30분께, 작업화를 신고 두툼한 점퍼 차림을 한 50여명이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역 근처 ㄱ인력사무소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사무실 직원에게 인적사항과 희망업종 등을 말한 뒤 차례를 기다렸다. 담배를 피우거나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는 이들도 있었지만, 사무실 안 분위기는 무거웠다.

광진구 광장동 건설현장으로 간다는 최아무개(35)씨는 청바지에 가죽점퍼를 입었지만 구두를 신고 있었다. 두 달 전까지 중소기업 직원이었던 그는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자 사직서를 내고 건설일에 뛰어들었다. 아직 가족들에게는 퇴직 사실을 알리지 않고 가방 안에 짐을 몰래 싸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고 했다. 최씨는 "설날인데 부모님께 선물이라도 하려면 부지런히 벌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추운 날씨에 건설 경기마저 얼어붙어 있어 일자리 찾기는 쉽지 않았다. 이날 인력사무소를 찾은 이들 모두 일자리를 구해 나가는 건 아니었다.

"용인 타요!"라는 말에 김아무개(46)씨가 사무실에서 나와 승합차에 올라탔다. 다른 일용직 노동자 7명도 그와 함께 출발했다. 용인의 아파트 건설현장으로 가는 이들이다. 김씨는 "장거리를 가면 일당이 1만~2만원 정도 많아 일하는 사람들이 좋아한다"며 "요즘엔 일감이 줄어 승합차 수가 반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김씨의 말처럼 이날 새벽 한 시간 남짓 동안 승합차는 3대밖에 서지 않았다. 서울 삼성동 건설현장으로 간다는 박아무개(55)씨는 "사무실 안에 아직도 30~40명이 남아 있다"며 "올해는 날씨마저 추워 일할 수 있는 현장이 더욱 줄었다"고 말했다.

"으~, 추워." 아침 6시30분이 넘어서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20여명의 사람들이 사무실을 나와 흩어졌다. 사무실 앞에 남은 몇몇은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담배만 피웠다. 김아무개(42)씨는 "설 연휴라 그런지 오늘은 일감이 빨리 떨어졌다"고 했다. 김씨는 인력사무소 맞은편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아침을 먹었다. 이날 아침 기온은 영하 12도였다.

한편 서울 종로경찰서는 길에 세워져 있던 차를 훔친 혐의(절도)로 이아무개(44)씨를 구속했다고 이날 밝혔다. 이씨는 지난 28일 저녁 8시50분께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세워져 있던 최아무개(51)씨의 카렌스 승용차를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설날이 오는데 일자리도 없고, 잘 곳도 마땅치 않아 교도소 가면 잠도 자고 밥도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씨도 사흘 전까지는 새벽 동대문 인력시장에서 일거리를 받아 일한 뒤 밤에는 만화방이나 찜질방에서 살았던 일용직 노동자였다. 글·사진/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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